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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장로교회 박효진 장로 간증집회 첫째날 <영적 전쟁>

기독일보 news@christianitydaily.com

입력 May 09, 2019 01:40 PM P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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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 전문

박효진 장로
(Photo : 기독일보) 박효진 장로(전 청송교도소 교도관, 소망교도소 부소장)

지난해 5월에 아버님이 세상을 떠나셨다. 91세를 사시고 돌아가셨다. 슬프거나 울 겨를이 없었다. 매일 매일이 신비로웠고 아버지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너무 놀랍고 감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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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얘기를 하면 사람들이 ‘아버지가 돌아가시는데 뭐가 기쁘냐’고 하시는데, 내가 아는 한 우주에서 제일 안 맞는 분이 아버지와 어머니이다. 물과 기름처럼 생각도 다르고 만나면 싸우셨고 도란도란 마주보고 웃으시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젊어서 아버지는 영혼이 자유로운 분이라 2,3달 집에 안 들어오신다. 그러다 아버지가 돌아오시면 어머니와 싸우셨다.그렇게 안 맞는데도 신기하게도 6남매를 낳았다.

어머니가 아버지 때문에 가슴에 박힌 대못이 200개가 넘는다고 하신다.

어머니는 내가 아는 여자 중에 가장 비참한 인생을 사셨고 불쌍한 인생을 사셨다. 그렇게 사시다 연세가 70세가 넘어가니 전세가 바뀌었다.

눈물의 기도, 하나님 앞에 간절히 몸부림친 결과 두 분이 교회를 나가게 되셨다. 제가 ‘예수님을 믿으셨으니까 아버지를 용서하셔야 합니다’라고 말씀드리면, 어머니는 ‘세상 사람 다 용서해도 너희 아버지 용서 못한다’라고 하셨다. 아버지가 고난의 20년을 사시다가 작년 2월부터 몸이 안좋아지셨다. 91세 노인이 고기를 끊으시고 일주일째 되니 완전히 말라서 힘들었던 생애를 끝내고 먼 죽음을 향한 여행을 떠나고 계신 모습이 보였다.

어머니가 그 모습을 보시고 고소해 하셨다. 그런데 아버지는 세상과 단절된 가운데 있지만 영은 살아 계셨다. 제가 다가가 ‘아버지, 제가 왔습니다’하면 얼굴이 밝아졌고, 제 손을 잠시 잡으셨다가 5초면 힘이 없어서 손을 놓으셨다. 그런데 어머니가 (아버지가 누우신 지) 10일이 지났는데 ‘너희 아버지가 참 불쌍하다, 저렇게 밥도 못 먹고 측은하다’고 하셨다. 평생 처음 듣는 소리였다.

어머니가 아버지 침상 옆에 붙어 있는 시간이 늘어 갔다. 거의 하루 종일 아버지 곁을 안 떠나셨다. 끊임없이 얘기를 하시는데, ‘영감, 내가 참 못된 여자요. 내가 당신에게 너무 막말하고 못되게 했소. 나를 용서하시오’라고 하셨다. 그러면 아버지는 베갯머리가 젖을 정도로 우셨다. 아버지 어머니는 한 살 차이셨는데, 90 넘어서 러브스토리를 쓰셨다.

아버지가 자리에 누우신 지 38일째 되던 날, 어머니가 ‘내가 너희 아버지에게 미안하고 오늘 아버지 얼굴을 보니 미안한 마음이 들어, 난생 처음으로 영감, 내가 당신 사랑합니다. 난생 처음으로 사랑고백을 했다. 그랬더니 내 온몸이 불 타듯이 너무 놀랍고 황홀한 경험을 했다. 이렇게 좋은 게 사랑인 줄 알았으면 진작 사랑할 것 그랬다’며 하염없이 우셨다.

