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많은 사람들이 무소유나 청빈사상이 기독교의 기본 덕목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마도 가장 많이 인용되는 말씀은 바로 <약대(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마19:24)> 라는 구절일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이 하시려던 말씀이 부자를 향한 저주의 말씀이셨을까? 그렇다면 과연 부자는 얼마나 가진 사람이 부자란 말인가? 매년 신고하는 소득세를 기준으로 연봉이 백만달러가 넘는 사람은 천국에 가지 못하다는 그런 뜻일까?

청빈사상은 원래 그 뿌리를 불교에 두고 있다. 전통적으로 불교의 영향이 강했던 한국에서 거의 모든 종교에 불교의 흔적이 남아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유교역시 무소유를 지향하지는 않았지만 청빈을 덕목으로 내세웠다. 특히 사농공상의 철학에서 볼 수 있듯이 상업을 가장 천하게 여겼다. 돈은 더럽고 천한 것이었다. 선비들은 돈을 지불해야하는 경우에 반드시 왼손을 사용했었다. 오른손을 바른손이라도 부르고, 왼손잡이를 환자로 취급했던 (한국에서는 아직도 그렇다) 이유가 다 여기에 있다.

하지만 기독교는 청빈(淸貧)이 아니다. 오히려 청부(淸富)에 가깝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청빈과 청부를 초월한다. 중요한 것은 부(富)나 빈(貧)이 아니라 청(淸)이다. 그래서 바울사도가 고백하기를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빌4:12)> 라고 했다. 풍족함이 나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빈궁함이 덕이 되는 것도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그 상황에 지배되지 않고 상황을 지배할 수 있는 믿음과 용기다. 그리고 한가지를 더 한다면 지혜가 필요하다.

우리 중에는 무서운 가난을 경험해 본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한국속담에 사흘 굶고 담을 넘지 않을 사람이 없다고 했다. 가난은 불편함을 넘어서 무서움의 대상이 되고 우리가 감당하기 힘든 시험이 된다. 하지만 부유함도 마찬가지이다. 풍족함은 우리의 신경을 조금씩 무디게 만드는 마약과도 같다. 풍족한 상태에서 그것을 시험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더욱 경계하셨다. 풍족함으로 병든 사람은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기 어렵다고. 아마도 하나님나라에 대한 관심자체가 없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부유함은 은혜가 아니라 독이 될 수 있다.
본론으로 돌아가자. 돈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돈을 탓하지 말자. 돈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는 우리 자신의 나약함을 경계하자. 돈이 적으면 적은대로 혹은 돈이 많으면 많은대로 우리의 가치기준은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적게 가진 자가 돈앞에서 비굴해지는 것은 많이 가진 자가 돈을 가지고 휘두르는 것만큼이나 나쁘다.

적게 가진 자를 업신여기면 안되지만 많이 가진 자를 무조건 증오하는 것도 옳지 않다. 주식투자를 해서 부자가 되었다고 죄를 짓는 것이 아니다. 주식시장에 투자된 돈은 기업들의 자금이 된다. 투자자가 없다면 기업도 없다. 기업이 없으면 일자리도 없다. 돈을 버는 일 자체가 문제는 아니라는 뜻이다. 돈이 많다고 죄의식을 느낄 필요없다. 정당한 방법으로 번 돈이라면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다. 사도 바울도 천막을 만들어 팔아서 자비량선교를 하지 않았던가? 천막을 팔 때에 원가만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노동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았고 그것으로 생활을 했을 것이다.

중요한 점은 돈을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다스리는지에 대한 것이다. 돈과의 관계에서는 둘중에 하나만 가능하다. 내가 주인이 되던지 아니면 돈이 나의 주인이 되던지. 그리고 우리 모두는 정답을 알고 있다. 적어도 머리속으로는. 소유한 재산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나를 다스릴 수 있는 것이 믿음이다.

칼럼리스트 하인혁 교수는 현재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있는 Western Carolina University에서 경제학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Lifeway Church에서 안수집사로 섬기는 신앙인이기도 하다. 그는 연세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1991년도에 미국에 건너와 미네소타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앞으로 하인혁 교수는 기독일보에 연재하는 <신앙과경제> 칼럼을 통해 성경을 바탕으로 신앙인으로써 마땅히 가져야 할 올바른 경제관에 대해서 함께 생각하고 삶 가운데 어떻게 적용해 나가야 하는지를 풀어보려고 한다. 그의 주요연구 분야는 지역경제발전과 공간계량경제학이다. 칼럼에 문의나 신앙과 관련된 경제에 대한 궁금증은 iha@wcu.edu로 문의할 수 있다"-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