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슨 송
(Photo : NCA) 제이슨 송 교장

얼마 전 중고차를 구입하려고 인터넷 웹사이트 몇 군데를 방문했는데, 아니 글쎄 수천 수만대 중 하나를 선택하려니 벅차기만 했다. 검색 범위를 줄여봐도, 수백대가 떴다. 이럴 바에야 그냥 집 근처 중고차 매장에서 적당한 차를 구입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사회에는 선택의 여지가 너무 많다. 마켓에 가보라. 동일 품목이라해도 한 통로에 수십, 아니 수백가지 물건이 진열돼 있다. 한번은 아이가 아파 치킨 수프를 사려고 마켓에 간 일이 있는데, 종류가 너무 많아 무엇을 사야할지 한참을 고민하며 서성거리기도 했다. 캔 아니면 플라스틱 컨테이너, 이 브랜드 저 브랜드, 큰 것 작은 것, 쌀이 들어있는 것 아니면 면만 있는 것 등등. 혼란스럽기만 했다.

1978년 미국의 유명한 정치경제학자 허버트 사이먼은 이런 말을 했다: “정보의 풍부함으로 인해 잃는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집중력이다.”

예리한 관찰이다. 정보가 홍수처럼 넘쳐나다보니 그저 필요한 정보를 찾고 흡수하는데 바쁘기만 하다. 정보의 신빙성이나 타당성 여부는 아예 분별조차 하지 못한다. 해당 정보에 대해 분별하고 생각할 시간적 여유를 갖지 않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분별력을 개발하지 않으며, 심지어 암기력마저 감소되고 있는 실정이다.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리포트나 리서치를 가르치다 보면 여기서 비롯된 문제가 여실히 드러난다. 홍수같이 쏟아져 나오는 정보와 IT의 발전으로 리포트의 질(quality)이 좋아졌을까? 그렇지 않다. 요즘 학생들은 리포트를 작성할 때, 컴퓨터 자판으로 타이핑하고, 컬러 사진을 삽입하고, 인쇄기로 출력해 겉모양은 그럴싸하게 작성한다. 그런데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표절(plagiarism)된 것이 많으며, 온라인상에서 여기저기 복사해온 것을 그저 ‘짜집기’한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인지 리포트한 내용을 발표하라고 하면 십중팔구 인쇄한 것을 그대로 읽어내려간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리포트를 작성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어떤 연구 주제나 인물에 대해 자료를 찾아보고 읽고 생각하고 나서 자신이 이해한 내용을 글이나 프레젠테이션으로 정리해 발표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그렇다면 리포트 작성에 있어 인터넷 검색엔진은 학생으로 하여금 필요한 정보를 접하는 데 도움을 주는 하나의 도구(tool)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학생들은 모르는 게 있으면 무조건 일단 구글(Google) 검색란에 키워드를 입력하거나 애플의 시리(Siri)에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인터넷 접속이 불가능할 경우 불안해 하고 짜증도 내며, 때론 멍해 보이기도 하며, 대안이 없어 어쩔 줄 모르는 경우도 있다. 이것이 인터넷과 스마트폰 세대의 맹점(blind spot)이다. 즉 홍수같이 쏟아지는 방대한 양의 정보 때문에 암기도 안하고 분석도 안하며, 정보의 질도 판단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그나마 초·중학생 시절엔 ‘리포트’를 쓰지만,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이 되면 ‘리서치 페이퍼(research paper, 연구문서)’를 작성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단순히 정보를 찾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구별하고 정리하는 능력을 기반으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의를 만들어내야 하는데, ‘정보 찾기’에만 길들여진 경우 이런 작업 기능(skill)을제대로 해내지 못한다. 그 결과 연구문서 작성을 두려워하고, 이런 것이 요구되는 과목 및 분야에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대학 진학 후 뒤늦게 이러한 기능을 배우려고 과외공부까지 하는 학생도 있다.

필자는 이러한 문제를 학교 차원에서 해결해보고자 연구해온 결과, 기존 시스템과 프로그램 내(內)에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리고 1999년 학교 설립 당시아예 학급 정원을 10명 안팎으로 정해놓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충분한 공간과 시간을 할당해 리서치 기능을 훈련시켜 왔다.

뿐만 아니라 분석력을 키우는 교육전략을 채택했고, 리서치 프로젝트를 필수과정에 넣어 반드시 이수하도록 했다. 특히 6년 전부터 IB(International Baccalaureate) 프로그램을 도입해 고등학생에게 제공하고 있는데, 이는 일반 학교의 여섯 과목(영어, 수학, 과학, 역사, 외국어, 아트·음악) 외에 3가지를 추가로 요구한다. 그것은 개인의 창조적 봉사활동(계획, 실행, 반성 및 리뷰), TOK(Theory of Knowledge), 그리고 14페이지 분량의 리서치 페이퍼 (Extended Essay)다. 특히 TOK는 어떤 내용에 대한 신뢰성과 정당성을 객관적으로 검토하는 과정을 2년에 걸쳐 교육하는 아주 특이한 과목이다. TOK 수료 후 리서치 페이퍼를 작성하면 연구의 질적(quality) 차이가 금방 눈에 띈다.

인터넷 검색엔진이 존재하기에 분명 세상이 편리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암기력과 분별력, 분석력, 발표력이 자동으로 향상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런 실력을 갖춘 인재를 찾기가 더 어려워졌다. 이런 면에서 실력과 신앙을 갖춘 차세대 지도자를 배출하면 장차 큰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 확신한다.

10학년 학생이 와이파이(wi-fi)가 없는 캠프장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스마트폰 접속이 안되니 오히려 편하다. 간밤에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체크하지 않고 밤새 잠을 푹 잘 수 있었다.” 그렇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중독성은 확실히 심각한 문제다. 그러므로 이런 도구를 잘 사용하고 관리하도록 자녀들에게 가르쳐야겠다. 방대한 정보, 휴식을 취하지 못하게까지 만드는 이메일, 잠을 설치고 검색해도 끝이 없는 페이스북. 이런 것들이 사람을 스펀지같이 흡수만 하는 존재로 전락시킨다.

인간에게 있어 생각하는 능력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자녀들로 하여금 접하는 모든 정보에 대해 신뢰성과 정당성를 파악하고, 선과 악을 잘 분별하며, 행할 바와 절제할 것을 알도록 가르쳐야겠다. 이것이 신앙 다음으로 유익한, 즉 돈보다 더 귀한, 유산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기능과 실력을 갖춘 학생은 요즘같이 썩어가는 대중문화와 왜곡된 정보의 홍수 속에서도 신선함과 생명력을 소유한, 싱싱한 물고기 같은 존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