아버지는 아기처럼 밝은 모습으로 세상을 떠나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우리 가족 누구도 운 적이 없다. 하나님의 손길이 너무 놀라웠다. 문상 온 분들이 초상집에 눈물도 없고 6남매가 기쁜 축제가 벌어진 것을 보고 놀라셨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모든 것을 회복하게 하시는 은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금식 기도의 응답...'내 은혜가 네게 족하니라'

28년동안 수천 번 집회를 했다. 능력, 권세 별로 없습니다. 저는 솔직히 집회를 다니며 능력 받은 강사들, 손만 대면 병이 다 낫고 각양 은사를 가진 분들이 부럽다. 그래서 늘 기도한다. ‘하나님 저도 하나 주세요.’ 10년 넘게 기도해도 주지 않으신다. 안양의 갈멜살 기도원에 금식할 작정으로 올라갔다. 새벽 2시쯤 울면서 기도했다. 새벽 2시경에 10년 기도 끝에 응답을 받았다. 내 귀에 대고 누가 말하듯이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라는 음성이 들렸다.

교도소 구치소 안에 행하신 주님의 놀라운 일들을 경험했다.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보다 더 큰 은혜를 베푸시는 현장을 보면서 제 가슴에 불을 받았다. 이 집회에서 조그마한 성냥불을 나눠 줄 것이다. 작은 성냥불이라도 잘 받아 심령에 잘 보존하면 번지고 번져 등불을 이루고 산불을 이룰 수 있다.

우리 집은 예수 믿은 것이 기적이다.

우리 집은 일년 제사가 41번 드리는 종갓집이었다. 집에 사당이 있고 사당 제사가 한달에 두번씩이라 예수 믿는 분들 주일 돌아 오듯 제사가 돌아오는 가정이었다. 그런 제가 결혼을 했다. 나중에 보니 제 아내가 예수를 믿는 사람이었다. 아내는 처녀 때 주님을 믿고 성령 체험을 했다. 결혼을 앞두고 예배를 빠지고 슬금슬금 빠지고 교회를 안 다니기 시작해, 저와 결혼할 때는 이미 ‘지옥 갑니다’ 생각하고 종갓집에 시집을 왔다.

결혼 한지 2년 후, 아내가 인근 교회 종소리에 잠이 깼다. 갑자기 처음으로 가슴이 울렁거렸다고 했다. 아내는 누워 있다가 혼자 이렇게 말했다. ‘주님 잘못 찾아 왔습니다. 저는 주님을 떠난 지 오래됐고 지옥 갈 결심하고 종갓집에 결혼을 왔습니다.’ 성령께서 터치하는 것을 느꼈고 계속 가슴이 울렁거려서 나중에는 두 손으로 귀를 틀어 막았다고 한다. 교회 종소리가 끝나고 나서도 계속 소리가 울려왔다. 난생 처음으로 성령의 음성을 들었다.

‘사랑하는 내 딸아, 너는 나를 떠났지만 나는 너를 떠난 적이 없다. 다시 돌아오라.’ 아내는 주님을 떠났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결코 놓치지 않으셨다. 지옥 문 앞까지 따라 오셔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악착같은 은혜를 제 아내가 그때 깨달았다. 베갯잇이 다 젖도록 울었다고 한다. 이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

매일 어른들 드실 신선한 음식을 사러 시장에 가는 아내, 알고보니....

몇달이 지난 후 아버지, 어머니가 입만 열면 며느리 칭찬을 하셨다.

‘우리 집 며느리는 얼마나 착한데. 냉장고에는 어른들 드실 음식을 넣으면 안 됩니다. 아내는 ‘냉장고에 넣어 두면 신선도가 떨어져서 매일 시장에 가서 사와야 한다’며 시장에 가는 것처럼 하고 잠깐이라도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있던 건데, 뭣 모르고 어머니 아버지가 좋아하셨다. ‘종갓집 종부가 교회에 가더라’ 하는 소문이 돌고 돌아 아버지 어머니에게 들어왔다. 두 분은 배신감에 넘어지셨다. 우리 문중이 ‘어떻게 하면 좋냐’를 놓고 모여 회의 끝에 결론을 내렸다.

