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은 '안녕들 하십니까' 신드롬으로 시끌벅적하다. 지난 10일 어느 대학교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이 교내에 대자보를 붙였다. "안녕들 하십니까"라고.
그가 던진 작은 물음은 이내 전국 대학가에 대자보 행렬로 이어졌다. 코레일 파업노동자 직위해제와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밀양 송전탑 문제를 들먹거렸다. 그리고 물었다. "수상한 시절에 어찌 모두 안녕하신지 모르겠습니다."
그랬더니 15일 오후에는 한 시민이 청와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까지 질문을 던졌다. "지금 박근혜 정부는 안녕하십니까?"라고. 그는 궁금해 한다. "대한민국의 대표자 박근혜 대통령께서는 지금 안녕하십니까? 대한민국의 국민인 저는 안녕하지 못합니다. 사실은 안녕했었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은 안녕할 수가 없습니다."
누군가는 묻는다. "당신의 지구는 안녕하십니까?" 이런 책들도 있었다. "당신의 주식은 안녕하십니까?", "당신의 본능은 안녕하십니까?"
나는 다시 묻고 싶다. "당신의 마음은 안녕하십니까?", "당신의 영혼은 안녕하십니까?", "당신의 가정은 안녕하십니까?", "당신이 섬기는 교회는 안녕하십니까?",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는 대강절에 많은 사람들이 시무룩하게 대답한다. "글쎄, 안녕하지 못하네요."
거짓과 사기가 난무한 세상. 불의와 폭력이 정의와 안정을 잠식하는 사람들. 정치판에서는 서로를 잡아먹지 못해 으르렁 거린다. 국민들의 안녕과 행복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이 잡는 주도권과 이권만 보일 뿐이다.
동물적 근성을 갖고 있는 김정은의 잔인함은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혈육도, 의리도, 인륜도 헌신짝처럼 내팽개친다. 불안과 공포가 잔학성을 불러온다. 앞으로도 어디까지 가야 끝날지? 저 북한의 소용돌이는 한국 사회에도 불안과 위협을 안겨준다.
'당신은 평안한가?' 저물어 가는 한 해의 황혼녘에 정말 물어보고 싶다. 나는 12월이 들어서면서 복잡한 일들을 많이 겪었다. 마음이 답답해질 수 있고, 염려가 엄습해 올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성탄하신 예수님께로 마음과 생각을 돌려보곤 한다.
수요일 오전, 드디어 1년 간의 제자반이 종강을 맞았다. 지체들과 더불어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종강파티를 가졌다. 익숙하지 않은 문화였지만, 즐거운 시간이었다.
짧은 한국생활을 접고 일본으로 떠나는 한 집사님 때문에 더 의미 있는 소중한 자리였던 것 같다. 며칠 지나면 일본으로 가서 생활할 것을 생각하니 여러 가지로 염려가 되고 불안하다. 아이들은 잘 적응할지, 방사능으로 인해 어려움은 없을지. 한국에 두고 가는 연로하신 양가 부모님들을 생각하니 마음은 더 짠하고 시리다. 그저 하나님 앞에 맡기고 떠나는 길밖에 없다.
식사를 마치고 나는 교회로 돌아왔다. 전도사님이 목양실 문을 두들겼다. "목사님, OO집사님이 디스크 때문에 시술을 했대요." "그럼 가 봅시다." 집사님 가게로 심방을 갔다. 집사님은 없고 부인 집사님이 있었다.
지난 주일예배 후에 집으로 돌아왔는데 다리가 당기더란다. 주일에 어떻게 하기도 그렇고 해서 월요일에 병원을 갔다. 그런데 디스크가 파열됐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화요일에 시술을 했다.
그 동안 병원을 모르고 지낼 정도로 건강했던 분이다. 물론 허리가 아픈 적도 없었다. MRI 촬영을 하는 것도 두려워할 정도로 병원과는 거리가 멀었다. 의사는 시술을 하면 50%밖에 장담 못한다고 한다. 수술을 해야 한다고 권했다.
그런데 집사님 부부는 장사를 해야 하는 형편이다. 더구나 아내 역시 허리 수술을 한 분이다. 저녁에 가족회의를 했다. 그 때 아내가 말했다. "하나님께 맡기고 시술을 하자." 결국 시술하기로 했다. 다행히 시술은 잘 된 것 같다. 그리고 나름 회복이 되어가는 것 같고.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교회로 돌아왔다.
우리 모두가 예측불허의 시대를 살고 있다. 미래가 불투명하다. 오늘 별일 없다고 하지만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더구나 연로하신 어른들을 모시는 분들은 아침에 문 열어 기침소리가 나면 '후유~' 할 정도다. 치열한 경쟁사들과 고군분투하는 사업가들은 하루아침도 마음 편할 날이 없다. 무수한 염려와 불안이 우리의 심장을 옥죄고 있다.
이런 시기에 성탄의 소식이 들려온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을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 9:6)".
천사 가브리엘은 기쁜 소리로 외쳤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눅 2:14)".
로마의 압제 하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평화란 없다. 답답하고 힘든 현실이다. 앞날이 불투명하다. 가브리엘의 소식을 듣고 있는 목자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한밤중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양들을 위협하는 짐승이나 도적떼들 때문에 밤잠을 이룰 수가 없다.
그러나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은 이들의 불안을 평안으로 바꾸셨다. 이번 성탄절이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평안의 소식으로 장식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