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저는 중동지역을 방문 중입니다. 요르단의 암만 공항에 도착하여 현지 한인 교회, 요르단 교회를 방문하고 시리아 난민촌을 방문한 후 요르단 국경을 넘어 이스라엘의 갈릴리에 들어왔습니다. 삼엄한 경비가운데 있는 요르단 국경을 넘을 때 제 마음은 많이 아팠습니다. 현재 30만명의 시리아 난민들이 요르단에 정착하여 있는데 그 중 6만명이 모여 있다는 천막촌 이야기는 문자 그대로 생지옥이었습니다. 추운 날씨에 난방은 물론이요 전기조차 없고, 많은 사람들이 다리가 잘리고 팔이 떨어지는 등 심한 부상에서 실려오건만 의료 시설이 없기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간다고 합니다. 외부인 접근이 허락 안되어 멀리서만 바라보고 기도했습니다. 한편 대부분의 난민들은 가족들을 죽음으로 잃어버리고 요르단 변두리 주택을 임대하여 아주 열악한 상황에서 살고 있는데, 방세를 내기 위하여 유일한 난방시설인 가스난로를 팔고, 핸드폰도 파는등, 인간적으로 그들에게는 앞이 안 보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이 수많은 인생들을 죽음과 지옥의 고통으로 몰아넣는 시리아 내전의 궁국적 원인은 무엇입니까? 모슬렘 내 시아파와 수니파의 종교분쟁입니다. 중동 지역의 불행은 대부분이 종교분쟁입니다. 유대교, 모슬렘간의 미움이 이스라엘, 아랍, 팔레스타인의 국가적 대립으로 이어지고, 여기에 각국의 이권이 개입되면서 국제 정치 분쟁으로 번져가고 있어 현재 중동은 문자 그대로 화약고이며 어디를 가나 죽음과 절망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번 여행을 통하여, 이 참담하고 어두운 중동 땅에서, 아름답게 피어나는 소망의 작은 꽃망울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현지인 교회를 방문했을 때 교회 내 한 방에는 놀랍게도 모슬렘 부녀들이 모여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 교회에서 베푸는 구제 대상이 되기 위하여는 자신들의 문제를 놓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하는 규정이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동기이던, 모슬렘들이 교회에 모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사실이 감사했습니다. 한편, 3년동안 시리아에서 오직 2명을 전도했다는 어떤 선교사님은 요르단 내 시리아 난민을 돕는 가운데 지난 8-9개월 사이에 44명을 전도했다고 기뻐하십니다. 이는 놀라운 숫자입니다. 모슬렘권 전도에 서광이 비치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난민촌의 삶은 지극히 열악했지만 사람들의 표정은 의외로 밝아 보였습니다. 선교사님들의 말씀에 의하면 처음에 난민들의 슬픔과 상실감은 상당히 심각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선교사님들이 꾸준히 사랑을 나누는 가운데, 자기들에게 부어지는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으며 위로를 얻고 소망의 이유를 발견한다는 것입니다. 시리아 난민들은 이제 자기들을 사랑하며 돕고자 하는 기독교인들을 좋아하며 점차 마음을 열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이런 아름다운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시리아에 있는 동안 한 청년을 전도했는데, 그 후 내전으로 인하여 헤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놀랍게도 난민이 되어 요르단에 이주한 그 청년을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청년은 선교사님과 함께 거하며, 계속 일대일 양육을 받을 수 있었고, 이 가운데 이 청년은 점점 변화를 받습니다. 대표적 변화는 범사에 감사하는 신앙이었습니다. 사실 현재 요르단에 있는 시리아 난민들은 요르단 국민들의 멸시와 냉대로 인하여 많은 상처를 받으며 분노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형제 역시 요르단 사람 밑에서 일하는데, 일은 두 배로 시키면서도 월급은 남들의 1/4로 주는 학대를 참아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너무 힘들었는지 집에 돌아와 30분을 울더니 기도를 하는데, 힘을 다해 “예수님, 감사합니다.” 를 되풀이하여 고백하더랍니다. 도저히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마음을 다해 감사하는 이 청년의 이야기를 들으며 저는 또다시 중동 땅에 피어나는 소망의 꽃망울을 발견한 느낌이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만 참된 용서와 참된 감사가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만이 중동 문제의 유일하고 확실한 답이며, 이 복음이 존재하는 한, 인류에게는 어떤 절망가운데에서도 소망의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이번 중동 여행을 통하여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