우리 부부가 피고인 석에 앉아 있고.. ‘자네가 믿는 예수를 버리든지 이혼을 하든지 결정해라.’ 아내는 ‘어머니 아버님 저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예수를 버리지 못합니다. 이혼도 못합니다.’ 그래서 매일 이혼 독촉을 받았다. ‘이러다가 다 죽겠다’ 싶어, ‘어떻게 하면 살릴까?’

고민을 하는데 길이 보였다. ‘제가 교회를 나가는 것’이 방법이었다. 제가 말씀을 드리자, 어버지 어머니가 충격을 받으셨다. ‘제가 생각해 봤는데, 예수 믿는 병이 너무 깊어요. 제가 교회에 다녀서 확실한 비리를 찾겠습니다.’ 제가 아내에게도 거짓말로 ‘당신 혼자서 받는 고난을 눈뜨고 못 보겠어. 내가 방패가 되어줄 게.’ 라고 말했지만 사실 저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2~3년 다니다가, 아내를 설득해서 교회를 나오게 해야지.’

하나님께 한번 붙잡히면 끝장이다. 절대 놔주지 않으신다.

아내 따라 다니는데, 교회가 얼마나 인심이 좋은지 저에게 집사를 하라고 하셨다. 누가 봐도 교회 안에서는 1등 집사, 그런데 제 심령 속에는 9년이 될 때까지도 0.001초도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에 대해 눈을 못 떴다. 아무리 믿어보려고 몸부림을 쳐도 믿지 못했다. 없는데 믿는 것처럼 믿고 사는 존재 정도로 생각했다. 중고등부 교사로 봉사도 하고 집사로서 할 것은 다 한다. 그러나 교회 밖으로 나가면 마음껏 먹고 마시는 데 1등이다. 폭탄주 공장 공장장이, 체인스모커가 제 별명이었다. 노래방 가자고 하면 신나게 노는 데 1등이죠. 교회 안에서는 믿음의 집사로 칭찬 받고, 나가서는 세상의 동료들이 칭찬해 준다. ‘예수를 믿으려면 저렇게 믿어야 한다. 할일 다하고. 저렇게 교회를 열린 마음으로 다녀야 한다’고. 당시에는 그런 얘기 들을 때마다 어깨가 올라간다. 내 기준으로 보니, ‘내가 맞지. 너무 열심히 믿는 사람은 지나쳐. 기도할 때마다 왜 우나. 왜 모든 걸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나. 감사가 왜 이렇게 많나. 너무 자기 합리화하고 사는 불쌍한 인생들. 저게 신앙인인가.’라고 생각했다.

말씀의 능력, 하루만에 그를 변화시켜

38세 되던 해, 성령께서 생각지도 못한 저를 찾아와, 말씀이 비수처럼 마음에 꽂혔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 3:16), 0.1초 보다 더 짧은 시간에 말씀이 저를 사로 잡는데, 제 지정의, 제 몸을 사로잡는데 튀어나온 말이 ‘하나님이 살아계시네!’

술잔만 봐도 먹기 싫고 담배 연기가 들어와도 창자가 끊어지는 듯 했고 더러운 장소들이 지옥의 밑바닥 보다 더 무섭게 느껴졌다. 단 하루 만에 완전히 단절되어 버렸다.

사형장에 대한 증인은 제가 마지막일 것 같다. 사형집행은 거의 이제 못한다. 세계적 추세가 그러하고 인권의 문제 때문에. 여러 제약을 받기 때문에.. 사형장에 관한 최후의 증인이 저입니다.

역사의 사생아 청송 감호소...질서와 규율은 바닥

제 인생이 달라졌다. 청송 감호소는 우리 역사상 가장 아팠던 시대에 잉태된 역사의 사생아다. 청송 감호소가 생기자 마자 징역 5년을 살았는데 안 내보낸다. 위험하니까 10년 사회보호를 부과하니, ‘끝났는데 왜 가둬 놓느냐’라고 불만이 쌓이고, 자포자기에 눈에 보이는 게 없는 사람들이다. 15~20년. 나가봤자 환갑 진갑이 넘는다. 나가 봤자 돈도 없고 가족도 없다. 전과 5범정도 되면 보통 교도소에서 날고 긴다. 그러나 청송감호소에서는 명함도 못 내놓는다.

