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럽혀진 하나님

조니 무어 | 나침반 | 296쪽 | 13,000원

강렬한 표지의 책 <더러워진 하나님(나침반)>은 저자가 서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은혜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은 2천년 전 머리 둘 곳도 없이 다니시던 예수님의 발을 보는 것 같은-요즘으로 말하면 발레리나 강수진이나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의 발처럼-표지 사진만으로도 큰 울림을 준다.

미국 리버티대학교 부총장인 저자인 조니 무어(Johnnie Moore)는 "지저분한 이 세상과 거리를 두지 아니하시고, 당신의 깨끗한 양손을 더럽혀 우리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노래하고 있다. 특히 인도의 나환자촌 등 20개국 이상을 방문했던 경험을 녹여내 대홍수와 쓰나미 등의 대참사 가운데서나 무슬림에 의한 순교의 현장 등 극단적 상황에서 피어난 기적들을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기적들도 '은혜 아니면' 일어날 수 없는 것들이다. "은혜는 우리가 세상 속에서 마음대로 일할 수 있게 해주는 기적이다. 우리는 기적을 일으키는 하나님의 일꾼들이다. 그런데 가장 큰 기적은 받을 만한 자격도 안 되고, 기대할 만한 처지도 아닌 자들에게 우리가 아무런 조건 없이 은혜를 베풀 때 일어난다."

저자에 따르면 은혜는 가치를 매길 수 없는 가장 소중한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어느 순간 그것을 그저 종교의 일환으로 취급해 버리면 경이로움이 사라져 버리고 만다. "신앙도 일종의 깨지기 쉬운 유리잔이다. 화려하고 번쩍거려 보이지만, 쉽게 깨지고 만다. 당신이 매일 은혜로 살지 않으면, 당신의 신앙은 결국 인공호흡기를 달아야만 한다. 인공호흡기를 달고 사는데, 몸이고 마음이고 평안할 수가 있겠는가?"

책은 카일 아이들먼의 <팬인가, 제자인가>, 폴 워셔의 <복음>, 매트 챈들러의 <완전한 복음> 등에 이어 최근 제퍼슨 퍼스키의 <종교는 싫지만 예수님은 사랑하는 이유>까지 이어지는 본질적 메시지, 즉 율법이 아닌 은혜의 하나님을 현대적이고 실감 나는 언어로 들려준다.

예수님을 따르는 일을 "마치 뉴욕 양키스 스타디움에서 지역 라이벌인 보스턴 레드삭스의 모자를 쓰고 있는 것과 같다"고 한다거나,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와 '세기의 대결'을 벌이는 장면을 평가하면서 "그의 믿음은 군더더기 없는 아주 쌈박한 것이었다"고 하고, "은혜는 팡파르나 폭죽과 어울리지 않는다. 그것은 요염하거나 이색적이지 않다. 은혜는 곤경에 처한 직원에게 몰래 금일봉을 건네는 인자한 사장님의 선행처럼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고 하는 식이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우리는 지금 세계를 변화시킬 혁명의 최전선에 있다고 믿는다"며 "이 혁명은 은혜의 혁명이라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인 모든 사람들이 주님의 본을 따라 섬기고 베푸고 사랑하는 삶을 살 때 일어난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우리를 향해 평온한 일상에서 한 걸음 빠져나와, 은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섬기려는 모습을 보이자고 촉구한다. 마치 수천 개 이상의 도미노를 연속으로 쓰러트리는 하나의 도미노처럼.

이 마지막 장 '은혜가 지구를 덮는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를 읽으면서, 한 대중가요의 가사가 떠올랐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가 천사라면 이곳은 천국이겠지/ 우리 마음 속의 욕심도 없어지고 얼마나 화목해질까/ 세상 사람들이 모두가 천사라면 이곳은 천국이겠지...'. 그리고 은혜가 충만했던 그 시절, 누구나 한 번은 꿈꾸었을 이사야의 '하나님 나라'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여기저기 줄을 그은 탓에, 이 책도 더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