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에게 가족은 ‘최후의 보루’이다. 그러나 그런 가족과 함께하지 못하기에, 가족이라는 존재를 잊고 살아야 하기에 더욱 아픈 이들이 있다. 이 땅의 ‘낯익은 이방인들’, 3만여 탈북민들의 이야기이다.
정겨웠던 고향 친지를 떠나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이곳에서, 의지할 가족마저 함께 오지 못한 외로운 청소년·대학생들이 늦은 토요일 작은 예배당에 모였다. 서울 영등포에 위치한 ‘탈북민들의 안식처’ 황금종교회(담임 최광 목사) ‘탈북 청소년 가족을 위한 기도모임’ 현장이다. 홀로 힘겨운 삶을 간신히 버텨온 아이들이, 남겨진 북한의 가족들을 생각하며 기도하려 한 자리에 모였다.
이들을 이끌고 있는 정명철 청년(가명·24)은 “저희 모두 가족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학생이라 가족들에게 돈을 벌어서 부쳐줄 수도 없고, 이곳으로 데려오자니 혹시나 그 과정 가운데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까 두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명절이나 생일이 되면 이들은 더욱 외롭고 쓸쓸하다. 전화통을 붙잡고도 가족들이 혹시 걱정할까봐 흐르는 눈물을 참아내야 한다. 이렇게 각자 홀로 힘들어하다, 함께 모여 기도하기로 한 것이다.
“함께 신앙생활을 하다 보니, 저희는 기도가 가장 최선의 방법이라는 생각에 함께하게 됐습니다. 물론 세상적인 눈으로 보면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보이지만, 그래서 기도모임을 만든 건 아닙니다.” 그는 이 땅에 북한을 위해 기도하는 모임이 많지만, 북한 사람들끼리 순수하게 기도하는 모임은 많지 않다고 했다. “저희는 그저 가족들이 보고 싶은 마음에, 또래 친구들이 함께 모여 마음을 나누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아무도 이해 못해주는 이야기들, 하나님께 털어놔…
탈북자들의 모습을 조금 더 이해해주고 도와줬으면”
그는 8세 때 처음 탈북했고, 세 차례나 북송을 경험하고 13세가 돼서야 한국행에 성공했다. 그래서 얼마 전 라오스에서 북송된 9명의 아이들의 사연이 더욱 와닿는다고 했다. 자신이 북송을 겪었던 나이대의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북송되면 보위부에서 조사를 받는데, 처음이면 단련대 행이지만, 여러 차례 북송됐거나 하나님을 믿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정치범수용소로 가야 합니다. 밤에 자려고 누워있으면 그들 생각이 나 걱정됩니다. 저 뿐 아니라 모든 친구들이 뉴스를 보면서 분개하고 있어요. 그들을 위해서도 매일 저녁마다 기도합니다.”
그의 말처럼, 이곳에 모인 아이들 모두가 남한 사람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정도의 고통을 겪었다. 그러한 고통과 아픔을 나눠야 할 가족들은 북한에 남아 있거나 생사를 모르는 상태이다. “저희 이야기를 털어놓을 곳이 없거든요.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니까요.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로 다 이야기해요. 그래서 우리에겐 교회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중요한 존재랍니다.” 지난 1일 기도회에서 이들의 기도는 정말 그랬다.
“아버지와 같이 한국에 오기로 했는데, 경비가 너무 심해 아버지는 다시 북한으로 가시고 저만 한국에 들어왔어요. 아버지가 저 때문에 돌아가셨다는 생각이 들면…. 교회는 작년부터 다니기 시작했어요. 교회에 가면 하지 말라는 게 많아 가기 싫었는데, 친구들이 계속 가자고 해서 나오게 됐죠(황지원·가명·23).”
“돈을 벌기 위해 친구들과 중국에 나왔어요. 그러다 가족들과 헤어지게 됐고, 한국에까지 오게 됐어요. 중국에서 목사님을 만나 성경공부를 하게 돼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고요(주요셉·가명·23).”
