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 사람-언약 관계

창세기 1장과 2 장에는 “언약”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하나님과 아담 사이에 언약이 있었다고 하는 것을 암시해 주는 말씀은 호세아서에 나온다. 에브라임과 유다가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키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며 사는 것을 책망하면서, 그들의 악행에 대하여 “저희는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서 내게 패역을 행하였다”(호세아 6장 7절)라고 말씀한 것이다.

물론 “아담처럼”에 대한 해석을 있는 그대로 아담과의 언약에 대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아담처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를 일반적인 의미에서 “사람처럼”으로 해석하던가, “처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케”를 “베”로 바꾸어서 “베아담이라는 곳에서 언약을 어기고”라고 해석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전통적인 해석은 있는 그대로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로 읽는 것이다.

전통적 해석을 따르면 창세기 2장에 나오는 하나님의 명령, 곧,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16절, 17절) 라고 하신 것은 단순히 하나의 명령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는 뜻이 된다.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언약의 주체로서 일방적으로 피조물인 아담을 언약의 대상으로 삼아,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언약의 관계로 규정하신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은 은혜를 베푸신 존재로서 명령자의 위치에서, 지음을 받은 사람인 아담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존재로서 명령을 수행하여야 하는 자의 위치에서 각각 언약 관계 속에 들어 간것이다. 이 관계를 잘 이해하여야 창세기 3장 이후에 나오는 타락의 의미,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하나님의 저주, 인간이 구원을 받아야만 하는 이유를 잘 파악 할 수 있다.

“언약”이라는 말은 “자르다”라고 하는 말에서 파생되었다고 한다. 성경에 최초로 이 말이 나오는 것은 창세기 6장 18절이다. 하나님께서 노아의 가족과 하나님이 정하신 암, 수 모든 동물들을 데리고 방주로 들어 가면 그 생명을 보존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다. 그러나, 이 언약의 개념을 그림처럼 보여주는 장면은 창세기 15 장 10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세우실 때, 아브라함이 짐승들을 잡아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던 모습 속에서 볼 수 있다. 제물로 취한 삼 년 된 암소, 삼 년 된 암염소, 삼 년 된 숫양의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이 쪼개는 행위가 “언약”이라는 말의 어원인 “자르다”를 연상하게 해 준다. 새들을 쪼개지 않은 것은 물론 소나 양에 비하면 작은 희생 제물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스라엘을 포함하는 고대 중동에서 언약을 세울 때 이렇게 짐승을 쪼개거나 각을 뜬 것은 언약 당사자들의 책임에 대한 의식을 분명히 하기 위한 의도였다. 이런 의식은 언약을 맺고, 그것을 지킨다고 하는 것이 생명을 담보로 할 만큼 중요한 것이므로, 언약 당사자들 중 어느 쪽이든 그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약속을 위반한 쪽의 생명을 취하여 마치 희생 짐승들을 가르듯이 각을 떠서 언약을 불이행한 책임을 묻겠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었다. 하나님 앞에서 약속을 지킨다고 하는 것, 그 말씀대로 산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쉽게 미루어 짐작 할 수 있다.

하나님과 아담 사이에서도 이 언약은 신성한 것으로서, 불이행시 생명을 담보로 하여 책임을 져야하는 준엄한 것이었다. 아담의 삶과 죽음이 언약 기준으로 주신 하나님의 명령의 말씀을 순종하느냐, 불순종하느냐?에 달여 있었다. 이런 특성 때문에 아담과의 언약을 일반적으로 “행위 언약”이라고 부른다. 아담의 경우, 순종하면 육체적인 죽음을 통과하지 않고 영생에 이르게 되지만, 불순종하면 죽게 되는 것이었다. 순종하면 생명과를 포함하는 동산의 모든 실과를 양식으로 삼아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이 축복하신대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할 뿐만아니라, 하나님의 대행자로서 땅을정복하고 만물을 다스리면서 영원히 살게 되어있었지만, 불순종하면 망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아담이 후자를 선택하므로 모든 인류를 죽음의 도가니로 들어가게 만들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담을 향한 은혜 베푸시는 것을 중단하시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은 죽을 수 밖에 없게 되었을 때, 이 죽음의 성격을 육체의 생명으로 한정하심으로 아담과 그의 자손들이 영원히 살 수 있는 은총의 길을 열어 두신 것이다. 사람이 육체를 가지고서는 영원히 살 수 없도록 하심으로,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언약을 파기한 책임을 묻고 계시지만, 그렇다고 하여 모든 사람들을 절망 속에 가두어 두신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범죄한 아담에게 구세주로 오실 여인의 후손을 약속하시고, 가죽 옷을 입혀 아담과 이브를 에덴 동산에서 내 보내심으로 또 다른 영생의 길을 열어 놓으셨다. 아담 이후 모든 사람들은 여인의 후손으로 올 구세주를 믿기만 하면, 아담으로 인하여 파기된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회복하고, 영생에 들어 갈 수 있도록 하신 것이다.

구약에서는 하나님께서 보내 주실 구세주에 대한 약속을 “새 언약”이라고 불렀다. 신학적으로는 이 “새 언약”을 “은혜 언약”이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순종, 불순종이라는 행위에 근거하여 영생에 들어 간다는 약속이 아니라, 오실 구세주, 이미 오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불신앙이라는 믿음에 근거하여 영생에 들어 간다는 약속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은 누구나 하나님께서 여인의 후손으로 보내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가 새롭게 회복되고 영생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신약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믿음으로 받는 하나님의 선물,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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