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과연 무엇인가, 믿으면 뭐가 어떻게 되나, 믿음으로 사는 삶은 어떤 것인가 등등, 믿음이라는 주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손에 잡힐듯 잡히지 않는 그런 주제입니다. 이건 목회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으로 하는 목회란 무엇이고, 하나님 앞에서 (평)신도로 서는 동시에 한 교회의 지도자로 성도들 앞에 믿음으로 선다는 것이 생각만큼 간단하지도 쉽지도 않습니다.

저는 한 달에 한번, 이 지역에서 함께 사역하는 저희 교단(RCA) 목사님들과 모임을 갖습니다. 매번 주제를 정해서 자유롭게 토론하고 기도하고 하는 모임인데 – 지난 번 모임의 주제가 “믿음”이었습니다. 성도님들 앞에서 허구헌날 믿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또 설교도 하는 목회자들이지만, “믿음”은 늘 두려운 주제이기에 다시 한번 성경을 고찰하면서 토론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많은 것을 이야기하는 가운데 반성하고 회개하는 것들도 있었습니다. 목회자로 열심히 사역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과연 우리의 사역이 믿음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교회가 성장 또는 부흥해야 한다고 하는 부담이나 두려움으로부터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 나는 (나를 포함해서) 성도를 변화시키는 하나님을 과연 믿고 있는지, 아니면 사람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고 하는 인간적인 생각을 하면서 무거운 마음으로 목회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임을 정리하면서 나이가 많으신 한 목사님께서 – 목회자의 믿음을 이렇게 정리해주셨습니다, 예수에게 미치는 거라고!

오랫동안 잊고 있었습니다.

10여년 전에 신학교를 가려고 원서를 넣을 때, 신학교에서 요구하는 서류 중에 자기소개서와 함께 왜 신학을 공부하려고 하는지에 대해서 에세이를 쓸 일이 있었습니다. 예수믿고 불과 3-4년 만에 신학교를 가려고 결정했을 만큼 정말 뜨거웠던 그 때에 저는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제가 신학교를 가려고 하는 이유를 저는 이렇게 썼습니다, 예수에게 미치고 싶다고!

예수에게 미친 한 목회자의 모습이 – 저의 발걸음을 신학교로 향하게 하였습니다. 나도 그렇게 예수에게 미치고 싶어서…

그런데 정작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되어 목회를 하면서 점점 제 관심은 예수보다는 교회, 목회, 부흥, 성장 –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교회에 미친 것이 반드시 예수에게 미치는 것은 아닐 수 있었다는 것을 목사되고 10년만에 깨달은 것 같습니다.

우리는 다 무엇엔가에 마음을 빼앗기고 삽니다. 그것이 돈이 되었건, 부귀영화가 되었건 또는 아주 편안한 삶이 되었건, 우리는 다 무엇인가를 향해서 달음박질 치는 삶을 삽니다.

그리고 그러한 삶은 반드시 주변에 영향력을 미치게 됩니다. 돈에 미친 사람은 주변에 그런 영향력을 끼칠 것입니다. 삶의 목적이 아주 편안한 삶이라면 그런 삶의 영향력이 자기 자신에게만이 아니고 그 주변으로 흘러갈 것입니다.

따라서 누군가가 예수에게 (제대로) 미쳤다면, 그 주변은 당연히 예수의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관심은 내가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 내 믿음을 더하기 위해서 내가 이것을 하느냐 저것을 하느냐 – 이런 것들이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관심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내 시선이 아주 선명하게 예수 그리스도에게 고정되어 있을 때, 예수의 태어나심과 사심과 죽으심과 부활하심 – 이 모든 것들이 하나로 통합된 그분의 말씀 – 여기에 우리의 시선이 고정됨으로써, 우리의 삶에서 믿음의 향기가, 거룩의 향기가, 경건의 향기가 흘러나오고 성령의 열매가 맺어져갑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미치는 것 – 성경적으로 표현해서, 예수에게 붙들리는 삶을 사는 것, 이것이 믿음의 삶이요, 이것이 거룩을 향한 걸음걸음입니다.

믿음에 대해서 박사논문을 쓴다고 해서 믿음으로 사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온전하게, 마음을 홀라당 빼앗기고 붙들릴 때, 오직 그 때만 믿음으로 살 수 있습니다.

그 목사님의 말씀이 뇌리에서 떠나지를 않습니다. 믿음은, 특별히 목회자의 믿음은 예수에게 미치는 거라고! 성도들이 보고 싶은 목회자는 바로 예수에 미친 목사라고!

예수에게 미친 자들과 함께, 저 역시 예수에게 미친 목사가 되려고, 오늘도 오직 십자가로 달려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