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렬 교수(미드웨스턴침례신학대학원 신약학)
이장렬 교수(미드웨스턴침례신학대학원 신약학)

적잖은 수의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한 대속에 대해 강조하지만, 그의 죽음이 제시하는 제자도의 본(example)에 대해서는 간과하곤 합니다. 다른 이들은 그와 반대로 그리스도가 제공하는 본에는 집중하지만 그리스도의 죽음이 가져오는 구속의 가치는 이런저런 모양으로 제한하거나 약화시킵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은 이 둘 모두를 분명하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실이 둘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불가분의 관계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요 13:1-20이 보도하는 내용(즉,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심)이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의 죽음에 특별히 집중하는 부분(요 13-19장)의 맨 첫머리에 등장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 같은 배치(arrangement)를 통해 저자 요한은 주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사건이 삶의 본을 제시할 뿐 아니라 그의 십자가 죽음을 암시하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예수님의 섬김의 궁극은 바로 십자가의 대속적 죽음입니다(막 10:45; 빌 2:6-8 참조). 그리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 신사 건은 그 궁극적 섬김을 상징적으로 표현합니다. 모든 권세를 가지신(요 13:3) 영광의 주께서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일은 바로 그가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속의 사역을 상징합니다(사 53 참조). 그렇기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장면을 보도하는 요 13:1-20 본문을 읽으며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묵상하지 않고 넘어간다면 우리의 해석은 결국 불충분한 것으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요 13:1-20이 제자도의 본에 관해 강조하고 있음 또한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이 본문은 제자들의 발을 친히 닦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에 주목합니다. 예수님은 당시 노예가 했던 발 닦는 일을 자신의 제자들을 위해 직접 행하십니다. 그리고 그러한 파격이 제자들이 따라야 할본(example)을 제시한다고 선명하게 말씀해 주십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 13:14- 15).

예수님이 제시하는 겸손과 섬김의 본은 세상이 추구하는 바와 너무나 달라서 우리에게 말 그대로 충격을 안겨줍니다. 세상은 사회적 신분과 지위에 매여 있습니다. 그래서 '아랫사람'이 '윗사람'을섬기는 것을 너무나 당연시합니다. 1세기 유대교는 제자가 스승을 준-노예 수준으로 섬기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우리와 친숙한 구약의 이야기들을 보더라도 여호수아가 모세를 섬겼고, 엘리사가 엘리야를 섬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의 섬김을 받는 게 아니라 도리어 그들을 섬기십니다. 그냥 일반적인 차원의 섬김을 넘어 노예가 할 일(즉, 발을 씻겨주는 일)을 그의 제자들을 위해 친히 행하십니다. 그런 점에서 베드로의 반응이 십분 이해됩니다.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요 13:8)!" 

제자들의 발을 씻으심으로써 예수님은 자기 홍보 나아가 자아 숭배에 중독되어 있는 이 세상의 한복판에서 그의 제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시연해 주십니다(막 10:42-45 참조). 제자들 앞에서 순도 100%의 겸손과 섬김의 본을 친히 보여주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곧이어 십자가의 죽음(제자들의 발을 씻으신 일이 상징하는 바)을 통해 제자들을 위한(그리고 세상을 위한) 그의 파격적 섬김을 완성하십니다(요 1:29 참조)! 

필자가 존경하는 한 목사님은 "목회에서 죽을 각오는 되어있어도 무릎 꿇고 종이 되어 섬기는 일은 어렵습니다. 목숨보다 자존심이 다루기 더 어렵습니다."라는 진실한 고백을 나누어주셨습니다. 이 진실된 고백에 사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공감할 것입니다. 목사님의 고백은 우리로 하여금 요 13:1-20이 보여주는 예수님의 파격에 주목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한층 더 집중케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우리 안에 살아 숨쉬기를 바랍니다. 주께서 친히 보여주신 파격적인 겸손과 섬김의 본에 대한 우리의 묵상이 그분을 따르는 거룩한 모방(imitation)으로 이어지길 갈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