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규 목사.
(Photo : 기독일보) 박석규 목사.

세월이 쏜살 같다더니 참으로 세월이 빠르게 간다.
벌써 11월이다.
금년 추수감사절은 11월 24일이다.

우리 찬송가에 추수감사절 찬송이 많다. 그 중에 310장 '저 밭에 농부 나가'도 애창되는 찬송이다.
북부 독일 농촌 추수감사절 축제 풍경이 그려져 있다.
가사는 마티우스 클라우디우스(Mathias Claudius 1740-1815)가 썼다.
독일 남 홀스타인 태생으로 시인이고 찬송가 작사가 인데 그에게 사연이 있다.
루터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아버지를 이어 목사가 되려고 신학대학에 진학했으나 시인 괴테와 당시 풍미하던 자유주의 철학자들과 사귀면서 합리주의 사상에 물들어 하나님을 부인하고 세상 길로 나갔다.
그무렵 아우가 폐병으로 죽고 자신도 폐출혈로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떠나 온 길이 얼마나 잘못됐는가를 깨달았다.
하나님을 부인하고 마음대로 살려던 자신이 불치병 환자가 될 줄이야 ...
어쩔수 없이 하나님께 항복하고 치유의 기적을 구해야 할 신세가 되어 버렸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하나님을 찾았고 몸부림치며 기도할 수 밖에 없었다.
피가 멈추고 폐출혈병이 완치 되었다.
징계의 채찍을 맞고 회개한 클라우디아는 믿음이 회복되고 은혜의 세계를 경험한다.
변화된 그는 독실한 크리스천 문인으로 활동하며 출판을 통한 문서사업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기독교 진리 수호에 생애를 멋있게 바쳤다.

그즈음에 쓴 찬송이 310장 '저 받에 농부 나가'의 가사다.
독일 남부 농부들이 부르는 감사의 흥얼거림을 놓치지 않고 적어 두었다가 그의 시집 '농부의 노래'에 넣어 출판 하였다.
변함없이 소박하고 청순한 정서, 자연스럽고 천진난만한 마음이 그의 詩 기반인데
독일 태생 저명한 요한 아브라함 피터 슐즈(Johan Abraham Peter Schulz)가 곡을 붙여 감동을 더 해주고 있다.

은혜로 구원받고 나니 보이는것 마다 감사 뿐이다.
'온갖 귀한 선물이 다 주님이 주신것 이라.
그 풍성하신 은혜를 감사하세'
그렇다 성도의 삶이 나날이 감사의 삶이다.
더구나 땀흘려 일한 농부들이 추수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모습 보니
저절로 感謝詩가 나왔으리라.

'저 밭에 농부 나가 씨뿌려 놓은후 주 크신 능력 내려 잘 길러 주셨네
또 사시사철 따라 햇빛과 단비를 저 밭에 내려주시니 그 사랑 한없네
온갖 귀한 선물 주님이 주신 것 그 풍성한 은혜를 다 감사 드리세'

논 밭에 씨를 뿌리는 일은 농부가 한다.
그러나 싹이 나고, 자라고, 열매 맺고 익어 추수케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다.
어디 농사 뿐이랴.
우리 모두 다 形言 할 수 없는 은혜 속에 살아 왔고 살고 있다.
그 모든 은혜를 생각하자.
감사하자.

금년 추수감사절은 미국의 자동차 홍수와 아스팔트 속 삘딩 숲을 떠나 첫 목회지 한국 농촌 교회로 가고 싶다.
1962년 신학교를 졸업한 후 목사 안수를 받고 군목으로 입대하기 전 4년을 전도사로 시무한 교회가 충청남도 공주군 유구면 신달리 교회다.
교인의 100%가 농사 짓는 시골 교회다.
당시 경제 형편이 그랬듯이 참으로 가난하기 그지없든 동네요 교회였다.
젊은이들은 돈벌이를 위해 도시로 떠났고 노인들만 남아 교회가 더 약했다.
구역회에서 쌀 두 말과 봉급 월300원이 책정되었는데
쌀은 성미가 들어오는 대로 받아 쌀 독은 날마다 간들간들 했고 현금은 받은 기억이 거의 없다.

그 시절 첫 딸을 낳았는데 잘먹지 못한데다 몸이 허약했던 아내는 모유가 나오지 않아 쌀을 갈아 죽을 쑤어 아이에게 먹였다.
아이가 점점 약해지는것 같아 분유를 먹여야 하는데 돈이 없었다.
생각다 못한 우리 부부는 신혼여행을 왔던 온양에 가서 결혼반지를 팔아 분유를 사가지고와서 쌀죽과 섞어 먹이며 목회를 했다.
그래도 감사했다.
나같은 것이 구원 받았고 더더구나 신학교를 졸업하고 전도사가 되다니...
한없이 감사했고 황송했다.
굶어도 좋았고 못입어도 좋았다.
읍네에 나갈 차비가 없고 몇달이가도 책 한권 사서볼 돈이 모아지지 않았다.
그래서 교인들과 온 종일 살았고 성경을 많이 읽었다.
그때가 그립다. 그때가 좋았다. 행복했고 순수했고 불평을 몰랐고 그저 다 만족했고 감사했다.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가서
가슴 멍멍한 감사를 느끼고 싶어 ...

'저 산과 들을 보라 참 아름답구나
길가의 고운 꽃도 주님의 솜씨라
저 공중나는 새도 다 먹여 주시니
그 사랑하는 자녀 돌보시지 않으랴'
자연 만물을 먹이시고 입히시는 하나님이 성도를 보호하시지 않겠느냐!

초롱불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더니 촟불을 주시고
촟불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더니 전기불을 주시고
전기불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더니 천국을 볼 수 있게하신다.

성 어거스틴의 저서에 보면
그때 사람들이 서로 만나서 이야기 하다가 헤어질 때에는
'하나님께 감사합시다'라는 말이 인사였다고 한다.
어떤 때는 만나서 핍박당하는 일을 이야기 합니다.
또 어떤 때는 핍박을 당하다 어떤 성도가 억울하게 죽었다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비통한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마지막 헤어질 때에는
'우리 하나님께 감사합시다'라고 했다.

감사하라 내 영혼아!
감사하라 내 영혼아!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감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