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운 산도를 기억하시나요? 어렸을 적 우리들 사이에서 산도를 먹는 법은 이랬습니다. 봉지를 벗기고 양쪽의 과자를 비틀어 돌립니다. 과자가 열리면 안에 들어있는 달콤한 크림만 핥아 먹습니다. 그리고 크래커는 쓰레기통에 버립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이것은 온전한 산도를 먹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기도할 때도 어렸을 적 산도 먹는 심보로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입니다. 모세처럼 다윗처럼, 요셉처럼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완성된 모습만 기대합니다. 그들이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치른 댓가를 기억하지 않습니다. 다윗과 요셉은 10대와 20대를 온통 억울함과 고통으로 요약되는 삶으로 희생했습니다. 모세는 80세에 바로왕 앞에 서기 위해, 태어날 때부터 난관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께 쓰임받은 사람 중에 난관을 통과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부르심은 항상 난관과 함께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난관을 믿음으로 돌파하는 사람에게는 어김없이 큰 은총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도 그렇습니다. 정혼한 여인이 아기를 갖는다는 것은 살기를 포기하는 일입니다. 성령으로 아기를 가졌다고 이야기 한들 세상의 어느 한 사람 그녀를 이해해줄 사람은 없습니다. 심지어는 부모조차도...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할 수 있다는 인간 최고의 축복은 생명을 맞바꾸는 선택의 난관과 함께 주어졌습니다. 마리아는 선택했습니다. “나는 주의 계집종이오니...”
죽음을 무릅쓰고 순종하기로 결단했더니 이젠 하나님이 바빠지셨습니다. 천사를 보내어 요셉을 설득하십니다. 위로할 자들을 만나게 하십니다. 동방박사를 보내어 예수님을 양육할 때 필요한 선물을 보내주십니다. 사악한 헤롯왕의 손으로부터 신비로운 방법으로 보호하십니다.
예수님의 족보에 (마태복음 1장) 다섯 명의 여인이 등장하는데,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 기꺼이 삶으로 지불하는 댓가를 치렀다는 것입니다. (다말, 라합, 룻, 밧세바,마리아) 크림을 발라먹고 크래커를 버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버린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은총을 받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놀라운 것을 주실 때 난관이 함께 옵니다. 그리고 그때야말로 저와 여러분 안에 있는 믿음이 참된 것인지 보여드릴 수 있는 기회임을 잊지 마십시오.
순종한 마리아에게 임한 은총과 놀라운 기쁨이 풍성한 크리스마스 되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