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선교사들의 어머니이다. 교회는 어머니의 품처럼 풍만함이 있다. 물론, 최근 교회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고, 여유가 없다는 것도 알지만 그래도 선교사들에게 있어서는 교회는 어머니 일수 밖에 없다. 교회는 기도의 풍성함이 있다. 옛날에 비하면 좀 식어진 감은 없지 않지만 한국 교회만큼 기도를 많이 하는 교회가 있겠는가? 매일 아침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개인이나 교회들의 어려움을 극복해 왔고,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다. 선교사들을 위해 기도하는 교회들이 많이 있다. 먼곳에 있기에 보이지도 않고, 만나기도 쉽지 않은 사람들이 선교사이지만 교회를 대신해서 일하는 선교사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교회의 기도의 지원이 있기에 저들은 힘을 얻어 영적 전투에서 승리의 기쁨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교회는 선교사들의 필요를 누구보다 절 알고 염려하고 지원을 해 온 곳이다. 마치, 자녀들을 위한 어머니의 염려와 희생처럼 선교사들의 어려움이 자신들의 어려움을 알고 있었고, 선교사들의 사역이 자신들의 사역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울의 주변에는수 많은 신앙의 어머니들이 있었고, 바울을 위해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고후 8:2) 할 수 있었던 것은 교회는 선교사들을 위한 책임의식 때문일 것이다.

교회들은 종종 선교사들의 잘못을 지적해야 한다. 그리고 모니토링도 필요하다. 선교사들이 잘 못하고 있다면 지적하고, 격려도 해서 잘되는 길로 가도록 만드는 것이 어머니로서의 교회의 당연한 책임이다. 선교사들은 교회를 두려워 할 수 있어야 한다. 얼마나 많은 교회들이 희생을 통해서 만들어진 헌금을 보내고 있는가를 생각할 때마다 잘 해야 하겠다는 결단을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기장관계를 통해서 서로가 도전을 받는 것이고, 하나님의 일을 엄중한 자세로 이루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을 한다.

지금까지 교회는 지나치게 선교사를 믿어왔고, 보내는 것으로 책임을 다 했다고 생각을 한다. 이제는 한국 선교의 성숙성을 이야기 해야 할 시기가 왔다. 성숙성이란 열매를 맺는 것을 말하고 열매는 그냥 맺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호의 노력과 헌신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노력과 헌신을 마치 과일나무에 거름을 주는 것으로 비유한다면 아무리 지난해에 열매가 많이 맺인 나무라 할지라도 금년도에 더 많은 거름을 주지 않으면 열매는 맺지 않는다. 노력과 헌신이라는 거름은 한 순간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이 이루어져야할 중요한 농사의 한 과정이라면 어렵게 만들어진 한국 선교가 이제 무성한 잎을 가지고 있는 모습속에서 하나님이 열매를 기다리고 계시다고 하는 인식아래 우리는 긴장해야 한다.

어머니의 돌봄이 없는 자녀는 사생아일 수밖에 없다. 교회와 선교사의 관계를 사랑의 관계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엄중한 명령을 수행하기 위한 긴장된 파트너일 수 밖에 없다. 마지막 시대(end-time)를 사는 우리에게 선교는 순교를 말한다. 그것은 기장의 순간을 말하는 것이다.

---본지는 앞으로 <선교의 새 패러다임>을 주제로 이은무 선교사의 칼럼을 매주 연재한다. 1976년, 인도네시아 정글로 파송돼 한국 선교의 1세대 가운데 한 명인 이선교사의 칼럼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 기독교인들에게 '선교의 하나님'께서 펼쳐 나가길 원하시는 새로운 선교의 패러다임을 소개하고, 예수님이품으셨던 '선교적 심장'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