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충성을 낳고, 의심은 반역을 낳는다."

이 말은 북한 사상영화의 한 대사이다. 위대한 수령과 노동당을 신뢰하고 믿는 자가 충성할 수 있고, 의심하는 자는 반역자가 된다는 사상교양 용어이다.

북한에선 어린아이부터 시작하여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두 나이에 합당한 조직에 가담되어 조직생활을 해야 한다. 소년들은 소년단 조직생활, 청년들은 사로청 조직생활, 청장년들은 직맹 조직생활, 여성들은 여맹 조직생활, 심지어 당원들까지 당 조직생활을 엄격히 지켜며 생활해야 한다.

이 조직생활에서 제일 고통스러운것이 생활총화이다. 생활총화도 주 생활총화, 월 생활총화, 분기 생활총화로 개개인의 충성심을 고취시킨다.

생활총화의 형태는 조직원 개개인이 집단앞에 나와, 본인이 1주일동안 살면서 잘못한 것을 스스로 군중앞에 털어놓고 반성함과 동시에,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고 '호상 비판'하는 일련의 투쟁회의이다.

이 생활총화를 주도하는 조직위원장은 늘 서두에 "우리 당은 자신을 진심으로 뉘우치는 자에겐 과오를 묻지 않고 용서해 준다"는 달콤한 말로 사람들의 속마음을 털어놓을 것을 강요한다.

사실 이 생활총화로 인해 서로 불신하고 적대적 마음을 품고 보복하는 비극들이 생활총화 때마다 보여지지만, 간부들은 이런 투쟁을 은근히 유도하며 집단 통제를 꾀한다.

당은 "뉘우치는 자들은 모든 것을 용서한다"고 현혹하지만, 최고지도자의 존엄과 노동당에 대한 자아비판 또는 불만에는 가차 없는 처벌을 통해, 군중을 각성시키곤 한다. 이런 조직생활이 북한에서 인민으로 살아가야 하는 고통과 괴로움이었다.

이 같은 조직에 대한 아픔들을 안고 있는 탈북민들은, 교회를 접하면서 '조직생활이 싫어 탈북을 하였는데 또 하나님 조직에 몸을 담고 생활해야 하는가' 늘 반문하면서 '김일성에게 속았는데 또 하나님께 속는 건 아닌지' 의심의 마음을 품게 된다.

이런 실패와 배신의 삶을 경험한 탈북민들에게, 지금 그들이 북한 땅에서 배웠던 "믿음은 충성을 낳고 의심은 반역을 낳는다"는 말이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에 꼭 필요한 명언이라고 말하고 싶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임을 알지 못하는 탈북민들에겐, 철저한 신앙체험만이 돌처럼 굳어진 이들의 마음을 녹일 수 있다.

나 역시 탈북민으로서 중국에서 생명이 위태로울 때, 목사님을 통해 경험하게 된 신앙적 체험이 죄를 고백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기를 결단하고 세례를 받게 된 동기였다.

탈북 초기 조선족 한 할머니를 우연히 만나, 그의 손에 이끌려 중국 심양에서 역사깊고 유명한 OO교회로, 그것도 새벽기도회를 갔다가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당시 나를 새벽기도에 데리고 간 할머니는 "교회에서 예배 후 밥을 먹여준다"는 달콤한(?) 말을 했고, 배고픔을 달래려 무작정 교회로 따라가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 날 예배당 안에 들어서는 순간,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은 동시에 정신적 큰 충격을 받았다. 예배당은 마룻바닥이었고 방석들이 나란히 놓여 있었는데, 나를 데리고 온 그 나이대 할머니 10여 명이 무슨 큰 죄나 짓고 잡혀 온 사람들처럼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인 모습에, 온몸에 공포의 전율이 흘렀다. 당시 모습은 예배시작 전 조용히 기도하는 모습이었다.

더욱 나를 공포로 몰아넣은 것은 강대상 앞의 희미한 십자가였다. 어두컴컴한 예배당 안에 십자가만 빨갛게 비치는 그 광경이, 어릴적 북한 교과서에서나 보았던 광경 그대로 였다.

어린시절 북한 교과서에는 미 제국주의 승냥이들은 우리나라를 침략하기 위해 훈련시킨 선교사들을 통해 삼천리 금수강산 조선으로 기어들어와, 곳곳에서 살인과 금은보화를 약탈해 갔다고 적혀 있었다.

그런 교육 탓에 그날 나는 승냥이 소굴로 잘못왔음을 직감하고, 살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무작정 밖을 향해 뛰쳐나오다 교회 문앞에서 새벽기도 인도차 들어서는 목사님과 정면으로 마주했다. 당시 여성이던 목사님이 하얀 가운을 입고 성경책을 옆구리에 낀 모습에, 흰옷 입은 귀신을 만난 것으로 착각하고 그 자리에 쓰러져 정신을 잃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목사님 방이었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나를 걱정하며 머리맡에서 간호하고 있던 목사님 앞에서, 나는 벌떡 일어나 목사님 발목을 잡고 다짜고짜로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그리고 내가 탈북민이고 교회에 오게 된 동기를 밝히면서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더니, 목사님께서는 교회를 '사람 죽이는 곳'으로 착각한 내게 어이없는 웃음을 지어 보이시며 "교회는 사람을 죽이는 곳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곳"이라고 위로해 주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나는 그 뒤 6개월을 독신인 목사님과 함께 지냈고, 목사님을 내 어머니로, 목사님은 나를 양아들로 극진히 보살펴 주셨다.

그러나 이런 보살핌도 잠시, 누군가 '목사님 집에 탈북민이 있다'고 공안에 고발하는 바람에, 어느 날 공안이 교회로 들이닥쳤다. 목사님은 그날 나를 순순히 공안에 넘기지 않았고, 위험을 무릅쓰며 나를 지켜 주셨다.

당시 이런 행동은 자칫 엄청난 처벌로 이어질 수 있었음에도, 목사님은 나를 보호해 주셨다. 나를 숨겨주고 공안에게 완강히 거부했기에 공안은 돌아갔지만, 나는 목사님의 속내를 의심하며 이런 질문을 했다.

"목사님, 나는 목사님의 친척도 아니고 친아들은 더더욱 아닌데, 목숨걸고 나를 살려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혹시 나에게 뭐 바라는 게 있는가요?"

이런 어이없는 나의 질문에 목사님께서 대답해 주셨던 말씀, 그 말씀은 평생 나의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내가 목사로서 네 생명 하나 지켜 주지 못한다면 어찌 하나님 앞에 얼굴을 들 수 있겠는가? 성경은 우리에게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 하셨는데, 네 생명도 하나님 안에서 너무도 소중하기에 그 말씀에 충실했을 뿐이다."

이 사건은 훗날 주체사상에 평생 속아온 내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게 된 동기였고, 나의 체험신앙 간증이 되었다.

/강철호 목사(새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