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M 가수 A 씨. 그는 꽤나 촉망받던 신인이었다. 독특한 음악적 색깔로 마니아층까지 상당수였다. 교회와 기독교 단체들의 러브콜은 당연했다.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러다 “예수를 믿지 않는 이들에게도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세상으로 나가자고 결심했다. A 씨는 CCM 활동을 접고 가요음반 작업에 매달렸다.

모든 것을 쏟았다. CCM 가수라 실력이 안 된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2년간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곡을 쓰는 데만 집중했다. 가사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모두가 사랑을 노래하는 그곳에서 진짜 사랑을 전하고 싶었다. 비로소 완성된 음반을 손에 쥐었다. 가슴이 벅찼다.

이제 노래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현실은 차갑기만 했다. 기획사 없이 음반을 홍보하기란 하늘에서 별을 따는 것보다 어려웠다. 방송국 피디(PD) 등 소위 ‘큰 손’들을 만나 사정하는 일들이 잦아졌다. 라디오에 노래 한 소절 내보내려면 그렇게라도 해야 했다. 하지만 그것조차 반짝이었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곡이 쏟아지는 가요계에 기다림이란 없다. 단기간에 승부를 보지 못하면 금세 외면 받는 게 그 바닥 생리란다.

그렇게 1년, A 씨의 짧은 도전은 끝났다. 가지고 있던 돈도 바닥났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비록 지하 단칸 월셋방 신세지만 깨달은 게 많다. 후에 다시 도전해 볼 생각이다. 언젠가 길이 열리리라 그는 믿고 있다.

CCM 가수에게 대중가요계로의 ‘크로스오버’(crossover; 서로 다른 음악 장르들을 넘나든다는 의미의 단어. CCM 가수의 대중가요계 진출을 뜻하기도 한다. -편집자 주)는 이렇게 어렵다. 눈에 띄는 성공사례가 아예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이 문제인지 그 원인을 짚어봤다.

▲CCM 가수에게 대중가요계로의 진출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음악적 완성도와 함께 기획, 홍보 등 넘어야 할 산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이미 많은 크리스천들이 대중가요계에 진출해 있고, 최근 CCM 가수 소향 씨의 ‘나가수’ 출연 등도 미래를 밝게 하는 부분이다. 사진은 한 CCM 가수의 콘서트 장면.


CCM 시장과는 전혀 다른 생리

크로스오버를 시도하는 CCM 가수들은 대부분 ‘선한 영향력’ 확대가 목적이다. 일반 대중가수로 인지도가 올라가면 그 만큼 신앙을 전하는 데 수월하기 때문이다. 물론 CCM 가수도 뮤지션이기에 음악적 욕심도 작용한다. 보다 넓은 곳에서 자신의 실력을 시험해 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CCM계에서 내로라 하는 가수들이 이런 의도에서 대중가요계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번번이 쓴맛만 봤다. 가요 1집 음반 이후 활동이 뜸해지거나 아예 자취를 감춘 경우가 다반사다. 그러다 결국 CCM계로 돌아오는 패턴을 반복한다.

다양한 이유가 있다. 일단 대중가수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음악적 완성도가 꼽힌다. CCM 시장은 일반 가요시장에 비해 턱없이 좁다. 이런 곳에 있다 보면 경쟁이란 것에 그리 익숙지 않다. 반면 가요계는 그야말로 적자생존의 정글과 같다. 자연히 살아남기 위해 치열해 질 수밖에 없다. CCM 가수는 처음부터 그가 처한 환경으로 인해 ‘큰 물’에서 놀 수 있는 체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CCM 가수가 실력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반론도 많다. 신앙적 이유로 CCM 가수가 된 것이지 실력 때문이 아니라는 항변이다. 그런데도 이들의 도전이 실패로 돌아가는 데는 음악 외적인 부분, 즉 인맥과 홍보 등 대중가요의 상업적 시스템을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한때 크로스오버를 시도했던 CCM 가수 김명식 씨는 “대중가요계는 노래를 잘 하고 춤을 잘 춘다고 해서 무조건 성공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한 명의 성공한 가수 뒤에는 거대 기획사와 방송국, 음반사 및 음원 기업 등의 공조가 있다”며 “순환주기도 짧아서 빨리 대중들의 눈에 띄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이는 음악적 완성도만 가지고는 불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가사 전달의 한계를 꼽기도 한다. 김 씨는 “가요에서 신앙적 표현은 당연히 직접적일 수 없다. 그렇다고 아주 세속적일 수도 없다”며 “그런데 세상 가요의 90%는 자극적이고 독한 사랑 이야기다. 나머지 10%만이 일종의 ‘착한 사랑’을 노래한다. 대중가요계로 진출한다고 할 때, 사실은 그 10%를 보고 가는 것”이라고 크로스오버의 현실적 어려움을 토로했다.

