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는 일제 식민치하에서 치욕적인 과오를 범한 사실이 있다. 1938년 9월 9일 조선예수교장로회 제27회 총회에서 ‘신사참배’ 결의를 한 것이다. 이것은 한국교회에 암흑의 날이었고, 하나님에 대한 배교의 순간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한국교회 모두가 이에 굴복한 것은 아니다. 이 문제로 인하여, 생사를 걸고 신앙의 투쟁을 했던 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기철 목사는 신사참배를 끝까지 반대하다가 순교를 당하였고, 해방으로 인하여 50여 명은 살아 있는 순교자가 되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일제가 신사참배를 강요한 것은 우리민족 전체에 대한 핍박이고, 민족정신을 말살하려는 악한 계교였으며, 기독교 신앙인들에게는 유일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을 포기하도록 하여, 결국 하나님께 버림받도록 하려는 사탄적인 계략이었다.
그 분들의 눈물겨운 고난의 좁은 길이, 신앙의 후손들인 우리로 하여금 오늘날 정통적 신앙의 길을 걷도록 한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므로 이 분들의 숭고한 신앙사수는 한국교회의 유산이며 큰 자랑이 되는 것이다. 터툴리아누스의 말대로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 이 되었다.
일제의 총칼에 의한 신사참배 강요와 그 굴복의 결과는 한국사회와 특별히 한국교회의 씻을 수 없는 오점이 되었으며, 한국교회의 여러 비극적 결과들의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신사참배의 죄악은 하나님 앞에서 눈물로서도 다 회개할 수 없는 크나큰 죄악이었으나, 해방 후에 한국교회는 이 문제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서 용서의 방법을 찾으려고 많은 애를 쓴 것도 사실이다.
선배들은 지난 날 기회 있을 때마다 회개하였다. 1946년 6월 13일 남부총회 때에 회개했으며, 1954년 안동중앙교회에서 개최된 제39회 총회의 결의는, 지난 제27회 총회 결의인 ‘신사참배결의를 취소’하고 당일에 회개기도회를 가졌으며, 이튿날도 3시간의 회개기도회를 열었다.
근래에도 그런 회개와 죄책에 대한 공개적 시도가 있었다. 2007년에는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총회가 3·1절을 기념해 신사참배 행위에 대한 죄책고백 선언문을 발표했고, 같은 해에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에서도 신사참배에 대한 회개를 공개적으로 하였으며, 한국기독교장로회도 같은 해 9월 총회 때 신사참배 행위를 사과하였다.
그런가 하면 2008년 예장합동과 예장통합, 기장, 예장합신 등 4개 장로교단은 교단 분열 60년 만에 처음으로 제주 연합 예배로 모여, 신사참배 참회기도를 드렸다. 또 단체나 개인, 공공 모임에서도 여러 차례 회개의 시간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신사참배 결의를 한 지 72년을 맞이한 금년에도 일부 단체들에 의한 ‘신사참배 회개 운동’이 있었고, 곧 다가오는 각 교단 총회에서도 신앙 선배들의 신사참배 범죄에 대한 회개의 시간이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하나님 앞에서의 순결한 신앙, 죄악을 회개해야 한다는 신앙적 행위에 대하여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해마다 반복되다시피 하는 ‘신사참배 죄악 회개 운동’을 전개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는 것인가?
첫째, 신학적으로 부합되지 못하다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은 지은 죄를 회개하면 사죄의 은총을 주신다는 것이 약속이다. 그런데 똑같은 사안을 두고서 연례적으로 반복적인 회개를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 말씀에 대한 불신이 될 수 있다. 말씀에 따라 용서받은 사안은 다시는 범하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살면 되는 것이다.
둘째, 과거사를 현재적 시각으로만 보므로, 신앙의 선배들을 정죄하는 모습이 된다. 물론 신사참배 결의나 동방요배의 시행은 당연히 잘못된 것이다. 그렇지만 일제가 생사를 담보로 협박하는 그 극악한 악행은 지적하지 않으며, 신사참배 한 이들만 죄인 취급하는 결과도 문제가 있다. 사실 그 당시 일제의 서슬 퍼런 협박의 자리에 우리가 있었다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행동했을까?
셋째, 반복되는 회개운동으로 인하여 기독교 안티들에게 공격거리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말하기를, ‘기독교가 독립운동만 했다고? 신사참배와 친일을 하지 않았느냐’고 조롱하고 있다.
그러므로 ‘신사참배 범죄 회개 운동’은 한국교회에서 법적으로 정리 되었고, 또한 공개적으로 한 것으로 마무리해야 한다. 반복적인 회개운동이 자칫하면 우리들만이 ‘의인’인 것처럼 여기게 될 수 있고, 시류(時流)적 트렌드처럼 되어서도 안 된다.
이제 신사참배와 그 범죄를 절대 잊지는 말아야 하지만, ‘너를 정죄하고, 나를 드러내는’ 운동이 되어서도 곤란하다. 출옥 성도인 주남선 목사님은 한국교회가 신사참배 문제로 시끄러울 때, “여러분 일제의 압제 하에서 얼마나 고생이 심했습니까? 나는 그곳에서 세상 돌아가는 것을 모르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살았습니다. 모두 수고 많았습니다”라고 하였다. 한국교회가 주 목사님의 말씀을 경청해야 되지 않을까 한다.
