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복음서에 다양하게 기록되었다. 여기에서는 예수님께서 갈릴리 사역을 마치고 유대 종교지도자들에게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과정에 대해 소개한다.

유월절이 가까이 오자 예수님은 갈릴리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향하셨다. 2차 성전시대의 유대인들은 일 년에 세 차례 예루살렘 성전을 반드시 방문해야 할 의무까지는 없었다. 모세의 율법(출23:17, 30:23) 대로 일년에 세 차례 예루살렘으로 여행하는 것은 정말 위험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누가는 예수님의 어린시절, 요셉 가족이 유월절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을 해 마다 방문 했다고 기록한다: 그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을 당하면 예루살렘을 가더니(눅2:41). 아마도 이런 배경에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잘 알고 계셨고, 친숙한 분위기에서 마지막 유월절 때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이다: 선생님의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먹을 나의 객실이 어디 있느뇨 하시더라(막14:14, 눅22:7-13).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갈릴리와 예루살렘을 왕복하실 때 언제나 같은 길을 이용하지는 않으셨다. 사역 초기 예수님은 사마리아를 통행하여 갈릴리로 가신 적이 있다. 예루살렘에서 갈릴리로 향할 때, 사마리아를 통과하는 길은 중앙산지의 분수령을 따라 형성된 고대족장들의 길을 이용하는 것인데, 이 길은 가장 짧은 길로써 걸어서 3일 이면 예루살렘에서 갈릴리에 도착할 수 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사마리아 길을 이용하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사마리아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였기 때문이다(요4:9).

갈릴리와 예루살렘을 연결한 두 번째 길은 에브라임 산지와 샤론 평야 인접한 해변 길을 따라 안디바드리(아벡)까지 간 후에 안디바드리(아벡)에서 부터는 벧호론 길을 따라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이 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길을 이용 하셨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향할 때, 1세기 유대인들이 이용했던 가장 보편적인 길은 베뢰아와 여리고를 통과하는 길이다(마20:29, 막10:46, 눅19:1). 갈릴리를 떠난 순례자들은 이스르엘 평야의 동쪽에 위치한 스키토폴리스(Scythopolis-벧산) 가까운 곳에서 요단강을 동쪽으로 건넜다. 스키토폴리스(벧산)는 헤롯의 아들들에게 분배되지 않은 도시로 데가볼리의 수도였다. 스키토폴리스(벧산)는 정치적으로 사마리아나 갈릴리에 속하지 않았다. 누가복음에 이런 표현이 나타난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한 촌에 들어가시니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눅17:11-13). 스키토폴리스(벧산) 가까운 지점에서 요단강을 건넌 후에 베뢰아 지역인 요단강의 동쪽 길을 따라 남쪽으로 약80km를 통과하여 여리고 맞은 편에서 요단강을 서쪽으로 건넜다.

여리고 맞은 편에서 요단강을 건너면 구약시대의 여리고가 아닌 신약시대의 여리고를 지나게 된다. 신약시대의 여리고에 이르면, 하스모니안 시대와 헤롯 시대의 여리고 궁을 옆으로 지나게 된다.

▲아래사진은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를 통과하는 스키토폴리스(벧산)에서 바라 본 이스르엘 평야의 전경이다.
그러면, 이 곳에서부터 예루살렘까지는 하루 만에 부지런히 유대광야를 통과해야 한다. 예수님은 신약시대의 여리고에 이르러 삭개오를 만나셨다. 그리고 여리고를 떠나시면서 ‘귀인이 먼 나라로 왕위를 받으러 갔다가 돌아온 비유’를 말씀하셨다(눅19:12). 여리고를 지나면서 하신 예수님의 귀인 비유의 말씀은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헤롯 아켈라오스를 기억하게 했을 것이다. 헤롯 아켈라오스는 부친 헤롯이 사망하자 로마황제 가이사아구스도(Caesar Augustus)로부터 왕위를 받기 위해 먼 나라인 로마로 떠났다. 왕위를 원했던 아켈라오스와 그러나 그가 왕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긴장 관계 속에서 예수님은 삭개오를 만나신 후에 사람들에게 ‘충성 되고 준비된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란 귀인 비유의 말씀을 하신 것이다.

