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종, 예수사랑교회
이용종(예수사랑교회)

세상에는 많은 상황적인 애통이 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말씀하신 애통은 내면적인 애통이며 그 때 영적인 눈이 열리기 시작한다. 시편 119편 136절에는 ‘저희가 주의 법을 지키지 아니하므로 내 눈물이 시냇물같이 흐르나이다’라고 했다. 바울도 빌립보서 3장 18절에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한 것에 대한 눈물과 애통을 말한다.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가 무엇일까? 죄이다. 주의 말씀대로 살지 못한 죄, 세상 즐거움에 빠진 죄, 세상 자랑에 빠진 죄, 세상 돈에 빠지고 세상의 편안함에 만족하는 죄...그들은 어떠한 영적인 긴장도 없고 주님의 마음을 슬프게 하는 존재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니 나의 죄를 위해 돌아가신 십자가 앞에서 애통하게 되고 나의 죄로 인한 십자가이기에 애통하면서 죄를 이기려 한다. 죄에 대해 애통하는 영이 부어져야 죄를 이기는 것이다. 죄를 한번도 짓지 않으신 온전한 예수님이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실 때는 우리도 주님을 닮아 애통함으로 죄를 짓지 않고 온전히 주님을 따라야 함을 전제한다. 사도바울은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우리가 거룩함으로 변화되지 않으면 거룩한 존재로 바뀌지 않고 죄를 이기지 않으면 주님을 볼 수 없다고 했다.

우리의 탄식은 벗고자 함이 아니라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다. 그것은 거룩함을 덧입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애통은 거룩함을 향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에게 필요할가? 또 누구에게 오시나? 바로 마음이 상한 자에게 오시며 애통하는 사람에게 오신다. 애통하는 자의 위로자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할 때도 바로 이 애통과 관련이 있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7장 24절에 자신의 존재가 곤고하고 사망의 몸에서 건질 자가 없음을 탄식했다. 사도바울과 같은 하나님의 위대한 종도 자신 안에 죄라는 실존을 느끼고 죄에 대한 탄식으로 비참해 한다. ‘죄가 나를 사로잡아 오는 도다’라며 탄식한다.

죄의 강력함은 내가 죄를 거절할 때면 잠시 멈추지만 마음을 놓고 긴장을 풀면 한 걸음씩 다가와서 사로잡는다. 그리고 목이 딱 잡히면 죄를 짓게 된다. 죄는 강력한 파워가 있기 때문에 우리의 육신은 죄를 이기기에는 너무도 연약하다. 그래서 주님께서 성령을 보내주셔서 성령의 능력으로 죄를 이기라고 말씀하신다. 그렇기에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하는 사람은 그 죄에 대해 인식을 하고 또 주님을 간절히 의지하는 사람이다. 주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바로 가난한 마음, 심령이 가난한 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