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추석을 지나면서 또 느낀 것이지만, 한국 사람들은 대단한 민족입니다. 하루 온종일 걸려도 10시간 이상씩 교통체증을 견디며 기어코 고향을 향해 가는 민족대이동의 현상은 외국인들이 보기에는 분명 기이한 모습입니다. 한국인의 피에는 가족 중심으로 뭉치는 대단한 유전인자가 있는 것이 분명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공동체에 가치를 둔 유전인자는 한국사람의 언어습관에도 배어 있습니다. 처음 만난 남 앞에서 우리 집, 우리 나라, 심지어는 우리 아내, 우리 남편이라 서슴지 않고 표현하는 습관 말입니다. 물론 ‘우리’가 아니면 무조건 ‘적’이라는 흑백논리의 위험성이 있지만, 한국인의 의식구조에는 뭔가 남다른 강한 공동체 의식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교회도 ‘공동체’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교회 다니던 시절에는 이런 표현 자체를 들어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교회 이름 영어 표기도 유행처럼 빠짐없이 들어가는 단어가 ‘community’입니다. 그만큼 교회의 공동체적 역할과 그 기능이 강조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이민교회 목회자로서 한국인의 의식구조에 있는 공동체 의식에 묘한 하나님의 섭리를 느낍니다. 본래 가족공동체 중심으로 모이는 강한 민족정신의 한국인들이 이민 와서 교회공동체로 뭉치는 민족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역사에 찾아볼 수 없는 전무후무한 교회의 부흥을 이루는 한국민족은 이민 역사도 교회를 빼고는 쓸 수 없는 민족이 되었습니다. 가족중심으로 모이는 한국인의 놀라운 응집력을 자칫 집단적 이기주의로 빠질 수 있는 부작용을 극복하고 ‘하나님 가족’ 중심으로 모이는 창조적 에너지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고 믿습니다. 가족끼리, 고향 출신끼리, 동창끼리로 편 가르기 쉬운 약점을 더 큰 가치와 영광을 위한 하나님 나라를 향한 민족으로 탈바꿈하는 하나님의 섭리를 봅니다.
이번에 열린 제8차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에서 한국의 김장 문화를 인류 무형문화로 올렸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한국사람들의 김장 문화를 공동체가 함께 ‘김치를 만들고 나누는(Making and Sharing Kimchi)’ 문화로 높이 평가했다는 것입니다. 한국인의 DNA에 박혀 있는 공동체 의식은 이제 세계도 알아주는 소중한 정신적 유산이 되었다는 메시지입니다.
얄팍한 달력 한 장만 남은 12월입니다. 한 해를 뒤돌아 보며 마무리하는 달이며, 우리에겐 23년의 베델의 목회를 은퇴하시고, 본격적으로 북한 사역으로 매진하실 손인식 목사님을 떠나 보내는 왠지 쓸쓸한 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한 해만 돌아볼 뿐 아니라, 지난 23년의 세월을 돌아보며 “우리” 베델공동체를 통해 일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꼼꼼히 되새김질하는 중요한 시간이기도 합니다. 성도 다르고, 본도 다르고, 출신도 다르지만, 우리 베델은 한 하나님 아버지의 새 가족으로 모여 여기까지 왔습니다. 함께 모여 김장을 하고 나누었던 정 많은 우리들의 손에 하나님은 세계 모든 사람과 함께 만들고 나누라고 복음을 들려주셔서 지금까지 달려온 세월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손 목사님을 보내는 12월은 마냥 슬픈 이별의 달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한 또 다른 나눔의 달이요, 파송의 달이며, 베델의 새역사로 웅비하는 출발이라고 믿습니다. Making and Sharing ‘복음’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