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윤수 목사 (수정교회 담임, 서북미장로회신학대학)
남윤수 목사 (수정교회 담임, 서북미장로회신학대학)

'촌철살인'이란 말이 있다. 작은 쇠붙이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말인데, 작은 말 한마디가 사람을 감동시킨다는 말로 쓰인다.  '인간은 감동을 먹고 사는 동물이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즉 감동을 많이 할수록 사람은 건강해지고 삶도 윤택해진다는 말이다. 60~70조개를 이루는 우리의 몸의 세포들에는 핵을 중심으로 전자가 돌고 있는데, 사람이 감동을 하면 전자의 회전수가 빨라져 전달물질과 수용체의 결합이 원활하므로 기억력, 사고력 등이 급격히 향상된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된지 오래다. 엔돌핀과 다이돌핀의 호르몬이 우리 몸에 활발히 분비되기 위해서는 감성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감동을 할 줄 아는 사람은 슬픔과 기쁨을 민감하게 나타낸다.  이러한 감성은 신앙과 인간이해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오늘날처럼, 정보화된 시대는 일찌기 없었다. 인터넷의 여파로 우리는 손쉽게 모든 세상을 접한다. 지식 전달의 최첨단 산업의 주를 이루는 이 사회는 그야말로 정보의 홍수 속에 살아간다. 그 뿐 아니라, 기능의 혁신은 모든 가치의 핵을 이룬다. 제 4의 물결이라 불리는 제 4차 산업혁명은 그야말로 '기술혁신'과 '개인자본주의'의 거대한 산맥이다. 피할 수 없는 물결의 엄블레라 속에 사회나 개인은 융화되고 경쟁의식으로 감정이 메마를 수 밖에 없다.  

여기에 인간성 상실, 가치관의 변질 등 궁극적 목적( Ultimate Goal)이 사라진, 기계화된 삶이 인간의 건강을 위협하는 것이다. 여기서 건강이란 영과 혼, 육의 조화있는 질서를 말한다. 인간이 물질을 얻기 위한 구체적 목표(Concrete Target)만 있지, 인간 가치를 이루기 위한 궁극적 목적이 결핍되면  로봇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인간은 인간다워야 행복을 느낀다. 그것은 감성이다. 진정한 웃음과 슬픔, 감동을 적절히 표현할 수 있고 작은 일 속에도 큰 가치를 느끼며 산다면 인간은 '왜 사는지'를 알게 된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과 지식을 전달하기도 하지만, 그 분과의 인격적 관계, 감정, 감사, 감동의 관계로도 서술된다. 신앙에 감동과 마음의 울림이 없다면 그것은 신앙이 아니다. 감동이란 인간이 거대한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적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에 대해 겸허한 놀람의 감성이다. 교회와 가정, 사회에 그런 감동이 많아야 한다. 회사에서 사장이 직원들에게 감동을 준다면, 그 회사는 비젼과 생산성이 절로 태동될 것이다.

먼저 나자신을 위하여 감동의 삶을 살라. 잘 안된다면, 억지로라도 감동하고 웃어라. 몸의 자율신경은 현실을 보는 것이 아니라,  감정에 따라 반응한다. 그래서 일부러 웃어도 우리 몸은 건강하게 되어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감동의 말을 전하도록 노력하라. 어느 CEO가 직원들에게 '일보다 사람이 먼저다.'라고 말했더니, 그 회사의 생산성이 한층 높아졌다는 사례가 있다. 직원들이 감동한 것이다.  감동하니 행복을 느끼고 열정이 생기며 창작의 능력이 따라오는 것이다. 부모가 자녀에게 감동을 줄 수 있도록 하라. 밥을 먹을 때도 습관처럼 '너무 맛있다.'라고 하라.  교회에서 설교들을 때도 맛있게 받아 먹도록 노력하라. 자신을 감동시켜라. 그러면 사람의 가치가 무엇인지 알게 된다. 우리에겐 정말로 감동을 줄 수 있는 목사, 정치인, 지도자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그런 사회야말로 인간이 진정 바라는, 살 맛나는 세상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