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 대한 소망으로 이 땅의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행복을 일궈나가는 목회를 하고 싶습니다. 여호수아서 말씀에 ‘밟는 대로 준다’고 하셨듯이 이미 허락하신 땅이라도 직접 ‘밟아야만’ 우리 것이 됩니다. 미국에 사는 한인들이 정치, 경제, 문화는 물론 신앙에서도 도전하고 그 영역을 밟을 때 ‘우리 것’으로 주실 겁니다. 먼저는 초자연적이고, 초이성적인 하나님의 구원 능력을 체험하고, 참 안식처와 같은 교회가 되고, 나아가 한인사회와 미국사회의 교량역할을 감당하고 싶습니다.”

25년 전 청운의 꿈을 안고 건너온 미국, 오십이 넘어 목회자로 서다

둘루스로 성전을 옮긴 뉴비전교회 전영철 목사를 만났다. 일반대학을 나와 안정적인 전문직에 종사하다 미국 유학을 떠나온 25년 전의 젊은 청년은 이제 오십을 훌쩍 넘긴 나이에 목회자로 서 있다. 생계를 위해 학문의 꿈을 잠시 접고 ‘이민생활’로 뛰어든 당시만 해도 금방 원래 목적대로 갈 줄 알았다. 이민자의 삶이 그렇듯 밤 청소, 공장일, 세탁소 등에서 일하다 작은 비즈니스를 열었고, 두 아이도 미국에서 낳아 기르다 보니 세월은 쏜 살 같이 지나갔다. 힘겨운 이민 생활이었지만, 영생복락을 약속하신 천국에 대한 소망은 그를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됐고, 근 20년간 한 교회를 섬기며 서리집사, 안수집사, 장로까지 임직 받아 열심으로 일했다.

“비즈니스가 몇 년 지나 자리잡으면 원래 하던 공부를 하려고 했는데 그 마음은 약해지고, 하나님을 더욱 섬기고 싶은 열망이 커졌어요. 이민생활을 해보니 참 힘들더라고요. 10~12시간 일하면서도 풍족하지 않고, 시간에 쫓기고 가정적으로 어려운데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면 소망이 없어요. 주님께서 이 땅에 ‘은혜의 해를 전파하러 오신’ 그 사실을 나누고 싶어 목회자가 되기로 결심하게 됐죠.”

뒤 늦게 신학교에 입학하기 까지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하나님께 더 자신을 드리고 싶은 그 열망은 쉽게 사그러들지 않았다. 경제적인 것과 영어문제가 걸렸고, 소명에 대한 확신을 확인하기 까지 5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아내는 묵묵하게 남편의 가슴 속 소명을 함께 품고 기다려줬고, 목회의 길을 결심하자 적극적으로 지원해줬다. 오래 전에 덮었던 영어책을 다시 꺼내 토플을 위해 주경야독 한 끝에 디케이터 소재 콜롬버스신학대학원 목회학 석사 과정에 ‘최고령 학생’으로 입학해 목회학 석사(M.Div)를 마친 전영철 목사는, 이후 프린스톤신학대에서 신학석사(Th.M)과정까지 마쳤다.

“미국 신학교는 한국과 달리 저처럼 일반 대학을 나와 사회생활을 하다 뒤늦게 소명을 확인하고 오는 학생들이 많아요. 그 중에서도 공부하는 4년 동안 제가 나이가 제일 많았죠(웃음). 콜롬비아신학대학원 소속 교단인 미국장로교(PCUSA)에서 저 같은 학생들을 위한 장학제도가 잘 돼있어, 감사하게 4년간 장학금을 받았어요. 특별히 프린스톤신학대로 떠나기 전 섬기던 베다니장로교회에서 특별헌금을 통해 학비 전액을 지원해주셨어요.”

평신도 사역 경험 ‘플러스’ 목회자의 비전

▲둘루스로 새롭게 이전한 새성전 모습. 아직은 손 봐야 할 곳이 많지만, 자체성전을 통해 새로운 비전을 나누고자 하는 불신자들이 많이 찾아오면 좋겠다는 소망을 담고 있다.
2006년 신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단독목회를 시작한 전영철 목사는 오랫동안 평신도로 섬겨 온 경험과 담임 목사로 비전을 갖고 이끌어 가야 하는 역할에 균형을 맞춰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목회자로 ‘교회성장’에 대한 비전과 열정이 있지만, 평신도 입장에서 특별히 이민교회 성도들이 원하는 돌봄과 양육에 대한 기대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는 ‘심방’을 많이 하는 목사다.

