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앞 큰 길가에 걸어 둔 미국 국기와 태극기를 반기로 내렸습니다. 대통령의 특별 지시로 지난 한 주간 동안 반기를 걸게 되었습니다. 아리조나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 사건의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연방 상하원 의원이나 대법원 판사 등 국가의 지도자가 별세할 때 대통령령으로 반기를 거는 전통이 있습니다. 그 외에도 국가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 사건이 있으면 대통령이 반기 게양을 명령할 수 있습니다.

911 테러 사건의 10주년이 되는 해에 벌어진 아리조나 참변은 미국 사회 전체에 큰 충격이 되었습니다. 희생자 중에는 911 사건 당일에 태어난 9살 짜리 소녀도 있었습니다. 911 충격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던 당시 미국 사회에서 희망의 얼굴이라는 주제로 테러 당일에 태어난 어린 아이들을 선택할 때 뽑혔던 소녀였습니다. 연방지법 판사가 희생되었고 존경 받던 아리조나 출신 하원의원인 가브리엘 기포즈 의원이 아직도 중태에 빠져 있습니다. “코너에서 열리는 의회”라는 이름으로 지역 주민들과 대화를 나누는 행사에서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과거에 있었던 대형 총기 사건과 달리 이번 사건은 정파 정치적인 파장을 만들었습니다. 체포된 용의자를 심문하고 그 수사 결과가 나와 봐야 동기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건이 터지자마자 이 사건은 엄청난 정치적인 분쟁을 만들어 냈습니다.

미국은 클린턴 대통령 때부터 극단적인 당파 정치에 휘둘리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의 꿈, 비전, 새로운 시대가 요구하는 미국의 과제 등 이상과 이념은 사라지고 공화 민주 양당 간에 당파적인 다툼과 대립이 심해지고 있었습니다. 클린턴 대통령의 스캔들에 따른 탄핵 시도를 계기로 극에 달했는가 했지만 부시 대통령이 간발의 차이를 만든 플로리다 선거 결과를 두고 대법원까지 가는 초유의 사태를 통해서 당선이 확정될 때 정파 사이의 다툼과 대립은 더 격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거의 만장일치로 결정한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침공을 두고도 미국의 장기적인 이익이나 미국의 도덕적인 책무 등의 주제보다는 당리당략에 따라 흘러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지난 12일 추모 행사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감동스러운 연설을 했습니다. 이 연설을 두고도 정파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슬픔을 위로하고, 충격을 가라앉히면서 “상처를 내기보다 치료하는 일”을 위해서 새롭게 헌신하기를 도전하는 메시지는 미국 전체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슬픔에 찬 무거운 행사는 오히려 환호와 갈채 속에 새로운 용기와 희망을 부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한 개인의 인생에서도, 국가 공동체의 삶에서도 피치 못할 위기를 당하면 고통과 슬픔과 원망이 터지게 됩니다. 그러나 위대한 인생, 위대한 나라는 위기를 극복할 뿐 아니라 위기를 통해서 새로운 갱신을 맛봅니다. 위기를 통해서 정체성을 다시 확인합니다. 위기를 통해서 잊고 있던 더욱 소중한 가치를 다시 찾아봅니다. 특히 사람의 생명이 희생되는 사건을 통해서 고민하고 성찰하여 확인하는 정체성과 가치관은 목숨처럼 소중하고 귀한 것을 가져다 줍니다. 위기와 참사는 어떻게 해서든지 피하고 막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닥친 위기 속에서 원망, 저주, 증오가 싹트는 대신에 자신의 건강한 정체성을 찾고 더욱 매진해야 할 가치관을 찾는다면 위기를 축복으로 바꾸게 됩니다. 이를 위해서 리더십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의 말의 흐름을 보듬는 언론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우리 개인의 삶에서도, 한국이나 미국의 국가적인 현실 가운데 위기와 참사를 축복으로 바꾸어 고귀한 정체성과 소중한 가치관을 회복하는 기회로 삼기를 기원합니다.

2011.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