가족들도 손사래를 친다. 관계를 단절하고 주민등록 말소하고, 이제 남은 건 분노와 증오와 버림 받음 밖에 없다. ‘사회가 우리를 버리지 않았냐’, ‘가족도 우리를 버렸다.’ 자기 자신도 자신을 버렸다. 그때부터 인간이 아니다. 인간이 자신을 위한 마음 마저 놓쳐버렸으니 짐승보다 못하다. 규율과 질서가 바닥이다. 교도관이 끌고 갈 법은 바닥. 힘의 균형이 역으로 간다. 그것을 보니 너무 위험하다 판단. 이대로 가다가는 담장 너머로. 누군가는 이 질서와 통제권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 이것을 제가 앞장선 것이다. 누구도 그러지 못했다. 내가 죽더라도 해야겠다.

그때부터 그들과 싸웠다. 볼 때 마다 그들이 밉다. 조금만 그들의 죄를 이야기하면 아침을 드시기 힘들 정도로 징그러운 이야기가 가득하다. 연약한 여자들 상대로 사악한 범죄를 저지르고 인신매매 저질러 술집에 팔아 먹고 마약 하고…이런 놈들이다. 손에 몽둥이를 들고 그 나름대로의 명분에 사로 잡혀서 그 길을 달려갔다. 위험한 고비도 많이 넘겼다. 칼로 목을 찔리기도 했다.

저는 법이 허용하는 한 잔인하게 그들을 대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아이들이 제 옆에 오지 않는다. 제 아내도 제 곁에 오지 않는다. 언제부터인가 거울을 보면 제 얼굴이 인간의 얼굴이 아니다.

좋든 나쁘든 우리는 타인을 판단하며 산다. 꼭 무엇인가를 향해 쏘면, 그 곱하기 3배가 나에게 돌아온다. 이웃을 사랑하면 3배의 사랑이 저를 찾아옵니다. 이웃을 용서하면 3배의 용서가 나를 찾아온다. 상대를 판단하면 3배의 판단이 저를 찾아온다.

지옥에서 온 박 주임, 싸늘한 태양

흉악한 인간들, 암같은 인간들 미워하고 짓밟은 그 해악이 곱하기 3으로 제 인생을 찔러 왔다. 인생의 파탄이었다. 제 모습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지옥에서 온 박 주임’, ‘싸늘한 태양’이 죄수들이 제게 붙인 별명이었다.

지금은 옛날 제 모습이 아무리 봐도 안 보인다. 이렇게 악을 쓰고 그들을 휘어잡은 제가 제가 제 입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고 그 다음날 아침에 출근했다.

어제 까지만 해도 죽여버리고 싶은 흉악범들이 주님이 저를 찾아오시고 은혜를 받은 후 한 사람 봐도 눈물이 나고 두 사람 봐도 눈물이 나고 이 눈물이 통제가 안된다. 눈물은 외부에서 오는 느낌이 제 내부를 자극해서 나는 것인데 길을 걸어가도 눈물이 줄줄 나고 밥을 먹는데 반찬 그릇에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베갯머리가 젖어 있고 몇달 동안 눈물을 흘렸다. 날마다 눈물이 흘러 눈가가 따가웠다.

눈물 속에 떠오른 죄수의 얼굴

‘왜 저들을 두들겨 팼나’ 후회가 됐다. 알고 보니 저들은 들킨 도둑놈 너는 안 들킨 도둑놈. 차라리 들킨 도둑놈이 우리 보다 순수할 수 있다. 더 순박할 수 있다. 우리가 더 교활하고 거짓될 수 있다. 그 눈물 속에 가끔 죄수의 얼굴이 들어온다. 그리고 손이 모아지고 기도가 된다. ‘하나님 제가 잘못했네요. 법을 뛰어넘어 저들을 너무 잔인하게 대했습니다.’ 흉악범의 얼굴이 떠오를 때마다 회개하고 눈물로 기도하는 게 일이 되었다.