교회가 커밍에 있었던 때부터 성도들이 땀 흘리며 일궈가는 일터와 가정을 구석 구석 부지런히 다녔다. 일 년에 한 두 차례 연례 행사가 아니라 시간이 될 때마다 삶의 현장을 돌아보는 목자의 사랑에 쉽게 마음을 열지 않던 성도들도 차차 속 깊은 고민과 갈등, 이민생활의 어려움과 가정의 문제, 자녀의 진로 등을 나누고 함께 기도하면서 ‘끈끈한’ 사랑의 관계로 발전하고 있다.

“교회 예배 시간에만 나오거나, 어쩌다 한번 나오는 분들까지 챙겨서 자주 심방을 다니다 보면 대화가 깊어져요. 비슷한 경험을 해봤기 때문에 그분들의 어려움과 아픔에 공감이 가죠. 제가 평신도 일 때 그랬듯이, ‘교회가 어떻게 해주면 좋을까’라는 성도들의 기대를 수렴해 가면서 목사인 저에게 주신 비전을 나누는 ‘평신도와 목회자의 협력’이 뉴비전교회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한인교회 자칫 영적 ‘게토’될 수 있어…
2세 크리스천 교육의 전당으로


뉴비전교회의 교회의 다섯 가지 사역 비전은 첫째, 초자연적이고 초이성적인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체험, 둘째, 이민자들의 참된 안식처, 셋째, 한인 2세 크리스천 교육의 전당, 넷째, 한인사회와 미국 주류사회의 교량역할, 다섯째, 전도와 선교와 구제 사역이다. 그 중에서도 ‘한인사회와 미국 주류사회의 교량역할’에 대해 전영철 목사는 할말이 많았다.

신학생 시절 동료들 가운데 몇몇은 ‘한인들은 자기들끼리 잘 사는 데만 관심이 있다’고 잘라 말하는 것을 들어 온 그는 한인사회뿐 아니라 한인교회가 자칫 ‘우리끼리’에 갇혀 고립되는 ‘영적 게토’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인교회가 아무리 큰 규모를 자랑해도, 지역사회와 미국에 아무런 기여가 없으면 외면당한다는 것이다.

“한인교회가 우선적으로 이민자들을 돌봐야겠지만, 미국에 세워진 이상 미국사회와 연결돼 작은 것부터라도 나누고 베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국 사람들은 정확해요. 주는 만큼 받고, 받는 만큼 돌려 주죠. LA 폭동의 원인이 됐던 로드니 킹 사건이 재발되지 않으려면, 교회부터 나서서 지역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뉴비전교회에서는 역량 있는 2세를 영적으로 훈련하고 실력을 갖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계획하고 있다. 1세 이민자들 역시 작은 것부터 섬기지만, 동시에 이들이 닦아 놓은 기반을 바탕으로 더 큰 가능성을 가진 2세들에게 먼저는 ‘신앙’을 그리고 ‘실력’을 구비해주는 것이다. 이제 막 둘루스 지역으로 이전한 개척교회인 만큼 아직은 계획 중이지만 SAT 학습을 교회에서 지원하거나, 미국 사회에서 당당하게 성공한 인물들을 초청해 세미나를 열기도 하고, 학업에 뜻이 없다면 은사를 발굴해 개발할 수 있도록 구상 중이라고 했다. 누구보다 미국에서 나고 자란 전영철 목사의 자녀들이 이 일을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라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고 갈릴리 회당에서 전하신 말씀처럼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는 것이 뉴비전교회의 비전이다. 예수님의 삶이 그러하셨듯이 겨자씨처럼 작지만 자라나서 큰 나무가 되면 새들이 날아와 쉼을 얻고 세상에서 힘 있게 살도록 하는 교회가 되고 싶다고 전영철 목사는 덧붙였다.

“저에게 주셨던 뉴 비전이 바로 ‘이 땅에서의 삶을 넘어서 그리스도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는 것’입니다. ‘설교’에 최선을 다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 입니다. 아무리 심방을 잘해도 하나님 말씀이 없으면 먹을 것 없는 잔칫상이 돼버립니다. 이민자들이 이 땅에서 행복하게 사는 비결이 바로 예수님 믿는 길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아직도 예수님을 모르는 많은 이들에게 전하는 뉴비전교회가 될 것입니다.”
▲뉴비전교회 앞에서 전영철 담임목사.


뉴비전교회는 4579 Abbotts Bridge Road Duluth GA 30097에 위치하고 있으며, 매 주일 오전 9시와 11시에 한어권 예배를, 오전 11시에 영어권 예배를 각각 드린다. 매월 마지막 주 오후8시에는 금요찬양 기도회를, 월요일부터 토요일 오전 6시에는 새벽기도회로 모이며, 2011년 1월부터는 수요일 오후 8시에 수요예배를 드릴 예정이다. 문의 (678) 200-5048, (678) 200-50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