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동부지역에서 엄선된 사역자를 양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췌사픽신학대학원 뉴욕분교(분교장 이종식 목사)가 조휘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구약학 교수 초청, 구약총론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베이사이드장로교회 교육관에서 공개강의로 진행된 이번 수업은 26일부터 28일까지 1차 교육과정이 마무리됐으며 오는 5월 17-19일 마지막 교육과정이 진행된다.

조휘 교수는 이번 구약총론 강의에서 철저히 복음주의적 입장에서 구약성경의 형성 과정을 설명하면서 성서의 권위에 대해 도전하는 성경비평가들의 일부 의견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했다. 조휘 교수는 구약성경 39권은 주전 430년까지 저작이 완료된 이후 정경으로 예수님 시대 때까지 이어져 온 것이며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도 이를 뒷받침하는 내용이 나오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강의 목표는 △구약의 기본적인 내용들에 대해 복음주의적 견해 제시 △이스라엘 역사적 흐름에 따른 구약의 구성을 설명 △구약 각권의 기본적인 내용 및 신학적 주제을 설명 △구약성경 전체의 연관성을 설명 △구약연구 방법론의 기초적 전제와 적용을 제시 등이다.

조휘 교수는 “복음주의 관점에서 구약성경을 연구하기 위한 기본적인 내용들을 살펴보고 해석적 관점과 방법론에 관한 기본 사항들을 숙지하려 했다”며 “구약성경 전체의 내용을 개론적으로 다루면서 구약성경이 전달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살피고 구약성경의 일관된 신학적 주제들을 고찰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조휘 교수가 전한 구약성경 39권 형성 과정.

구약성경에서 하나님께서 어떠한 일을 하고 계신지 보여주는 것 그 매개체가 이스라엘이 되고 있다. 때문에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이해를 할 때 구약을 이해할 수 있다.

반면에 신약성경을 제대로 이해를 하려면 신약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인 예수님의 삶을 봐야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예수님의 공생애다. 그것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또 교회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신약을 이해할 수 있다. 같은 차원에서 구약을 이해하려면 이스라엘의 역사를 알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 뼈대를 알아야 성경을 이해할 수 있다.

성경은 분명히 사람이 써서 우리에게 준 것이다. 그러나 정경성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기록이 정경으로써 삶과 신앙의 교본으로 다가오기 위해서는 성령이 관여해야 하다. 이런 인간 저자와 성령이 같이 역사한 것을 영감이라고 한다.

인간의 기록을 하나님의 말씀되게 하는 것이 영감이다. 이 영감은 성경을 기록하는 것에 제한된다. 우리가 성경을 번역하는 것에도 영감이 있을 수 있지만 이것을 그 영감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영감에 대해서 복음주의에서는 유기적 영감성이라고 보고 있다.

어떤 영감으로 이뤄졌는가라고 한다면 유기적 영감이라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범위에 있어서 어디까지 영감이 작용했는가에 대해서는 축자영감이라는 표현을 한다. 글자 하나하나 모든 것이 다 포함되는 범위에 대해 성령의 영감으로 이뤄졌다고 보는 것이 축자영감이다. 이것은 원본에 대해서만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것이 무오성이다.

오늘 구약성경 39권이 어떻게 형성됐는가를 보면 우리가 읽는 개신교 성경은 4중 구조다. 모세율법, 역사서, 시가서, 선지서다. 히브리 성경의 구조(타나크)는 토라(율법서), 느비임(선지서), 케투빔(성문서)으로 크게 3가지로 돼 있다.

원래 전통적으로 갖고 있던 성경의 배열은 히브리 성경이기에 구약성경의 형성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히브리 성경을 기준으로 설명해야 한다. 구약성경의 39권의 형성은 율법서는 율법서대로 선지서는 선지서대로 성문서는 성문서대로 모아져서 39권이 형성되는 것이다. 구약성경의 형성에 있어서는 첫 번째 저작이 돼야하고 두 번째 정경화 작업이 필요하다. 세 번째 집필의 과정이 있다.

토라는 창세기에서 신명기까지로 본다. 그리고 이것은 모세가 기록했다고 본다. 출애굽이 이뤄진 것이 기원전 1486년이다. 그리고 광야 방황한 것이 40년이기에 출애굽과 1446년 그 기간 사이에 기록이 이뤄졌을 것이라고 본다. 모압평지에 있으면서 5권을 마무리하고 전달했다고 볼 수 있다. 모세의 입장에서 독자들은 과연 누구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초점이 있다. 2세대들에게 초점이 있는 것이다. 가나안 땅에 왜 그 나라를 세워야 하고 어떤 나라를 세워야 하는지에 대해 가르치는 것이다. 모세5경은 창세기로 끝나지 않는다. 신명기 34장까지 봐야 저자의 의도를 충분히 알 수 있다. 유언과 같은 내용이다.