“원래 가족이 없었어요. 중국으로 가면 잘 산다고 하길래 2009년 탈북했어요. 중국에선 한족 가정에서 일도 하고 양도 치면서 떠돌다 목사님을 만났지요. 성경공부를 1년 동안 하면 한국으로 보내준다고 하시더라구요(웃음). 그래서 2011년 들어왔어요(이석철·가명·23).”
“엄마 아빠가 중국에 가셔서 소식이 끊겼었어요. 그래서 여덟 살 때부터 고아원을 드나들며 떠돌았지요. 동생은 어린 시절 영양실조로 죽었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죽은 줄 알았던 엄마 아빠가 먼저 한국에 들어오셔서 절 찾으셨어요. 믿기지 않았지만, ‘여기서 죽으나 저기서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마음에 중국에 넘어왔다가 한국으로 왔어요(이옥향·가명·22).”
매주 열리는 기도회는 3-4명씩 자신의 이야기를 친구들 앞에서 간증하고 기도제목을 나누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기도제목을 놓고 중보기도하며, 나머지 시간에는 각자 기도한 후 함께 모여 받은 은혜를 나누고 교제한다. 이날 이옥향 자매는 자신만의 아픔을 간증 시간에 털어놓기도 했다.
“‘그래도 넌 가족이 있잖아’ 라는 말을 하시지만, 전 가족이 아니라 상처만 생각하고 살았어요. 한국에 오면 행복할 줄 알았지만, 미칠 정도로 힘들었어요. 부모님의 손길이 얼마나 필요했는지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이지만, 부모님은 너무 힘들어 보이셨어요. 제 사정을 아는 누군가에게 안겨 울고 싶었어요. 여기 엄마가 계시지만, 엄마는 당신의 힘든 것만 이야기하셨어요. 그래서 엄마에게 마음을 다 열지 못했어요. 그래서 기도 시간에 아빠 엄마를 생각하며 울었어요. 마음을 열고 가족들과 다시 화목하게 지내고 싶어요. (가족들과 함께할 수 없는) 친구들에게 힘들다고 이야기하기 창피하지만…. 모든 청년들이 부모님을 놓고 간절히 기도하면 좋겠어요.”
정명철 청년은 탈북 청소년들만의 어려움을 털어놓기도 했다. “혼자 살아남으려니 물론 적응하기 힘들지요. 하지만 가장 어려운 건 사춘기를 겪어야 할 나이에 먹고 살기 바빠 자신의 감정에 신경을 쓰지 못하고 지나갔는데, 한국에서 삶에 여유가 생기고 볼거리도 놀거리도 많다 보니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그러한 감정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런 모습을 표출하다 보면 사회에서 북한 사람들에 대한 시선이 나빠지고 골칫거리라고 생각하시죠. 알고 보면 이해할 수 있는 일인데…,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친구들의 힘들어하고 아파하는 마음을 조금 헤아려 주시고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성도 여러분들이 기도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겪어보니, 남한 사회에 가장 잘 정착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라고도 했다.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만나면 삶이 조금씩 변하더라구요. 저도 처음 왔을 땐 제가 하고싶은 대로 살았죠. 그게 자유인 줄 알고 막 살았는데, 아니었어요.”
이들은 같은 고민을 가진 탈북 청소년과 청년들이 기도회에 더 많이 참석해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많은 한국교회 성도들에게도 기도를 부탁했다. “먼저는 탈북 청소년들이 대한민국에 잘 정착하도록 기도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가족들이 대부분 북한에 남아있는데, 섣불리 데려올 수 없는 상황이에요. 그렇다고 돈을 보내주기도 어렵지요. 북한이나 중국 등에 남겨진 저희 가족들을 위해서도 기도해 주셨으면 합니다. 저희가 기도모임을 만든 것도 이 두 가지 때문입니다.”
‘탈북 청소년 가족을 위한 기도모임’은 매주 토요일 오후 7시부터 황금종교회(서울 영등포구 당산3가 163번지, 2·5호선 영등포구청 인근)에서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