그러나 한국교회 모두가 이에 굴복한 것은 아니다. 이 문제로 인하여, 생사를 걸고 신앙의 투쟁을 했던 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기철 목사는 신사참배를 끝까지 반대하다가 순교를 당하였고, 해방으로 인하여 50여 명은 살아 있는 순교자가 되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일제가 신사참배를 강요한 것은 우리민족 전체에 대한 핍박이고, 민족정신을 말살하려는 악한 계교였으며, 기독교 신앙인들에게는 유일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을 포기하도록 하여, 결국 하나님께 버림받도록 하려는 사탄적인 계략이었다.
그 분들의 눈물겨운 고난의 좁은 길이, 신앙의 후손들인 우리로 하여금 오늘날 정통적 신앙의 길을 걷도록 한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므로 이 분들의 숭고한 신앙사수는 한국교회의 유산이며 큰 자랑이 되는 것이다. 터툴리아누스의 말대로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 이 되었다.
일제의 총칼에 의한 신사참배 강요와 그 굴복의 결과는 한국사회와 특별히 한국교회의 씻을 수 없는 오점이 되었으며, 한국교회의 여러 비극적 결과들의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신사참배의 죄악은 하나님 앞에서 눈물로서도 다 회개할 수 없는 크나큰 죄악이었으나, 해방 후에 한국교회는 이 문제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서 용서의 방법을 찾으려고 많은 애를 쓴 것도 사실이다.
선배들은 지난 날 기회 있을 때마다 회개하였다. 1946년 6월 13일 남부총회 때에 회개했으며, 1954년 안동중앙교회에서 개최된 제39회 총회의 결의는, 지난 제27회 총회 결의인 ‘신사참배결의를 취소’하고 당일에 회개기도회를 가졌으며, 이튿날도 3시간의 회개기도회를 열었다.
근래에도 그런 회개와 죄책에 대한 공개적 시도가 있었다. 2007년에는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총회가 3·1절을 기념해 신사참배 행위에 대한 죄책고백 선언문을 발표했고, 같은 해에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에서도 신사참배에 대한 회개를 공개적으로 하였으며, 한국기독교장로회도 같은 해 9월 총회 때 신사참배 행위를 사과하였다.
그런가 하면 2008년 예장합동과 예장통합, 기장, 예장합신 등 4개 장로교단은 교단 분열 60년 만에 처음으로 제주 연합 예배로 모여, 신사참배 참회기도를 드렸다. 또 단체나 개인, 공공 모임에서도 여러 차례 회개의 시간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신사참배 결의를 한 지 72년을 맞이한 금년에도 일부 단체들에 의한 ‘신사참배 회개 운동’이 있었고, 곧 다가오는 각 교단 총회에서도 신앙 선배들의 신사참배 범죄에 대한 회개의 시간이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하나님 앞에서의 순결한 신앙, 죄악을 회개해야 한다는 신앙적 행위에 대하여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해마다 반복되다시피 하는 ‘신사참배 죄악 회개 운동’을 전개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는 것인가?
첫째, 신학적으로 부합되지 못하다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은 지은 죄를 회개하면 사죄의 은총을 주신다는 것이 약속이다. 그런데 똑같은 사안을 두고서 연례적으로 반복적인 회개를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 말씀에 대한 불신이 될 수 있다. 말씀에 따라 용서받은 사안은 다시는 범하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살면 되는 것이다.
둘째, 과거사를 현재적 시각으로만 보므로, 신앙의 선배들을 정죄하는 모습이 된다. 물론 신사참배 결의나 동방요배의 시행은 당연히 잘못된 것이다. 그렇지만 일제가 생사를 담보로 협박하는 그 극악한 악행은 지적하지 않으며, 신사참배 한 이들만 죄인 취급하는 결과도 문제가 있다. 사실 그 당시 일제의 서슬 퍼런 협박의 자리에 우리가 있었다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행동했을까?
셋째, 반복되는 회개운동으로 인하여 기독교 안티들에게 공격거리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말하기를, ‘기독교가 독립운동만 했다고? 신사참배와 친일을 하지 않았느냐’고 조롱하고 있다.
그러므로 ‘신사참배 범죄 회개 운동’은 한국교회에서 법적으로 정리 되었고, 또한 공개적으로 한 것으로 마무리해야 한다. 반복적인 회개운동이 자칫하면 우리들만이 ‘의인’인 것처럼 여기게 될 수 있고, 시류(時流)적 트렌드처럼 되어서도 안 된다.
이제 신사참배와 그 범죄를 절대 잊지는 말아야 하지만, ‘너를 정죄하고, 나를 드러내는’ 운동이 되어서도 곤란하다. 출옥 성도인 주남선 목사님은 한국교회가 신사참배 문제로 시끄러울 때, “여러분 일제의 압제 하에서 얼마나 고생이 심했습니까? 나는 그곳에서 세상 돌아가는 것을 모르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살았습니다. 모두 수고 많았습니다”라고 하였다. 한국교회가 주 목사님의 말씀을 경청해야 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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