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이에 아브람이 사람들을 이끌고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그 땅을 통과하여 세겜 땅 모레 상수리 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하였더라
그곳에 단을 쌓고
거기서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라
그곳에서 단을 쌓고 점점 남방으로 옮겨 갔더라
그 땅에 기근이 있으므로 이집트에 우거하려 하여 그리로 내려갔으니

가나안 땅을 통과하여/
▲세겜 북동쪽에 위치한 와디 파리아(Wadi Faria)이다. 세겜에서 이 골짜기를 따라가면 디르사, 아담, 요단강을 건너 얍복강을 따라 길르앗 산지로 갈 수 있다.
아브라함 시대는 이스라엘 고고학 연대에 따르면 중기 가나안 시대(Middle Bronze II / 2000-1550 BC)의 초기에 해당한다. 이 때는 팔레스틴에 도시 국가가 다시 활기를 띠던 때로 많은 도시들이 비옥한 평야 지역에 건설되었다. 주로 지중해 해안 평야 특히 갈렐산 로쉬 하니크라(Rosh HaNiqra) 사이의 기름진 아셀 평야에 많은 도시들이 세워졌다. 갈멜산 남쪽의 샤론 평야와 쉐펠라 지역에도 중기 가나안 시대의 도시들이 세워졌지만 중앙 산지에는 건설된 도시가 거의 없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을 통과한 길은 도시들이 발달된 해안 평야 지역이 아닌 사람들이 별로 거주하지 않는 중앙 산지의 분수령 길이었다.

아브라함이 하란을 출발하여 세겜에 이르기 전 정확하게 어느 길을 이용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당시 가장 대표적인 길인 바산(골란 고원) –길르앗 산지-얍복강-요단강-와디 파리아(Wadi Faria)-디르사-세겜 도로를 따랐을 것이다. 후에 야곱은 밧단 아람 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땅으로 돌아올 때, 같은 경로를 따라 세겜에 도착하였다(창32~33).

세겜 땅 모레 상수리 나무/
중앙 산지의 분수령에 위치한 세겜은 산지에서 매우 중요한 성읍이었다. 세겜은 주전 20~19세기 중앙 이집트 저주 문서와 쿠후세벡(Khu-Sebek) 문서에도 나타난다.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장소에 위치한 세겜은 동쪽으로 향하면 디르사-와디 파리아를 거쳐 요단 계곡-길르앗 산지로 접근할 수 있고, 세겜에서 서쪽으로 향하면 사마리아-도단을 거쳐 지중해 또는 이스르엘 평야를 거쳐 서쪽 페니키아 또는 동쪽 다메섹으로 갈 수 있다. 북 이스라엘 왕국의 모르리가 디르사에서 수도를 사마리아로 옮긴 근본적인 이유는 페니키아와의 정치적인 교류 때문이었다(왕상 16).

모레 상수리 나무는 세겜 성 근처를 의미한다. 이 표현은 신명기 11:30절에 한 차례 더 나타난다. 또 다른 기록으로는 창세기 35:4절에 야곱은 세겜 근처 상수리 나무 아래에 이방 신상과 귀고리를 묻었다. 후대에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여호와 사이의 언약의 증거로써 큰 돌을 취하여 여호와의 성소 곁에 있는 상수리 나무 아래에 세웠다(수 24:26).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라/
▲벧엘과 아이 사이에서 찍은 사진으로 시기는 3월 중신이다. 사진에서 왼쪽으로 가면 벧엘, 오른쪽으로 가면 아이 성이 있다.
세겜에서 벧엘로 연결된 길은 중앙 산지의 분수령을 따라 형성도니 도로로써 가나안의 내륙을 남북으로 연결한 가장 중요한 도로이다. 지금도 팔레스틴의 북쪽 세겜에서 출발하여 남쪽의 여러 마을들인 레보나-실로-미스바-기브아-예루살렘-베들레헴-에담-할훌-헤브론-드빌-브엘세바로 이어진다. 성경에서 말하는 벧엘은 텔 베이틴(Tell Beitin)으로써 중앙 산지의 분수령에서 약간 동쪽에 위치한다. 아이는 벧엘의 동쪽에 위치한 에브라임 지파에 기업으로 주어졌다. 아브라함은 벧엘과 아이 사이에 재단을 쌓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후에 점점 남쪽으로 이동하였다. 아브라함이 남쪽으로 이동한 경로는 벧엘과 아이 사이에서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후에 점점 남쪽으로 이동하였다. 아브라함이 남쪽으로 이동한 경로는 벧엘과 아이 사이에서 출발하여 사울의 고향인 기브아-예루살렘 서쪽의 중앙 산지 분수령을 따라 이동하였다. 아브라함이 가나안을 통과했던 당시의 예루살렘은 세겜과 함께 이집트의 고대 문헌인 저주 문서에도 나타나는데, 당시 예루살렘은 산지에서 가장 대표적인 도시 가운데 하나였다.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오늘날 네게브(Negev)라 함은 브엘세바에서부터 남쪽 홍해까지 시나이 사막(Sinai desert) 전체를 가리키지만 성경에서의 남방(Negev)는 매우 제한적이다. 성경에서 남방 곧 네게브는 브엘세바의 동쪽 아라드에서 브엘세바의 서쪽 지중해까지를 말한다. 브엘세바의 서쪽으로 브엘세바 시내(Nahal Beersheba)와 만나 지중해로 연결된다. 브엘세바 시내와 브솔 시내를 따라 금석 병용기 시대(4300-3200 B.C.)에 많은 마을들이 있었지만 아브라함 시대에는 마을들이 별로 없었다.