‘블랙 가스펠’이라는 장르로 주목을 받고 있는 그룹 ‘헤리티지’ 역시 지난 2006년 크로스오버를 선언, 1집 음반을 내고 야심찬 활동을 시작했지만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간 멤버 교체 등 내부 문제가 있긴 했지만 CCM과는 다른 가요계 생리가 주원인이라는 평가다.

헤리티지 리더 김효식 씨는 “기획사 문제도 있었고 무엇보다 대중음악은 굉장히 짧은 기간에 어필하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는 구조다. 이런 것에 적응하지 못한 면이 있다”고 말했다.

▲크로스오버를 시도했던 블랙가스펠 그룹 헤리티지. 이들은 MBC 나는가수다 역사상 최고의 무대로 꼽히는, 임재범의 ‘여러분’을 피쳐링하기도 했다.


연예인에 CCM 가수보다 몇 배 사례금

또한 김 씨는 “기독교 영역의 가수가 일반의 그것으로 진출하는 것에 민감한 시선들도 작용했다”면서 “기독교 외부는 물론 내부서도 CCM 가수의 일반 가요계 진출을 곱지 않게 보는 이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크로스오버의 어려움 중에는 ‘종교적 핸디캡’도 빼놓을 수 없다. 요즘같이 기독교의 이미지가 추락한 경우엔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나가기는 어려워도 들어오기는 쉽다. 다시 말해, CCM 가수가 대중가요계로 진출하는 것엔 여러 제약이 따르지만 반대로 대중가수가 기독교 내부로 진입하는 데는 아무런 장애가 없다. 오히려 특혜까지 있다. 일부 교회는 전도를 이유로 ‘연예인’들을 각종 집회에 자주 초청하는데, 그 사례비는 CCM 가수의 몇 배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찌보면 당연하게 여길 수 있지만 이런 관행이 CCM 시장을 위축시키고 이는 크로스오버를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 CCM 가수는 “한 교회 집회에 어느 연예인과 함께 초청됐는데 후에 사례비 차이를 알고 자괴감을 느꼈다”며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은 아니지만 노래 몇 곡만을 부르고 금방 가버리는 그 연예인에 비해 내가 홀대받는다는 생각은 떨칠 수 없었다. 크로스오버가 어려운 것은 CCM의 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일 텐데, 교회가 이를 자초한 면이 있다”고 비판했다.

단순 비교가 어렵지만 미국의 경우 CCM 시장은 일반의 그것에 못지 않다. 이런 이유로 커크 프랭클린, 밥 딜런 등 다수의 가수들이 CCM과 대중가요계를 넘나들고, 대중들도 이런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CCM 관계자들은 이런 점을 언급하며 “한국교회가 CCM을 비롯해 문화영역에 관심을 갖고 투자한다면 미국처럼 되지 말란 법이 없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결국은 실력… 미래는 밝다

▲MBC <나는 가수다2>에서 경연중인 소향의 모습. ⓒMBC 캡처


크로스오버의 이 같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얼마 전 CCM 가수 소향 씨의 엠비씨(MBC) 예능프로그램 ‘나는가수다’(나가수) 출연은 그 자체로 CCM계에 상당한 의미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CCM 가수도 실력만 있으면 대중가요계에서 통할 수 있다는, 하나의 여지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거의 모든 CCM 가수들이 소향 씨의 ‘나가수’ 출연을 반기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 소향 씨의 시아버지인 김경동 목사는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작년부터 (‘나가수’측으로부터) 섭외 요청이 있었지만 거절해 오다 이번에 수락한 것”이라며 “CCM을 비롯해 기독교 음악의 환경이 매우 열악하다. 그래서 CCM 가수도 실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기독교방송이 아닌) 일반방송 프로에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 CCM 가수는 “크로스오버에 음악 외적인 부분이 작용하는 것은 맞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가수의 실력”이라며 “소향 씨는 ‘나가수’ 출연 이전에도 음악인들 사이에선 그 가창력으로 인해 꽤나 유명했던 가수였다. ‘나가수’ 측이 종교적 부담을 안고서도 그를 섭외한 것도 무시할 수 없는 그녀의 실력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미래는 밝다. 김명식 씨는 “대중가요계에 여전히 상업적 원리가 지배적이지만 조금씩 변하고 있다”며 “알고 보면 그곳에 크리스천들이 굉장히 많다. ‘나가수’에 출연해 큰 인기를 모은 김범수, 박정현 씨 등도 크리스천이다. 이들이 점점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하면 실력 있는 CCM 가수들이 대중가요계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도 그 만큼 많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