유대 광야를 하루 꼬박 부지런히 걸으면, 예루살렘 동편산인 감람산에 이를 수 있다. 감람산에 이르면 비로소 베다니 마을에 도착할 수 있다(느11:32). 베다니 마을을 떠나, 벧바게(눅19:29)를 지나면, 이제 예루살렘 여행은 끝난다. 벧바게는 베다니와 예루살렘 중간에 있다. 벧바게란 이름은 ‘무화과의 집’이란 뜻이다. 벧바게란 이름은 이 근처에서 무화과를 많이 재배했기 때문이며(마11:20), 감람산(슥14;4) 역시 감람나무가 많았던 것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절기를 위하여 예루살렘을 방문하셨을 때에 예수님은 주로 베다니 마을에 머무셨다(마21:17, 막11:11). 이곳은 나사로, 마리아 마르다의 마을이다(눅10:38, 요11:1).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채 2마일 되지 않는 곳에 있다(요11:18). 성전을 쉽게 오갈 수 있는 거리에 있던 베다니 마을은 순례자들의 숙소로도 자주 이용되었다.

유월절 기간에 예수님은 베다니와 성전을 오고 가시며, 매일 성전에서 백성들을 가르치셨다(눅19:47)(1). 성전은 예수님의 어릴 적 배움의 장소였으며(눅2:48, 49), 또 헤롯 성전 둘레에 큰 기둥들이 세워진 회당 역시 학습의 장으로 이용 되었다(행5:12)(2). 성전의 학습 장소는 성전의 남쪽에서 성전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훌다 문(Hudah gate) 앞의 넓은 계단도 이용되었다. 미쉬나에 성전에서 율법을 배우는 세 장소를 기록하고 있다. 성전 문에 있는 장소, 성전 뜰 입구에 있는 장소, 세 번째는 성전 안의 방(Chamber of Hewn Stone)에서 백성들은 율법을 배웠다. 고고학자인 벤자민 마자르(B. Mazar)교수는 첫 번째로 언급한 성전 입구에서 율법을 배웠던 장소를 훌다 문 앞의 넓은 계단으로 이해한다.

▲사진은 훌라 문을 통해 성전으로 들어가는 입구로 현재는 돌로 막혀 있다.
성전에서 예수님은 사두개인들의 묵인하에 행해졌던 성전매매행위를 강하게 책망하셨다(눅19:45, 46) (3). 사두개인들은 성전에서 뇌물을 받고 장사를 허용하였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청결케 하신 장소는 성전 뜰이 틀림없다: 아무나 기구를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막11:16). 미쉬나에 따르면, 성전으로 들어갈 때 사람들이 지팡이나 신발, 지갑을 지참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규칙은 잘 지켜지지 않았다. 성전을 매매하는 장소로 이용 했던 사두개인들의 종교적 부패는 예수님을 크게 분노하시게 했지만, 당시는 일반적이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한 가지가 있다. 사회와 제도가 용납 한다고 죄가 ‘죄 아닌 것(선)’이 되는 것은 아니다.

최근 고고학 발굴을 통하여 성전의 남쪽과 남서쪽 상점, 그리고 성전 뜰의 남쪽 왕실 회랑(Royal Portico)에서 매매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사도행전의 기록을 통해, 성전산 남쪽 상점 근처에서 정결의식과 함께 매매행위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저희를 데리고 함께 결례를 행하고 저희를 위하여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대에게 들은 것이 헛된 것이고 그대로 율법을 지켜 행하는 줄로 알 것이라(행21:24). 바울이 이 사람을 데리고 이튿날 저희와 함께 결례를 행하고 성전에 들어가서 각 사람을 위하여 제사 드릴 때 까지의 결례의 만기된 것을 고하니라(행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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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두목들이 그를 죽이려고 꾀하되
(2)사도들의 손으로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 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3)성전에 들어가사 장사하는 자들을 내어 쫓으시며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한 바 내 집은 기도 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 하시니라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두목들이 그를 죽이려고 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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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섭 목사(멤피스장로교회)는 성경의 사실적 배경 연구를 위해 히브리어를 학습하였고, 예루살렘 대학과 히브리 대학에서 10여년에 걸쳐 이스라엘의 역사, 지리, 고고학, 히브리인의 문화, 고대 성읍과 도로를 연구한 학자이다. 그는 4X4 지프를 이용하여 성경의 생생한 현장을 연구하기도 했다. 문의 jooseoble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