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는 기드온이 3백명의 용사를 데리고 13만5천명의 미디안을 격파한 사건이 기록돼 있다. 하나님은 기드온의 어떤 모습을 귀하게 보시고 그를 자신의 도구로 사용하셨을까? 180명 병사로 2천명 적군을 무찌른 김기홍 장로가 1월 6일부터 9일까지 시카고한인교회에서 열린 부흥회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 줬다.

4일동안 총 7번의 집회를 인도한 김 장로는 태어날 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삶 가운데 있었던 기적과 같은 순간들을 은혜로운 간증과 웃음, 찬양에 섞어 성도들에게 전했다. 그는 13세 때 예수를 영접한 후 해군사관학교에 입교해 해병으로 월남전에 참전했다. 그곳에서 180명으로 2천명을 무찌른 짜빈동 작전을 직접 지휘해 중대원 전원이 일계급 특진하는 영예도 얻고 이후 충무무공훈장, 월남 엽성 무공훈장, 인헌 무공훈장, 대통령 표창, 보국훈장 삼일장, 천수장까지 받았다. 삼척, 울진 침투 무장공비 소탕 작전에서 맹활약했고 해병대 부사령관으로서 해병대 사령부 재건에 앞장섰다. 2성 장군으로 전역한 후에는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에 입학해 공부한 후, 목원대 교수, 국방부군사정책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진짜 그의 사역은 전역한 1993년 이후 현재까지 1천3백개가 넘는 교회에서 3천5백회가 넘는 간증집회를 인도한 사역이다. 그는 “우리는 므낫세 중에도 가장 작은 집안이고, 저는 그 집안에서도 가장 작은 자”라고 고백한 기드온처럼 “아무 것도 아닌 저를 하나님이 사용하시니 해병대 부사령관에 2성 장군, 대학 교수까지 됐다”고 간증했다. 그는 장군 출신답지 않은 유머와 소탈함으로 성도들을 은혜로 이끌어 갔다. 섬에서 출산을 앞둔 산모를 한밤중에 마중나가 강화까지 이송한 일, 그 산모의 아들의 이름을 박해병으로 지어 준 일, 연대장이 되어 지역 주민들을 위해 권위를 버리고 겸손히 나아간 일, 그것이 대통령에게 알려져 칭찬받은 일, 장군이 되고도 매일 새벽기도를 드린 후 새벽 6시에 출근한 일 등 그의 일화들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 겸손한 자를 하나님이 귀하게 사용하시는 증거 그 자체였다.

“다들 장군이 되기 어렵다고 하고 제가 마치 대단한 사람인 줄 아는데 저는 배꼽 내놓고 시골을 뛰어 다니던 촌놈이었습니다. 그런 촌놈도 하나님이 쓰시면 장군이 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승승장구하던 그에게도 인생의 갈림길이 왔다. 2성 장군에서 3성 장군으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전역할 것인가였다. 그는 기드온이 하나님께 증거를 간구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뜻을 구했다. 기도 끝에 그는 하나님이 “네가 별을 세개 달고 해병대 사령관까지 되고 나면 나중에는 국방부 장관까지 시켜 달라고 할 거냐”라는 질문을 하시는 것을 느끼고는 전역을 결심했다. 그때 이미 장로였던 그는 하나님에 관해 더 알아야겠다고 결심하고 신학교 문을 두드렸다. “김기홍이가 장군 욕은 다 먹이고 다닌다”, “딸 또래의 학생들과 이제 와서 공부라니 이게 뭐냐”는 비아냥 거림을 들으면서도 그는 이를 악물고 공부해 현재 교수까지 돼 매학기 약 7백명에 해당하는 학생들에게 북한사회에 관한 강의를 하고 있다. 그리고 학기 중에는 국내, 방학 중에는 해외로 간증집회를 다니며 현재까지 3천5백회가 넘는 집회를 인도했다. 그의 사역은 실로 경이로와 미국의 경우 50개 주 가운데 노스다코타, 벌몬트 등 5개 주를 제외하고는 집회를 인도하지 않은 주가 없을 정도다. 한인이 거의 살지 않은 주를 방문했을 때에도 며칠의 집회 기간동안 12명 가량의 성도들과 뜨겁게 말씀을 나누는 열정을 과시했다.

집회를 마친 후 서창권 담임목사는 “김기홍 장로님은 하나님이 특별히 쓰시는 귀한 종으로 우리 삶에 모범과 귀감이 되신다”며 “겸손과 섬김으로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는 것을 직접 보고 들으면서 성도들의 신앙에 큰 도전이 됐다”고 밝혔다. 시카고한인교회 선교부장 김윤식 장로도 “4일간의 집회 동안 많은 은혜를 받았다”면서 “믿음의 사람들이 누리는 은혜와 축복에 관해 소중한 유산들을 나누어 주셔서 감사하다”고 증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