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선 소장
(Photo : 기독일보) 아시안 약물중독 치료서비스 이태선 소장

이번엔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아들 문제로 인해서 공직자의 도덕성논란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지난 추석 명절 때 가족들의 식단에 가장 잘 팔린 메뉴가 채 전 총장 사건이었다고 한다. 사실, 그 사회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남자의 외도를 믿어 의심치 않았을 테지만, 이 사건을 빌미로 정부를 공격하기 위한 야당의 비도덕적인 정치적 의도에 휘말린 많은 사람들은 '최고위 공직자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도덕성의 문제를 떠나서 어디까지나 개인의 사생활일 뿐'이라며 그를 두둔하고 나섰다. 사회 구성원들의 도의적 책임과 윤리의식 보다는 정치적 실리만을 추구하는 집단 이기주의가 팽배해 지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 더 심각한 현상은 지금 한국사회가 확실한 증거를 눈앞에 내밀어도 그것은 정부의 조작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정부에 대한 극도의 불신과 냉소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그 사회가 도덕적 불감증으로 뻔뻔스러워 지는 까닭은 부정과 부패 그리고 향락과 타락의 양상이 오랜 세월동안 워낙 광범위하게 고착화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진실 된 삶이 무엇이고, 또 그것이 사람을 원천적으로 행복하게 해준다는 삶의 법칙을 따르지 못하는 병리현상을 낳게 된다.

그런 가치관은 오직 돈과 권력만이 자신의 행복을 담보해 준다는 강한 믿음을 갖게 만들며 이를 성취한 한국형 엘리트 집단들은 혼외정사가 자신들의 성공적 인생의 전리품인양 은밀하고도 당연하게 원초적 본능을 해소하는 통로로 사용하고 있어서 참담하다.

채동욱을 옹호하는 일부 부장급 검사들은 스스로가 채동욱의 호위무사로 자처하면서 공직자의 도덕적 책임을 거부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에 명시된 일부일처제(一夫一妻)가 온갖 악전고투 끝에 쟁취한 그들 삶의 성공을 보상해 줄 수 있기에는 충분하지 않다고 믿는 상처받은 보상심리가 성공한 남자들로 하여금 지극히 빗나간 성 의식을 갖게 만들었을 지도 모른다.

자신이 추구하는 인생을 살지 못하고 오직 남 보기에 좋은 학벌과 직업만을 갖기 위해서 공부해 온 인공적 지능의 한국형 엘리트들이 갖을 수밖에는 없는 인생의 딜레마이다. 이런 사회에서의 사람들은 자신보다 많이 가졌다고 생각하는 집단에 대한 강한 질투심이 유발되며 상대적인 피해의식을 갖게 되는 열등감에 매몰된다.

야당이 정부여당에 적개심을 갖고 반대에 반대를 거듭하며 끊임없이 질투하는 미성숙한 정치를 보여주고 있는 까닭은 바로 우리 한국인의 내면이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단지 경쟁해야 된다고 하는 집착에 빠져 있다는 심리이다.

지금 한국정치에는 오직 최고의 '책임자'인 대통령만 있을 뿐, 정치인과 각료들 각자가 지니고 있는 자부심과 책임의식은 상실당한 형국이다. 모두의 관심이 대통령에 쏠려있고 나머지는 무책임한 비방과 의존적인 심리에 갇혀있는 듯하다.

민주정치의 근간인 삼권분립의 정신을 외치고 있지만, 기실은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는 민생에 필요한 입법보다는 그들의 권한과 책무를 망각한 체 오로지 국민의 대통령을 괴롭히며 권좌에서 끌어내리려 할 뿐, 타협과 협력의 정치는 찾을 수가 없다.

지금 한국사회는 불안하다. 전통적으로 술 마시며 자신의 감정을 은폐하려는 심리가 사람과 사람사이에 진실 된 대화와 협력을 점점 더 어렵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술 마시는 사람은 이성보다는 매사가 감정적으로 치우치는 경향을 갖게 된다. 공허한 자신의 내면을 채우기 위한 의리와 끈끈한 정을 공적인 관계에서도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술 마시는 사람은 술 마시는 사람만을 좋아한다. 함께 술 취한 기분을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깊은 동지애가 있다고 믿는 강한 '우리의식'에 빠지기 때문이다. 하물며, 깐깐한 여성 대통령이 술 마시며 살아가는 그 많은 남성 정치꾼들과 관료들을 상대해 나가기는 현실적으로 많은 벽에 부닥칠 것이다.

야당이 대통령을 '먹통과 불통'의 대통령이라며 싸잡아 비난하는 까닭에는 바로 음주의 정치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비롯되는 심리일 수 있다. 한국의 대통령은 이제 음주문화가 만연되어 있는 한국사회의 이런 문제를 제대로 집고 나가야 할 것이다.

이는 우리 교육의 문제이며, 삶의 가치관의 문제이다. 잘못된 복지공약의 딜레마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유일한 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시대적 요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