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몇 차례에 걸쳐 예배의 성서적 관점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예배의 성서적/신학적 기초를 다루는 데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교훈을 중심으로 먼저 예배의 성서적 기초를 생각해 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마태복음 22:34-40의 말씀을 보면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나온다.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관한 말씀이다. 예수님께서는 십계명을 이 두 가지로 축약해 주셨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곧 이웃을 사랑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도전의 말씀이다. 예수님은 이것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곧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성경의 핵심이라는 강조이다. 우리의 이웃은 크게 두 부류로 생각할 수 있는데, ‘믿는 사람들’과 ‘믿지 않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세 가지 기본적인 관계성을 보게 된다. 첫째는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둘째는 믿는 성도들과의 관계이다. 그리고 셋째는 믿지 않는 불신자들과의 관계이다. 이러한 세 가지의 관계성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모두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그 관계성에는 ‘우선순위’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우선적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우선되지 않는 성도들과의 관계는 사실상 의미를 상실하게 되며, 불신자들과의 관계 역시 세상 사람들이 갖는 인간 관계와 별 다를 바가 없게 된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사람에게 성도들과의 관계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안에서 한 가족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룬 사람에게 불신자들과의 관계 역시 소중하다. 왜냐하면 비록 그들이 예수님을 아직 믿지 않고 있지만, 그들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주님께로 돌아와야 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구속의 은혜를 베푸신 것은 믿지 않는 영혼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임을 기억한다면, 불신자들과의 관계성을 잘 이루어는 것이 간과될 수 없음을 인정하게 된다. 다만 그 관계성의 기초에는 영혼 구원을 통해 그들도 우리처럼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여 예배자가 되도록 하는 것에 있음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기본적으로 지니게 되는 세 가지 기본 관계성을 기초로 해서 교회의 가장 핵심적이고 기본적인 세 가지 사역을 생각해 볼 수가 있다. 첫째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기초로 하는 하나님을 향한 사역이다. 둘째는 성도들을 향한 사역이고, 셋째는 불신자들을 향한 사역이다. 하나님을 향한 사역을 우리는 ‘예배’라고 부른다. 성도들을 향한 사역을 우리는 ‘교제/양육/훈련’ 등으로 부른다. 그리고 불신자들을 향한 사역을 우리는 ‘선교/전도’ 등으로 표현한다.

세 가지 기본 관계성을 토대로 세워진 세 가지 핵심 사역에도 역시 우선순위의 개념을 두어야 할 것이다. 다만 우선순위의 개념을 무엇이 가장 중요하고,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무엇이고 등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모두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선순위를 세워야 하는 이유는 먼저 성립되는 관계와 사역을 통해 그 다음의 관계와 사역에 의미가 부여되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질문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 세 가지 사역 중에서 가장 중요한 사역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저마다의 견해에 따라 의견이 분분하리라 생각한다. John Piper 목사는 “열방을 향해 가라(Let the Nations Be Glad!)”라는 책에서 “우리 사역의 최종적인 목표는 ‘전도’가 아니다. 그것은 ‘예배’이다.”라고 강조했다. 필자는 이 의견에 적극 동의한다. 왜냐하면 전도는 이 땅에서만 필요한 사역이지만, 예배는 이 땅에서도 천국에서도 영원히 이루어지는 사역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칼럼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기로 하겠다.

(다음 칼럼에서도 계속해서 예배의 성서적 관점을 다루면서 예배의 성서적/신학적 기초에 대한 내용을 통해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기로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