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영민 목사
(Photo : ) 엄영민 목사

아침 운동을 하다 문득 어느 공원 앞을 지나치며 보니 이른 아침임에도 많은 분들이 나와 골프를 즐기고 있다.

가만 보니 골프장 앞에 이름이 있는데 “xxx Memorial Golf Course”라는 이름이 있다. 모르긴 해도 누군가 이 골프장을 애용하던 사람이 적잖은 기부를 해서 이 골프장을 짓지 않았나 싶다. 자신이 즐겼던 것처럼 많은 사람이 이곳에서 골프를 치며 즐기기를 원하던 누군가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진다. 그러고 보니 미국에는 메모리얼이란 이름이 붙은 기관들이 참 많다. 많은 병원 앞에 ‘메모리얼’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다. 누군가가 자신의 고통을 통해 고통 받는 다른 이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위로해 보겠다는 유지가 담긴 병원들일 것이다. 그 외에도 메모리얼이라는 이름이 붙은 박물관, 학교, 심지어 공원에 가면 작은 벤치 하나를 세워놓고 그곳에 작은 글씨로 ‘In memory of 아무개’라는 글귀가 있다.

 누군가 이 공원을 즐기던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편안한 휴식을 주겠다는 소원이 담겨있다. 아주 좋은 서양문화의 한 단면이 아닌가 싶다. 모두가 다 유한한 인생을 살고 언젠가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 우리 인생일진대 크든 작든 남아있는 사람들을 위해 선한 기념물들을 남겨놓고 간다는 것은 착하고 귀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이런 메모리얼의 생각은 교회에도 많아서 많은 미국 교회의 성도들은 자신의 생애 마지막이 되면 자신의 모든 것을 정리해서 그 중 상당부분을 교회에 기부하고 떠나는 예가 많다고 한다. 이것도 너무 좋은 신앙적 전통이다 싶어서 나도 가끔 얘기를 하곤 하는데 한국 분들에게는 아직도 이게 익숙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아직은 호응이 시원치 않고 때론 내가 괜히 이상한 소리를 하는 것 아닌가 싶어 눈치를 보게 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어느 한 분이 그런 뜻이 있어도 가족들과의 관계가 있어서 쉽지 않기도 하다. 오래 전 우리 교회에 출석하시던 어느 권사님 한 분은 자신이 돌아가실 때 많진 않더라도 남은 모든 유산을 교회에 드리고 가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셨다. 그리고 오랜 후에 몸이 많이 편찮으셔서 돌아가실 때가 되었다. 그런데 그 권사님의 평소의 생각을 알고 있던 주위 가족들은 임종이 가까워오자 권사님의 뜻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가족들의 생각대로 모든 일을 처리해 버렸다. 병석에 있던 권사님으로서는 그런 가족들의 뜻을 꺾지 못했다. 큰 재산이 있던 분은 아니셨지만 본인의 귀한 뜻이 이루어지지 못한 점은 퍽 아쉬웠다.

두고 보아야겠지만 그래도 조금씩 그런 방향으로 생각하고 결단하는 성도들이 늘어가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귀한 일이다. 믿음으로 산다고 하면서 성경에 나오는 어떤 부자처럼 마지막 순간까지 쌓아놓고 붙들고 사는 것은 누가 보아도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젊을 때 순교한 존 엘리어트의 말처럼 그것은 붙들지 못할 것을 붙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놓쳐서는 안될 것을 위하여 기꺼이 헌신하는 것은 얼마나 지혜로운 일일 것인가?

우리 모두가 사는 동안 누리며 나누며 살고 주님 부르실 때에는 아름다운 메모리얼들을 땅에 남길 줄 아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