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도시 빈은 프랑스어로는 비엔나이다. 이 빈은 독일과 오스트리아인의 문화적 경계가 불분명한 도시이다. 오스트리아인들이 독일어를 사용하는 것 보아도 능히 알 수 있는 일이다. 원래 빈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본거지로 신성 로마 제국이 창설되고 독일제국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러한 빈은 하이든, 슈베르트, 모짜르트, 베토벤, 브람스등을 배출한 음악의 도시로 더욱 유명하다. 지금은 비엔나 소년 합창단으로 전세계인에게 각인되어 음악적 명성이 계승되고 있다. 이 비엔나 소년합창단은 1498년 황제 막시밀리안 1세의 칙령에 따라 조직되어 500년의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하이든과 슈베르트가 소년시절에 단원으로 활동했으며, 모차르트는 이 합창단을 위해 합창곡을 작곡해 주기도 했다. 최근 이 합창단 5백년 역사에 최초로 여성지휘자(카펠마에스터)가 탄생하였는데 놀랍게도 37세의 젊은 한국 여성인 김보미씨가 임명되어 세계음악인들을 놀라게 하였다.
모차르트는 빈에서 35년 인생의 마지막 10년을 보낸다. 1781년 봄부터 1791년 겨울까지 10년 동안 모차르트는 13번이나 이사하였고. 그리고 많은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 모차르트의 흔적은 대부분 빈의 한복판 슈테판성당을 중심으로 도보로 10~25분 거리에 펼쳐져 있는데,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손바닥만한 공간에서 천재음악가는 절정의 10년을 보냈던 것이다. 평론가들에 의하면 모차르트가 음악가로서 위대해 질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고향 잘츠부르크와 과감히 결별을 선언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그가 종교권력이 주는 안정된 삶을 거부하고, 빈에서는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프리랜서 음악가로 활동하며 황금기를 열었다는 것이다.
이 비엔나 돔 골목길 5번지에 현재도 모차르트하우스가 있는데 17살의 베토벤이 모차르트의 명성을 듣고 독일 본에서 14일간의 마차 여행 끝에 이 집에서 모차르트를 만나 그 앞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였고 이후 일년 남짓 모차르트에게서 사사를 받는다. 동시대의 위대한 음악가 하이든 역시 이 집을 방문하여 젊은 모차르트와 친교를 하였던 것이다. 모차르트가 숨을 거둔 곳 역시 빈의 라우헨슈타인가(街) 8번지로 병약한 몸으로 의뢰받은 '레퀴엠'을 작곡하다 미처 끝내지 못하고 이곳에서 숨을 거두었던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마지막 작곡이 그의 최후를 예언한 것이 되었던 것이다. 9년 전 콘스탄체와 결혼식을 올렸던 슈테판성당에서 프리메이슨식으로 초라하게 치러졌으니 18세기의 빈은 그를 키워내기는 했지만 알아주지는 못했던 것이다. 워싱턴은 지금 누구를 키워내고 있을까? 또 누구를 알아봐주지 못하고나 있지는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