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년도 이스라엘을 방문 할 때의 일이다. 프랑크 푸릇에서 삼엄한 수속 절차를 마치고 이스라엘 비행기를 탑승. 텔아비브 국제공항에 착륙하려 할 때 창밖으로 내다보는 순간 신기하기도 하지만 아찔한 장면을 보며 놀랬다. 한국 같으면 외국인들에게 잘 보이려고 주변 환경을 깨끗이 정리 할 텐데 이스라엘은 그렇지 않았다. 6일 전쟁 때 폭격 받아 부셔진 그대로 비행장 주변에 비행기들을 방치해둬 여행자들의 마음이 섬뜩했었다. 까다로운 수속 절차가 한순간 이해가 된 것은 강대국들에 둘려 쌓여 지금도 침략을 받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였다. 최근 한국에는 연평도 북한 도발 사건으로 나라가 뒤숭숭해졌다. 연평도의 민가가 포탄에 잿더미가 되고 해병대도 습격을 받아 사상자가 일어나는 사태까지 발생한 것이다.

지난 정권 때 잃어버린 10년이 비통함을 느꼈다. 군인들과 청소년, 학생들에겐 주적 개념이 사라져 버렸고 군인 정신도 빠져 버렸고 군복무기간만 단축하자고 떠들어 됐으니 국방이 말이 아니였다. 대한민국은 적이 없어졌으며 평화만 있으리라는 환상 속에서 꿈을 꾸고 있었다. 북한은 핵무기를 만드는 동안 남한은 딸라만 퍼 주었다. 북의 핵무기가 대한민국을 지켜 주리라는 착각 속에서 살았다. 이번 연평도 사건은 대한민국을 정신 차리게 한 것이다.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건은 나라의 망신이였다. 이때 우리는 이스라엘의 6일 전쟁을 배웠어야 한다. 왜 우리는 적을 초토화하질 못했을까.

저희 일행은 관광버스에 몸을 담고 이스라엘의 구석구석을 누비면서 크게 느낀 바가 있었다. 삭막한 땅. 모래와 자갈로 덮혀 있는 불모지의 땅, 풀 한포기를 구경하기가 힘든 땅, 그런 곳을 누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했을까? 누가 황무지에 장미꽃을 피게 할 수 있을까? 난 이곳에서 배운 것 중에 2가지만 기억 해 본다.

첫째는 나라 없이 2000년 역사를 지내오면서도 저들은 굴하지 않고 옛 고토를 찾아 세계 일등국가가 될 수 있었던 잠재력은 바로 예수님의 은혜라는 것이다. 황막한 사막 벌판에 세계 곳곳에서 딸라를 들고 이 땅에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보며 이것은 예수님 은덕이로구나 하는 사실을 쉽게 이해 할 수 있었다. 관광객들은 예수님의 발자취를 밟고자 찾아 온 것이다. 특별히 볼만한 관광지나 예술품이 있는 곳도 아니였다. 그저 하나님의 아들이 수많은 천체 중에 하필이면 지구란 별을 택하여 그 중에서도 이스라엘 땅에 걸으신 발자취를 더듬기 위해서 세계각지에서 몰려든 것이다.

둘째는 여행 중 금요일 밤을 예루살렘에서 지냈다. 해가 떨어져 어두울 때 좁은 골목길을 걷다가 놀란 것은 집집마다 촛불이 켜져 있었고 성경 읽는 소리가 들렸다. 예루살렘에 신교 기독인이라야 얼마 되질 않는다고 하는데. 그런데 이스라엘인들은 금요일 밤부터 안식일을 지키는 것 이였다. 그때 알게 된 것은 우리의 하루의 개념과 이스라엘의 하루의 개념이 달랐다. 우리는 하루의 계산을 동녘에 태양이 떠오를 때부터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하루의 개념이 해가 질 때부터이다. 여기서 알게 된 것은 이스라엘의 정신력이 바로 여기서 나는구나 하는 것이다. 저들은 어둠을 먼저 경험한다. 긴긴 겨울밤 어둠속에서 추워 벌벌 떨 때도 있다. 그러나 저들은 낙심하질 않는다. 이 어둠과 추위가 지나가면 동녘에 태양이 떠오르는 새날이 있다는 것을 확신한다. 어떤 역경도 이겨 나갈 힘을 기른다.

독일 나치시대 수많은 유태인들이 학살당했지만 저들이 살아남은 것은 바로 하루의 개념의 철학 이였다. 어떤 고난도 역경도 견디어 낸 민족이다. 역사적으로 주위에 강대국으로부터 수많은 침략, 포로생활을 격었지만 내일 아침 동녘에선 반드시 태양이 떠오른다는 희망을 포기하질 않았다. 그것이 오늘의 이스라엘을 축복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우린 희망을 포기하지 말자. 오늘의 어두운 밤이 지나면 반드시 동녘에 태양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