특히 그 유언과 같은 내용이 부각되는 성경은 신명기다. 모세의 심정이 신명기에서 느껴진다. 그것을 느끼면서 읽을 때 모세5경을 제대로 읽을 수 있다. 말하는 톤이 틀려진다. ‘들으라 이스라엘아’ 등의 표현이 간곡하게 권면하는 형식이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이 언제 정경으로 받아들여졌는가를 볼 때 여호수아 1장을 볼 때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없이 지켜라는 내용이 있다. 이미 그 때 모세5경이 정경으로서 받아들여 진 것이다. 레위기 선지서에 들어가게 되면 전기선지서는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상하, 영왕기상하다.

여호수아는 모세오경의 다음 사건으로 기록돼 있는데 크게 2가지 내용이다. 가나안 땅 정복 전과 가나안 땅 정복 후다. 비평가들 중에는 이 시기에 기록된 것이 아니라 더 훗날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지만 여호수아서에 보면 ‘오늘날까지’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훗날 성경이 기록됐다고 보기에 어려운 부분들이 많다.

사사기서가 쓰여진 년도는 정확히 나와 있지 않지만 내용 중에 ‘왕이 없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있다’는 식의 표현이 나오는데 거의 왕정시대에 가까이 왔을 때 기록됐다고 볼 수 있다. 그 뒤 이어지는 것이 사무엘상하다. 사무엘, 사울, 다윗의 이야기다 왕정시대의 이야기인 것이다. 영왕기하 거의 마지막 부분인 25장 27절에 ‘유다의 왕 여호야긴이 사로잡혀 간 지 삼십칠 년’이라고 돼 있다.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지 37년째다. 열왕기상 1장 1절은 다윗이 보인다. 다윗에서부터 포로기까지 간다. 다윗은 주전 1천년의 사람이다. 열왕기상하의 독자는 주전 560년~561년 시대의 포로돼 있는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다윗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지만 포로된 이들에게 전해지는 이야기이다.

선지서는 전기 선지서가 있고 후기 선지서가 있다.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호세야에서부터 말라기까지가 선지서다. 다니엘서는 선지서로 포함시키지 않고 있다. 구약에 선지자들이 많이 나온다. 사람들이 연구할 때 분류를 한다. 이사야서부터 말라기까지는 흔히 문서 선지자라고 이야기를 한다. 이 사람들은 자기가 겪은 이야기라던지 신탁을 한 것이 있다. 그러나 엘리야는 전형적인 선지자이긴 하지만 우리가 문서 선지자라고 하지는 않는다. 자기의 이야기를 직접 기록하지 않았다. 이사야에서부터 말라기까지는 다 문서 선지라로 말한다.

그리고 연대기적으로 보면 아모스가 가장 앞서 기록됐다. 기록을 남긴 최초의 선지자는 아모스다. 그것이 주전 760년대다. 제일 마지막 선지서로 읽혀지고 있는 말라기는 460년대라고 본다. 말라기서를 보면 몇 년도로 표현하지 않는데 기록된 배경을 볼 때 그 때로 추청하는 것이다. 760년에서 460년 사이에 선지자들이 사역을 하고 기록을 남기는 것이다.

이 책들이 정경적 권위를 갖는 것은 이미 성경이 선포를 하고 있다. 다니엘이 포로지에 있으면서 예레미야서를 읽으면서 회복의 때가 이 때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이미 당시에 선지서는 정경으로서의 권위를 가졌다. 아모스, 이사야 등 시대마다 선지자들이 등장하는데 선지자들은 앞선 선지자의 글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성경을 보면 먼저 선지자들이 선포한 것이 다음 선지자들의 선포에 이어진다. 저작이나 정경화는 주전 700년대에서부터 400년대까지 이뤄졌다. 이것을 하나로 묶는 것은 주전 5세기에 다 이뤄졌다. 포로후기에 다 모아진 것이다.

그리고 시서가 있는데 시편, 욥기, 잠언 등이다. 시편은 총 150편이 있다. 이 150편이 기록이 되고 모아진 것이다. 150편 중에 믿을만한 자료에 의해서 살펴보고 표제를 볼 때 가장 먼저 쓰여진 것이 시편 90편이다. 이것도 시편 1편부터 순서대로 모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시편 137편을 보면 포로기다. 126편은 포로에서 돌아오는 내용이다. 전체 시편 150편은 연도별로 나열했을 때 제일 끝에 오는 것이 126편이다. 시편은 모세 때부터 기록됐다고 볼 수 있다. 포로후기까지 쓰여지는 과정 속에서 이렇게 모아지고 저렇게 모아져서 150편이 5권의 책으로 또 나뉘어진다. 이런 묶음의 작업들을 볼 수 있다. 시편이 저작되는 것은 모세에서부터 포로후기까지다. 정경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그 모아지는 과정마다 이뤄졌다.

