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에 "천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사람을 제대로 알기가 쉽지 않다는 뜻입니다. 부부가 평생을 해로해도 상대를 온전히 알 수 없을 만큼 사람이란 그렇게 간단치 않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저에게도 지난 시간의 목회에서 무엇이 가장 어려웠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바로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이라고 얘기하고 싶습니다. 솔직히 목회적인 일이 힘 들다기 보다는 사실 사람이 힘들기 때문입니다. 일이야 쉽든 어렵든 꾹 참고 하면 그만이지만 사람은 잘못 얽히고 설키면 그 실타래를 푸는 것이 여간 쉽지 않습니다.

목회만이겠습니까? 인생 자체가 그 알 길 없는 사람들과 이리저리 뒤 섞여야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삶은 녹록하지 않고 간단치 않습니다. 결국 삶이란 사람과의 뒤엉킴이고 사람과의 씨름입니다. 어떤 의미에선 삶이란 사람을 알아가고 그 사람과 더불어 인생의 산을 올라가는 것과도 같습니다. 이왕 그렇게 산다는 것이 인생이라면 즐겁고 편하게 소풍가는 것 처럼 지내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않음입니다. 그렇게 살같이 가까이 지내다가도 어느순간 이해관계가 틀어지면 쳐다보지도 않아,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에 대해서 상처를 받기도 하고 체념을 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런 가운데서도 얼굴을 맞대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기에, 고통은 가중되기도 합니다. 또 이런 불편이 힘들다고 그 자리에서 당신은 아니라고 할 만큼 인생은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사람은 모두 다르 다!" 라는 이 상식적인 진리가 제 가슴을 파고 들기 시작했습니다. 적지 않은, 그것도 사람을 돌본다는 목양의 시간 동안, 제가 저지른 인생의 가장 큰 실수는 바로 사람을 잘 모르고 있다는 것과 그런데도 사람에 대해서 배우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부터 부단히 하루도 거르지 않으려 했던 것이 사람공부였습니다. 그것은 단지 그 사람의 혈액형이나 취향, 혹은 사람을 그저 몇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여 추측하는 것이 아닌, 그것은 '그 사람의 조건'에 대한 심취였습니다. 이것은 이후 저의 목회를, 아니 제 인생을 가장 크게 변화시킨 계기가 되었습니다. 혹자는 하나님에 대해서 가장 많이 공부해야 할 목사가 인간적 세속적으로 사람에 대해서 공부를 하냐고 하겠지만, 성경이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그 하나님이 그렇게 사랑하시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는 사실에는 더 이상의 핑계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사람공부와 관련해서 무슨 특정한 교과서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찾아가고 소개받고 심지어 지나가는 방문자들까지도 모든 사람들이 공부의 대상이었습니다. 또한 현재의 사람만이 아니라, 성경이나 역사 속에 나오는 인물들은 한결같이 중요한 힌트와 모티브가 되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한 사람 한 사람을 나름의 시각에서 관찰하고 느껴보게 되었습니다. 그가 처한 절박한 심정이 되어보기도 했고 그가 살았던 시대로 순간이동이라도 한 듯 빠져들어보기도 했습니다. 밤이 맞도록 고전과 철학책을 뒤척이면서 사람을 그리워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수믿는 신앙생활이야말로 가장 놀랍고도 풍부한 사람공부의 장이라는 사실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아니, 교회생활의 본질을 조금만 깨닫기만 해도 하나님이 예비하신 엄청난 축복을 받는 것이구나. 결국 신앙생활이란 하나님을 알고 사람을 아는 것이고, 복음도 결국 사람을 통해 사람에게 전파되는 것이고, 성경공부나 양육도 결국 사람이 사람에게 말씀을 전하는 것이고, 교회의 핵심인 선교도 결국 여기 사람이 그곳 사람을 만나 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인데. 교회생활 역시 함께 더불어 그렇게 사람들과 지내는 것인데.

더 경악할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이 그 사람을 동역자와 친구로, 아니 같이 당신의 감동을 나누고 위로 받으실 사랑의 대상으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이러니 사람을 공부한다는 것은 그저 개인적인 관심이나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면서 꼭 해야 할 가장 소중하고도 가치있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교회는 가장 탁월한 학교입니다. 저에게 있어 모든 목회와 양육, 선교는 사람에 대해 배우는 진지함과 자유함 그 자체입니다. 우리교회가 섬기는 모든 교회들과 선교지, 그리고 사람들은 숨겨진 배움의 보석들입니다.

가까이론 목장의 식구들과 교우들, 또 목회자들과 선교사님들, 우리지역과 미국 그리고 세계를 섬기면서 우리는 더 넓어지고 깊어집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의 특권이요, 축복입니다. 그저 끝도 이유도 모르는 인간관계에 얽히고 매여 시간을 낭비할 여유가 없음입니다. 이것은 체력낭비요 영력낭비요, 아쉬움과 미련일 뿐입니다. 공부한다는 것은 자기의 부족함을 인식하고 동시에 지난 시간 자기가 고집했던 가치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사람이 보이고 시대가 해석되기 시작합니다. 무릇 교회와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사명이요, 나아갈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