하루는 눈물 속에 이영호가 떠올랐다. 최고 악질이었다. 사람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잔인 무도했다. 판결문을 2장만 읽어도 구토가 날 정도의 인간이다. 그런데 그 녀석이 생각났다. ‘주님 제가 영호에게도 큰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기도를 하는데 평상시와 달랐다. 평상시에는 기도하면 마음이 평안해 지는데 그때는 이상하게 마음이 더 뒤틀리고 해결이 안됐다. 문득 성경 말씀이 생각났다.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마 5:23-24)

혼자 기도할 게 아니고 영호를 찾아가 마주보고 사과해야겠다. 영호를 불러내자, 그가 얼굴에 비장한 각오를 하고 나왔다. 그의 손을 잡고 ‘너 얼마전에 나에게 두들겨 맞았지?’라고 물었다. 영호는 한참 동안 저를 보더니 ‘그런 적 없는데요’ 라고 거짓말을 한다. ‘너 얼마전에 담배 때문에 조사 받고 징벌 받았잖아’라고 하자, ‘징벌은 받았지만 주임님께 두드려 맞은 적은 없지요’라고 거짓말을 한다.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하나님 알고 나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너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지었다. 미안하다 용서해라.’

우리 영혼은 성령과 엇박자

영호는 어쩔 줄 몰라서 내 눈만 보고 가만히 서 있었다. 영호의 황당해 하는 눈빛과 몇 번 부딪혔다. 제 안에서 울리는 성령의 음성을 들었다. 여러분 안에서 성령께서 말씀하고 계신다. 말씀 만이 아니라 통곡하고 탄식하신다. 우리 안의 온갖 더러운 죄가 끊임없이 그 음성을 누르고, 교만과 아집이 자가 생산되고 있어 성령께서 아무리 탄식하시고 통곡하시고 책망하셔도 영적으로 감지가 안된다. 아무리 일류 연주자가 그랜드 피아노를 연주한다 해도 저 피아노 안이 온갖 더러운 것들로 채워져 있으면 자기 음을 내지 못하는데 여러분과 제가 저 악기보다 더 예민한 하나님의 성전이다.

그러니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울고 계시는데 우리는 세상 것을 보고 낄낄 웃고 있는 게 우리의 한계다. 음악 하는 사람들에 의하면 엇박자가 가장 연주에서 골치 아픈 것이라고 한다. 우리 인생이 엇박자 같다. 심령을 깨끗하게 정리해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내 안에 깨달아져서 성령님이 요구하시는 대로 살아가는 삶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너 무슨 용서를 그렇게 구하고 있니'

그날 영호의 손을 잡고 우는데 제 속에서 너무나 분명하고 뚜렷하게, ‘너 무슨 용서를 그렇게 구하고 있니. 꿇어 앉아.’라는 음성이 들렸다. 귀로 들은 음성보다 더 분명하고 또렷했다. 청천벽력 같이 그 음성이 들렸다. 그런데 제 자아가 제동을 걸었다.

‘여기서 어떻게 꿇어앉나. 신분의 차이, 제복의 차이가 어떤 것인데 어떻게 꿇어앉나.’

두 마음이 싸웠다. 짧은 시간이지만 자존심이 걸렸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제가 그때 집사 9년차였다. 집사 9년차 동안 한번도 하나님에 대한 인식도 없고 말씀에 귀 기울인 적도 없었지만 귓등으로 들었던 설교 제목이 생각났다.

‘순종이 제사 보다 낫다’

죄수 앞에 무릎을 꿇자마자 강렬한 밝은 빛이...

