한국과 미국, 그리고 전 세계가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준전시에 해당하는 비상사태에 돌입했습니다. 독감 정도 따위가 글로벌 위기로 급부상해서 사람들의 삶(경제, 외교, 여행/모임 등)을 총체적으로 뒤흔들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3월 17일 자로 미국의 대부분의 주(state)들은 비상 명령을 내려서 사람들이 모이는 곳들(학교, 식당, 술집, 공연장 등)을 최소한 3월 말까지 폐쇄 내지 제한했고 이 시행령 4월 말까지 연장되었습니다. 지금 이 상태가 앞으로 6개월을 갈지 연말까지 갈지 아무도 모릅니다. 이렇게 어려울 때에 대하여 성경에서 주는 지혜의 말씀이 있습니다. 전도서 7장 14절 말씀입니다.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1) 히브리어 원어로 이 절의 첫 부분을 보면 더 단순합니다. 한국어로 직역하자면 이렇습니다:
좋은 날에는 좋아해라(누려라). 나쁜 날에는 보라(see).
즉, 좋은 날에는 잘 즐기고 누리되, 역경이 왔을 때에는 잘 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보다"라는 것은 단지 눈으로 보는 것뿐 아니라, 전체적, 역사적 문맥을 파악하고 그 의미와 본질을 헤아리는 등, 어떤 상황에 대한 총체적 그리고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하늘의 관점 등을 취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2) 더불어, 14절의 후반부에서는 "하나님께서는 좋은 일과 힘든 일이 언제 올는지 사람들이 예측이 안 되게 하사 사람들로 하여금 교만하지 않게끔 하셨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즉, 사람들이 자신의 지혜와 계획을 믿을 수 없게끔, 겸손할 수밖에 없게끔, 결국 만유의 주재(주권자)이신 하나님을 찾을 수밖에 없게끔 섭리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곤고한 날"에 저희들이 잘 "보면서" 헤아려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사실 저희들이 이런 때에 할 수 있는 일은 의외로 매우 많습니다. 아래에 제가 몇 가지만 적었습니다. (우선순위와 무관한 무순위입니다.)
1. 평소에 누렸으나 지금은 못 누리는 것들에 대하여 감사하십시오.
(언젠가 이 상황이 해결되면, 그것들을 감사하며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미 감사하지 않는 것들은 내 눈 앞에 있어도 결코 누리는 것이 아님을 마음에 새기시기 바랍니다. (예를 들어, 늘 자녀를 보며 비판만 한다면, 한 집안에 늘 살아도 그 자녀를 둔 축복을 그 부모는 누리고 있는 것일까요?) 친구들과의 만남, 사랑하는 이들과의 사소해 보였던 스킨십(악수, 포옹, 도란도란 가까이 앉아서 얘기하는 것, 밥 먹는 것 등), 직접 만나서 함께 드리는 예배/모임 등.
2. 이런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누릴 수 있는 것들을 감사하십시오.
깨끗한 공기, 물, 가족, (크건 작건) 내 집/방, 음식, 공간, 시간, 자유, 하나님, 성경책 등... 끝이 없겠지요? 저는 며칠 전에 급변한 상황에 대처하느라 피곤한 하루를 마치고 집에 오면서 문득 저에게 돌아올 *집*이 있다는 것이 참으로 감사하더군요. 바이러스 걱정 안 해도 되고, 안전하고, 맘 편히 쉬고 먹고 잘 수 있는 곳: 내 집.
더 나아가서는... 내가 예수를 내 구주로 영접하여서, 내 육체가 죽어도, 여전히 영원히 살 내 영혼 갈 "내 집"... 하나님 품인 천국이 있다면 그것은 이 땅에서의 현 상황을 초월한, 얼마나 어마어마하게 큰 실존적 위안과 희망이 되는지요!
3. 평소의 모임 및 일을 당분간 못하기 때문에 이제는 할 수 있는 일을 하십시오.
