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저는 30 대 후반의 크리스챤 형제 입니다. 미국에 잠시 방문했는데, 목사님의 상담 컬럼을 읽고 저의 고민을 털어놓고 싶어서 연락 드렸습니다. 저는 신학생은 아니었지만, 신학 서적을 많이 읽었습니다. 그저 평신도들이 읽는 수준의 책이 아니라, 신학 전문 서적에 준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의 가이드 없이 손에 잡히는 대로 읽다 보니, 마음 속에서 정리가 되지 않고 아주 혼란스럽습니다. 신학자들 사이의 복잡한 신학 이론의 충돌로 제 마음은 갈피를 잡을 수 없습니다. 저로서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예를 들면, 칼빈의 입장과 웨슬레의 입장이 다른 것 같은 것 말입니다. 목사님 길게 애기하지 않아도 무슨 말씀인지 아실 겁니다. 신학 책을 읽고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 머리가 복잡하고 어지럽기만 합니다. 설교를 들을 때 목사님의 말씀도 제가 아는 신학 지식의 잣대로 자꾸 판단하게 되고, 신앙의 혼란도 생깁니다. 목사님,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합니까?

A: 전화 주셔서 감사합니다. 신앙의 도움이 되려고 신학 서적을 읽기 시작한 것이, 오히려 형제님에게 신앙의 혼란을 일으켰다니, 참 마음이 안타깝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목회할 때에, 간혹 형제들이 신학 서적을 읽고 있는 것을 본 기억이 납니다. 나름대로는 신앙을 정립하려고 노력하며 애쓰는 모습들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대견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조심스럽게 염려되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아마 지금 전화를 주신 형제님과 같은 일이 생길 것 같아서, 염려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는 데에도, 어떤 단계들(stages)이 있습니다. 초등 학생으로부터 대학 청년에 이르기까지… 그래서 각자의 부서별로 나누어져서 예배와 성경 공부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어떤 그룹에 속해 있는 사람들의 수준이 다 같을 수가 없어서, 모두에게 만족을 시켜주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청년들은 나름대로 신앙 서적을 뒤지기도 합니다. 좋은 신앙 서적을 함께 나누고 공부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입니다.

하지만, 형제님이 당면한 이 문제는 위의 이야기와는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자세히 모르겠지만, 누구의 가이드도 받지 않고, 닥치는 대로 어려운 신학 서적들을 접했을 때에, 평신도 청년으로서는 당연히 그 서적들을 소화시키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책을 읽으면 내 신앙에 도움이 될까, 저 책을 읽으면 내가 이해할 수 있을까 하다 보니, 내가 무엇인가 된 것 같고, 속에서는 정돈되지 않은 많은 갈등들이 자신을 혼란스럽게 만들기에 충분했을 것이라고 보여집니다. 순수하게 받아들이던 말씀들이, 혼돈 속에 있는 나의 지식과 부닥치고, 예배를 통한 말씀이 은혜가 아니라 의심으로 다가올 때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들겠습니까?

우선, 신앙과 신학을 구분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신앙은 주관적인 것이며, 신학은 객관적인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형제님의 경우, 언제 어떻게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게 되었는지 점검해 보는 것이 일차적으로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형제님이 예수님을 마음 속에 받아들인 것이 부흥회를 통해서인지, 새벽 기도를 통해서인지, 일반 예배의 설교 말씀을 통해서인지, 성경 공부를 통해서인지, 몸이 아팠을 때인지, 삶의 어떤 실패를 통해서인지, 아니면 성공을 통해서인지 등등입니다. 또 처음 다닌 교회가 어떤 교단, 어떤 교파였는지 등이 형제님의 신앙의 모습을 만들어 가는데 모두 다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신학이 객관적이라는 뜻은 신앙의 여러 가지 모습들을 이론화하고 체계화하는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여러 가지 다양한 신앙의 모습들을 그 틀 안에 집어 넣어서, 누가 보더라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신학화 작업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큰 틀을 만들어서 이런저런 신앙의 모습들을 그 안에 집어 넣어도, 그 큰 틀에 들어가지 못하는 다른 신앙의 형태들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에, 그것들을 위해서 또 다른 새로운 신학의 틀이 필요하게 됩니다. 이런 것들이 모이다 보니까, 이런 저런 신학 이론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형제님이 경험한 신학 이론의 충돌은 따지고 보면, 다양한 신앙 빛깔의 충돌입니다.

다시 말해서, 형제님은 한 가지 형태의 신앙 빛깔을 주관적으로 경험했는데, 그 신앙 빛깔의 안경으로 여러 가지 신앙의 바탕 위에 형성된 다양한 신학 이론을 접하다 보니, 자연히 신앙적 혼란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성령 안에서 다양한 신앙 형태는 존재합니다. 따라서, 형제님은 형제님의 신앙 빛깔의 현주소를 찾아서, 그 주소에 맞는 신학의 틀을 찾는다면, 그 틀 안에서 신학적 편안함을 경험할 것입니다. 제가 권해 드리기는, 현재 다니는 교회에서 목회자님과 의논하시고, 형제님에게 맞는 신앙 가이드를 찾기를 권해 드립니다. 신앙 생활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서, 신앙을 함께 나누고, 성도의 교제를 누리며, 더불어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결코 홀로 있는 것은 바람직한 신앙 생활이 아닙니다. 현재 당면하신 이러한 일들도 홀로 있었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었던 일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다시 예배와 말씀으로 돌아가시고, 정돈된 신앙 생활을 하시길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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