그 뒤 욥기가 있다. 욥기는 시대적 배경을 놓고 볼 때 흔히 족장시대로 본다. 아브라함은 주전 2000년대 사람이다. 2166년으로 아브라함이 태어났다고 보고 있다. 열왕기하에서 솔로몬이 성전을 짓는 때부터 계산해 나가면 아브라함이 대략 2166년에 태어났다고 볼 수 있다. 욥기서는 왕정시대의 배경이 나온다. 왕정시대의 대표적인 인물은 솔로몬이다. 그렇게 볼 때 욥기 잠언 전도서 아가서의 저작 시기는 왕정시대이고 정경화 시기도 왕정시대로 보고 있다.

예레미야애가는 바벨론성전이 파괴됐을 때 기록됐고, 에스더서는 실질적으로 포로 후기에 가나안땅으로 돌아오지 않고 이방인 땅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주전 480년에 벌어진 일을 기록하고 있다. 에스더서의 저작년도는 480년도다. 에스더서가 모아진 5권의 마지막 집필된 성경이라고 볼 수 있다.

다니엘서의 역사적 정황은 포로기 시작부터 포로기가 끝나는 날까지다. 에스라, 느헤미야는 포로에서 돌아오고 또 2차로 돌아오던 시기다. 역대하 36장 22절을 보면 역대기서가 마무리되는 시기를 알 수 있다. 주전 530년대다. 에스라 1장1절을 보면 바사왕 원년이라고 나온다. 역대하의 끝과 같다. 에스라 느헤미야의 저자는 역대하가 끝나는 부분부터 이어간다. 하나를 마무리하고 그것을 받아서 이어가는 형식이다. 그런데 같은 저자가 아니다. 에스라 느헤미야의 저자가 역대하 이후의 시기를 적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배열이 뒤집어 놓은 이유는 느헤미야 13장 내용이 제일 끝에 오는 것인데 느헤미야 13장의 끝이 이스라엘 백성이 안 좋았던 내용이 나온다. 역대하 36장은 그래도 희망적인 메시지로 마무리된다. 결국 에스라 느헤미야가 가장 마지막에 쓰여진 책인 것이다. 성경 배열에 보면 제일 마지막은 말라기이기 때문에 그 책이 가장 마지막이라고 보지만 그것은 주전 460년 경이고 에스라 느헤미야는 주전 430년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구약성경에 39권이 완성됐다. 그런데 언제 이 성경 3권이 하나의 구약성경으로 묶이게 됐는지 질문이 나온다. 모세오경은 선지자들이 그것을 간직하고 그것을 전수해줬을 것이라고 본다. 제사장들이 간직하고 전달했을 것이다. 모세오경 문서를 보관하고 전달하는 것은 제사장이다. 그리고 두 번째 선지자서는 선지자생도 그룹들이 자기들이 간직하고 또 전달했을 것이라고 본다. 문서를 보관하고 전수하는 것은 선지자 그룹으로 보다.

시문헌이나 지혜문헌을 볼 때 왕정에서 보관하고 전달해주지 않았는가 생각한다. 이렇게 전수돼 오는 것을 통합해서 하나의 성경으로 묶은 것은 성경이 다 기록된 시기를 보면 된다. 적어도 주전 430년 이전까지는 하나로 묶을 수 없었다. 에스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열정이 있었던 사람이다.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마무리되고 최종 통합작업을 에스라가 하지 않았을까 보는 것이다. 그것에 대한 간접적 증거가 있다. 이미 예수님 당시에서도 그것이 받아들여졌다.

누가복음 24장 44절을 볼 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 시편을 말씀하신다. 구약성경 전체가 예수님에 대해서 증거하고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여기서 보고자 하는 것은 예수님 당시에도 3중 구분이 있었고 이미 39권을 다 갖춰져 있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주전 400년대와 주후1세기의 시간텀인데 이 기간이면 이미 구약 39권이 정경으로 받아들여진 이후다.

비평가들은 39권이 정경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주후 90년이라고 주장한다. 그 때 랍비들이 모여서 정경을 39권으로 하자고 정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 속에 유대인 공동체 안에 39권이 정경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는 것이 나온다. 이것이 복음주의적 관점에서 보는 구약 39권의 형성에 대한 이해다. 우리가 구약을 통해 집중해서 봐야할 부분은 바로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