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 한남대 총장
(Photo : ) 김형태 한남대 총장

'뽀빠이' 하면 볼록 튀어나온 팔뚝의 알통과 시금치를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시금치에는 철분이 많아 아이들 건강에 좋을거라 믿는다. 그러나 실제로는 시금치에 철분이 많지 않다. 「상식의 오류사전(발터 크래머 & 괴츠 트렌클러)」에는 "뽀빠이가 철분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통조림 시금치보다 차라리 그 깡통을 먹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이라고 했다.

 

뽀빠이 만화는 순간의 타이핑 실수로 생겨난 것이다. 최초로 식품의 성분 분석을 했을 때, 실수로 소수점 하나를 아랫자리로 찍는 바람에 시금치의 철분 함유량이 10배나 부풀어 버린 것이다. 순식간에 일어난 이 실수로 인해 미국의 시금치 생산지인 텍사스 크리스털 시티(city)에는 "씩씩한 뱃사람 뽀빠이 덕분에 미국의 시금치 소비량이 33%나 증가했다"는 기념비가 섰고, 2차 세계대전 후 독일에서는 수백만명의 어린이들에게 시금치를 먹였다.

그러나 실제로 시금치의 철분 함유량은 100g당 2.2mg으로, 달걀 한 개와 비슷하다. 이것이 22mg으로 10배 부푼 것이다. 1930년대에 그 착오가 밝혀져 수정됐는데도 불구하고, 뽀빠이 신화는 오늘까지 그대로 통용되고 있다. 시금치를 지나치게 많이 먹으면 팔뚝 근육이 솟아나는 게 아니라 신장에 결석이 생긴다는 의학계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뽀빠이 신화는 세계적으로 퍼져나갔다.

비슷한 실수로 성경에는 낙타의 비유가 나타났다. 먼저 성경 본문을 읽어보자.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It's easier for a camel to go through the eye of a needle than for someone who is rich to enter the kingdom of God / 마19:24, 막10:25)". 이를 한문으로 읽어봐도 "駱駝穿過鍼的眼, 比財主進 神的, 還容易呢"로 되어 있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이보다 더 어렵다는 것이니, 극단적 비유법이라 하겠다. 부자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들으면 기절할 말이기도 하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는 다른 장면에서 논하기로 하고, 오늘 여기서 생각하고자 하는 것은 여기 '낙타'가 실제 원 성경에는 '밧줄'이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다. 번역 착오로 그렇게 된 것이라 한다. 아람어 단어로 밧줄은 'gamta'이고 낙타는 'gamla'로, 알파벳 한 글자에 따라 '밧줄'과 '낙타'가 갈리는 것이다. 결국 한 글자를 잘못 옮겨 '밧줄'이 '낙타'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실제 원뜻은 "부자가 하늘나라로 들어가기보다 밧줄을 바늘귀로 넣는 것이 더 쉬우니라"로 되어있던 것이다.

사실과 과학이 지배하는 사고의 세계에선 오래 전에 수정되었어야 할 시금치 통조림과 낙타의 바늘귀 통과 비유가, 왜 오늘날까지 그대로 통하고 있고 사람들을 흥분시키며 설교로 강조되고 있는가? 사실과 논리에서 벗어난 초현실성과 비합리성이 오히려 이미지와 상징성을 강화한 것은 아닐까? 만화나 신화의 세계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힘은 논리나 사실이 아니다. 시금치가 갑자기 불로초 같은 환상을 일으키고 사막을 건너가는 대상(隊商)들의 낙타가 바늘귀보다 적은 천국의 문에서 전전긍긍하는 모습은 우연과 허구의 세계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이 세상에는 종종 과학적인 큰 발명조차도 우연에서 창조된 것이 있다. '포스트잇'이나 '비아그라'도 그런 실수의 발명품이라지 않던가. 20세기가 단선적인 결정론으로 도구를 만들고, 그것이 세계를 지배하는 호모 파베르(Homo Faber)의 시대였다고 한다면, 21세기는 놀이와 상상 그리고 창조적 힘으로 끝없이 삶을 허구와 이미지로 충만하게 만드는 호모 픽토르(Homo Fictor)의 시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그리스·로마 시대의 신화는 그 당시의 이야기이면서 오늘 여기서 우리들의 이야기도 되고 있으며, 다가올 미래 사회는 스펙보다 스토리가 더 중요시될 것이라는 조심스런 예측도 들어봐야 할 소식들이다.

산부인과 의사였던 James Simpson은 1847년 '창세기 2장 21-22절'을 읽다가 아담의 갈비뼈를 뽑아내는 대수술을 할 때 그를 잠들게 해놓고 수술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마취약을 발명하게 되었다. 관심을 갖고 본다면,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역사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사소한 실수가 오히려 큰 발명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게 있어왔기 때문이다. 이는 이어령 박사의 글에서 배운 것이다.

/김형태 박사(한남대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