성경의 네게브 토양은 주로 풍성토(loess soil)로 이루어져 있다. 풍성토는 동쪽 에돔 산지로부터 바람에 날린 고운 모래와 먼지가 쌓여 형성된 토양으로 우기철 비가 내리면, 풍성토는 주로 골짜기 낮은 곳에 쌓여 작은 평야를 이룬다. 네게브의 연간 강수량은 일정치 않지만 평균 200~300mm정도의 비가 내린다. 이 정도의 비라 할지라도 정상적으로 내린다면 밀과 보리를 재배할 수 있지만 그나마 비가 적게 내리는 가뭄 때에는 농사를 짓기 어려운 지역이다.

풍성토는 우기철 비를 거의 흡수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갑자기 비가 내리면 풍성토는 비에 씻겨 낮은 골짜기에 쌓인다. 그리고 겨울철 헤브론 높은 산지에서 비가 내리면 그 빗물은 짧은 시간에 네게브 시내로 모여 홍수를 동반하곤 한다. 높은 산지에서 낮은 네게브로 급류를 이루는 겨울철 홍수에 의해 해마다 목숨을 잃는 일이 발생한다. 시편 기자는 짧은 시간에 물이 낮은 곳으로 모이는 자연 현상을 두고 시편 126:4절에 이렇게 표현하였다: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 보내소서.

수세기 동안 성경의 네게브는 배두윈들의 안식처였다. 나라가 정치적으로 안정되었을 때에, 사막에 인접한 네게브에는 마을들이 건설되고 사막의 유목민들의 침입을 대비하여 경계를 삼았다. 지리적으로 네게브는 동쪽으로는 에돔 산지, 그리고 남쪽으로는 홍해를 거쳐 아프리카로 연결되는 중요한 관문이기도 했다.

그 땅에 기근이 있어 아브람이 이집트에 우거하려 하여…. 그리로 내려갔으니/
▲가나안에서 해변길을 따라 이집트로 향하면 반드시 거쳐가는 도시가 있다. 민수기 34:5, 여호수아 15:4절에 애굽 시내라고 기록된 엘 아리쉬(el Arish) 도시이다. 가사 이후 모래 사막을 지나다 엘 아리쉬에 이르면 수 백만 그루의 종려나무를 볼 수 있는 오아시스이다.
남방(Negev)에 전략적으로 중요한 성읍은 브엘세바였다. 에돔에서 또는 이집트에서 가나안의 중앙 산지로 접근할 때에 도로를 관리하는 도성으로써 브엘세바는 네게브에서 가장 중요한 성읍이었다. 네게브를 통과하는 고대 도로는 동쪽 에돔 산지를 출발하여 텔 말하타(Tell Malhata/152~069)를 거쳐 브엘세바-텔 젬메(Tell Jemma)를 지나 이집트로 연결되었다. 지중해 해변길을 따라 이집트로 연결되었던 고대 도로는 출애굽기 13:17절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 이사야 9:1절에는 ‘해변길’(Via Maris)로 기록되었다. 해변길은 고대 이집트 문서에 전쟁의 신인 호루스의 길(the Way of Horus)로 언급되었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이 길을 바로의 길(왕의 대로)이라 불렀던 것은 이집트 바로가 이 길을 따라 많은 군사적 원정을 했기 때문이다. 이 길은 군사적인 용도외에도 국제간의 무역을 담당했던 상인들이 이용한 길이기도 하다. 도단에서 은 20개로 요셉을 샀던 미디안 상인들은 이 길을 따라 이집트로 내려갔다. 아브라함은 같은 길을 따라 기근을 피하여 이집트로 내려갔으며 먼 훗날 마리아와 요셉은 헤롯의 박해를 피하여 아기 예수님을 안고 이 길을 따라 베들레헴을 떠나 이집트로 내려갔다.

필자는 이 고대의 길을 경험하기 위하여 1996년 예루살렘에서 버스를 타고 가사의 남쪽 라피아 국경을 통과하여 고대 해변길을 따라 수웨즈 운하를 건너 카이로에 도착한 적이 있다. 그 경험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다. 이스라엘의 유대인들과 가사의 하마스 간에 갈등이 어느 정도 해소되어 라피아 국경이 다시 열린다면 언제든 또 가고 싶은 고대의 해변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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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섭 목사는 성경의 사실적 배경 연구를 위해 히브리어를 학습하였고, 예루살렘 대학과 히브리 대학에서 10여년에 걸쳐 이스라엘의 역사, 지리, 고고학, 히브리인의 문화, 고대 성읍과 도로를 연구한 학자이다. 그는 4X4 지프를 이용하여 성경의 생생한 현장을 연구하기도 했다. 문의 jooseoble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