드디어 마음이 꿇어앉는 쪽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갔다. 근처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었다. 이때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 3초 정도만 꿇어 앉으면 되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내가 무릎 꿇고 용서 빌게 용서해라’ 하고는 무릎을 꿇었다. 제 원래 계획대로라면 1,2,3초 후에 일어나야 했다. 그런데 무릎을 꿇자 마자 ‘꽝’하고 눈 앞에 밝은 빛이 비춰져 눈을 뜰 수 없었다. 쓰나미처럼 감당이 안되는 환희가 밀려 왔다. 부끄럽다는 생각도 없고 평생 이렇게 살기만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도 무릎 꿇고 2,3분이 지나서는 제 등과 목을 와락 끌어 안더니 통곡을 했다. ‘주임님, 저는 짐승 보다 못한 놈이요, 죽일 놈이요’ 저는 그러면 ‘아니다, 내가 죽일 놈이다’ 하며 서로 우겼다. 서로 ‘내가 죽일 놈이요’ 라고 우기며 사나이와 사나이가 땅 바닥에 끌어안고 울었다. 원수 중의 원수 그 둘이 가슴을 끌어 안고 운다. 그 동안의 증오와 살기가 눈 녹듯 녹아 내리고 그렇게 울면서도 신기하게 서로 대화가 됐다. 울다가 감동이 되어서 ‘영호야, 너 예수님이 너를 위해 돌아가신 거 아나?’ ‘네, 압니다.’ 가장 아름다운, 가장 멋있는 가장 충격적인 눈물이 그날 흘린 눈물이었다. 그렇게 30분 정도 울다가 주위를 보니 창문 가에 구경꾼이 바글바글 붙어 있었다. 그리고 그 일은 청송감호소에 탑뉴스가 되었다.

그날 이후로 예수님을 받아들인 영호와 저는 대한민국 최고의 친구가 된다. 자다가도 영호 생각만 하면 웃음이 나오고, 찬양 중에 ‘산천도 초목도 새것이 되었고. 죄인과 원수가 친구로 바뀐다’의 가사처럼, 지옥의 벼랑 끝에서 영호는 급속도로 바뀌었다. 하나님이 살아있는지 모르겠지만 영호가 바뀌는 것을 보니까 부인할 수 없었다.

아주 무서운 말이 여러분에게 전해졌다.

‘죄수 하나가 바뀌니 그의 바뀐 삶을 통해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존재 여부를 가로 짓는 기준이 된다. 여러분은 어떤가? ‘저 사람 보니까 교회 다닐만하구나’ 우리 표정 하나가 그런 기준이 된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우리가 중요한가. 과거는 다 털고 잊어버리고 오늘부터 새롭게 시동버튼을 누르는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영호는 나보다 눈물이 더 많다. 서로 용서하고 화해했던 용납의 눈물이 항상 베어있다. 또 아직도 예수 몰라 지옥 갈 형제들을 생각하며 운다. 그가 ‘우리 이제 인간답게 살아보자. 언제까지 짐승처럼 살 수는 없잖아. 박효진 주임도 예수 믿고 인간 됐다’라고 하면 대부분이 알았다고 영혼의 눈물 앞에 엎어 진다. 흉악범이 변화되면 100명의 죄수들을 변화시킨다. 그 흉악범의 눈물이 떨어진 곳마다 변화가 일어나 9개월 만에 1,600명이 예수를 영접했다.

제 생애의 가장 놀라운 부흥의 기적이 청송감호소에서 일어났다. 증오와 미움이 하늘을 찌르는 곳, 그곳의 영호와 흉악범들에게 예수님 이름이 떨어지자 마자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는 곳으로 변화됐다.

그들의 피맺힌 기도에 응답하셔서 청송감호소는 문을 닫고 청송 직업훈련소로 바뀌었다. 그 교도소에서 첨단 기술을 익혀서 사회로 내보내는 생명의 도장이 되었다. 청송감호소는 문을 닫았고 전국 교도소 마다 입버릇처럼 외치는 ‘무사고’의 가장 밑바닥에는 복음 밖에 없다. 저는 벼랑 끝의 선교사다. 마지막으로 저들을 붙들 선교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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