여행, 모임, 일들이 다 취소되었다면, (평소에 그런 것들에 우선순위상 밀려서 못했지만) 소중한 것들을 하십시오. 가족과의 만남/시간/대화, 독서, 내 인생 돌아보고 업데이트된 인생계획 세우기, 일기 쓰기, 글 쓰기, 편지 쓰기, 집안 정리/청소, 운동... 등 내실을 기하기 위해서 해야 했지만, 그동안 못했던 일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어쩌면 그동안의 많은 Connections(모임, 만남, SNS 활동 등)에는 허상이 많았는지 모릅니다. Connected form을 가진 Disconnected quality/essence였는지 모릅니다. 그런 가짜 연결들이 끊어진 이 시기에 True Connection들을 성취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의 connection(기도, 말씀 묵상, 찬양), 나 자신과의 connection(묵상, 일기 쓰기, 독서 등을 통한 나 자신과의 대화/만남), 남들과의 연결(편지, 이멜, 카톡/문자, 전화 등을 통한)을 시도해 보십시오. 어쩌면 이런 황량한 시기가 우리를 더 부유하게 만들 찬스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에서 행하는 금식은 단지 단식이 아니라, 본질을 위해서 비본질을 물리쳐서 오히려 본질 안의 향연을 누리는 훈련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은 당신 바깥의 환경이 아니라, 당신 안의 관점과 생각에게 달려 있습니다.
4. 나 자신의 영향력에 대해서 점검/복습하십시오.
이제는 적당히 "우리가 남이가? 뭘 장갑/마스크를 끼어?" 하며 그냥 악수하고, 포옹하고, 그냥 만나는 등의 행위를 절대로 대충 허락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한번 생각해 봐야 합니다: '이렇게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가 나의 터치 및 사소해 보이는 기침 등을 통해서 퍼질 수 있다면, 평소에 우리가 잘 의식하지 못하는("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볼 수 있는) 우리의 말과 터치, 행동, 글 등은 얼마나 무서우리만치 놀라운 전염성/전파력을 가져왔던 걸까?' 만약 그동안 좋은 것들을 "전염"시켜 왔다면 자신을 좀 칭찬해 주세요. 그러나, 좋지 않은 것들을 전염시켜 왔다면, 반성하고 멈춰야 합니다. 그런 버릇은 "살균"해야 합니다. 혹시라도 내 안에 '괜찮아, 뭐 그 정도야!', '다 사랑해서 한 소리였어.', '모르고 그랬는 걸!'... 이런 식의 방만한 마음의 자세(멘텔러티)를 가지고 나는 얼마나 은근히 내가 속한 공동체(가족, 직장, 학교, 단체, 사회, 나라, 세계, 지구환경 등)에 악영향을 끼친 걸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5. 이제는 그동안의 편견과 오래된 악감정을 버리고 모두가 협력해야만 하는 때입니다.
이렇게 어떤 병이 글로벌하게 창궐할 때에, 한 개인/가족/동네의 힘만으로 자신을 지키는 것이 불가능해졌습니다. 한 나라의 힘으로도 자신의 국가를 지킬 수 없습니다. 모두가 힘을 합치지 않으면 모두 엄청난 희생을 각오해야 할, 임박한 공멸의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모임이 Disconnect된 이 시국에 모든 사람들과 나라들은 사실 제대로 Connect 하여서 함께 적과 싸워야만 이길 수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럴 때에 이런 상황을 똑바로 "보면서", 잘 "생각해야" 합니다. 사소한 감정들을 다 버리고 가장 높은 우선순위인 생명을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생명을 위해서는 원수 사이라도 서로 협력하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니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상황 아닙니까? 그러나, 이 점이 이 악조건에서 크리스천들이 찾을 수 있는 선함일 것입니다.
(혹시 코로나의 뜻이 "사랑의" 아닐까요? 아닙니다. Corona의 뜻은 Crown 즉 왕관이란 뜻입니다. 이 바이러스가 왕관의 끝처럼 뾰족한 돌기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입니다. 저는 문득 여기서 왕관을 쓰신 우리의 왕 예수님이 떠오릅니다. 그분이 하신 명령이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었지요. 이제는 왕의 명령을 거역하지 말라고 코로나 바이러스를 하나님께서 보내셨다고 말한다면 무리수일 수 있겠습니다만, "곤고한 날"에 저희들이 곰곰이 생각해 볼 바는 충분히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렇게 곤고한 나날일지라도 저희가 잘 "본다"면, 이 어려운 시간도 유익한 열매를 맺게 되리라 확신합니다.
언제는 저희가 환경이 좋아서 좋은 열매를 맺었나요? 크리스천들은 비크리스천들과 똑같은 악조건에서도 좋은 관점이 있기에 좋은 열매들을 맺어왔던 것입니다. 잘 "봄"으로써 저희 모두가 전천후적으로 좋은 열매를 맺는 좋은 "나무"가 되기를, 그리고 그런 저희들이 아름다운 사랑의 생태계를 이루는 "숲"을 사랑하는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는 고마운 어른들이 되기를 함께 기원합니다.
김정우 목사(발렌시아 새누리교회 담임, 661-964-8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