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술국치 1백주년과 한국전쟁 60주년을 맞아 한국교회의 1백년 역사를 돌아보는 시간이 마련됐다.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회장 김성은 교수)는 17일 감리교신학대학교(총장 김홍기 교수)에서 ‘한국 현대사 1백년을 돌아본다’는 주제로 제43회 학술대회를 가졌다.

이날 ‘자유와 민주, 그리고 평화를 위하여-되돌아보는 한국 기독교 역사 1백년’을 제목으로 발제한 이덕주 교수(감신대 교회사)는 과거 한국교회의 모습을 기독교 선교 초기인 한말과 일제시대, 그리고 해방과 이후 분단시대로 나눠 고찰한 후 역사적 평가를 내리고 향후 전망을 분석했다.

점수로 본 한국교회 1백년…, A-에서 F까지

이 교수는 각 시대별 한국교회의 모습에 점수를 매겼다. 흔히 대학생들이 받는 알파벳 등급을 기준으로 한말의 한국교회엔 A-를, 일제시대 초기엔 A, 일제시대 후기엔 B-, 해방 직후 역사에는 낙제점인 F를, 마지막으로 해방 이후 전개된 역사엔 C+를 줬다.

한말의 한국교회 역사에 A-라는 높은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이유에 대해 이 교수는 “수직 질서를 강조하던 봉건체제의 붕괴와 개방, 개혁을 통한 근대화 및 시민사회 형성 과정에서 기독교는 만민평등, 양성평등, 자유와 해방, 천부인권 등의 개념을 소개했고 교회는 그런 가치들을 실험하면서 확산시키는 구심점이 됐다”고 했다.

단, “근대화와 민족운동 방법론에서 일부 기독교인들이 취한 ‘외세 의존적 자세’” 때문에 만점은 줄 수 없었다고 이 교수는 덧붙였다. 그는 “윤치호와 이승만, 서재필, 유일선과 같은 초기 기독교 지식인들은 개화와 근대화 모델을 서구 기독교 국가와 일본 등에서 찾았고, 그 결과 우리 민족 고유의 역사와 문화, 종교와 철학, 정신적 가치와 전통을 무시하는 경향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다음으로 이 교수가 일제시대 초기 한국교회엔 A라는 비교적 높은 등급을 매긴 반면, 후기엔 B-라는 상대적으로 낮은 등급을 매긴 것은 “기독교인들의 적극적 참여와 희생이 있었던 삼일운동까지의 역사에서 한국교회는 ‘민족과 함께하는 교회’의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1920년대 일제의 문화통치시기부터는 총독부의 종교정책에 타협, 순응하는 모습을 보였고 일제 말기에 접어들면서는 대부분 기독교 지식인들과 교회 지도층 인사들이 일제에 저항하지 못하고 순응했을 뿐 아니라, 신사참배 문제에서 민족적 자존심은 물론 신앙적 양심까지도 포기하는 변절과 훼절의 비굴한 모습까지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해방 직후 한국교회 역사가 낙제점인 것은, 분단이라는 민족의 갈등 앞에서 일치와 평화를 외쳐야 할 교회가 오히려 분열의 소용돌이에 휘말렸기 때문이다. 당시 한국교회의 모습에 대해 이 교수는 “진보와 보수간 신학적 갈등, 지방색 갈등, 교권을 둘러싼 갈등과 경쟁으로 인한 교회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고 안타까워했다.

다행히 “1970년 이후 진보적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사회정의 구현과 인권 회복을 위한 민주화운동이 추진되면서 보수 일변의 기독교에 변화가 나타났고, 그 연장선에서 1980년 이후 전개된 통일운동에 열린 보수계가 동참하면서 교리와 신조, 교파와 교단을 초월해 서로 협력하는 모습”이 나타났다며 이 교수는 해방 이후 전개된 한국교회 역사에는 C+를 줬다.

“‘봉건잔재’ ‘식민잔재’ ‘분단잔재’ 청산해야”

그렇다고 안심할 상황은 아니라는 게 이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그 어느 시기보다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낀다고 했다. 이 교수는 한국교회에 대한 주된 비판이 “목회자의 윤리적 타락, 교회의 세속화와 물량적 과시, 타종교와 문화에 배타적이고 공세적인 자세 등에 집중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기독교 신앙의 본질 회복과, 이를 바탕으로 한 개혁적이고 창조적이며 영적이고 실천적인 신앙운동이 시급한 실정”이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앞으로 한국교회가 ‘봉건잔재’ ‘식민잔재’ ‘분단잔재’를 청산해 “한국 기독교 역사 속에서 소중한 가치로 확인된 자유와 민주, 그리고 평화”를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도 우리 안에는 봉건잔재가 많이 남아있다”며 “민주화가 되었다고는 하나 교회의 교직이나 제도, 조직에서 평등적 조화보다는 수직적 봉건 기능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교회 안에서도 목회자와 목회자, 목회자와 교인의 관계가 물질과 권력을 기반으로 한 봉건적 주종관계를 이루고 있다”고 꼬집었다.

‘식민잔재’에 대해선 “한국교회가 해방 직후 교회 자도자들이 일제말기에 보여준 역사적 과오와 실수를 만회할 수 있는 역사청산의 기회를 놓쳐버렸고, 이것이 교회 분열의 역사로 이어졌다”며 “일제시대 한국교회는 정치적으로 일제의 지배를 받으면서, 신학적 문화적으로는 서구, 특히 미국 기독교의 식민지배를 받았다. 그 결과 우리민족 고유의 가치와 전통보다는 서구 문명과 문화를 우월한 것으로 여기게 됐고, 신학과 전례, 고백과 표현에서 정체성과 주체성을 상실한 채 서구 모방과 답습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이 교수는 “오랜 세월 분단시대를 살다보니 ‘분단적‘ 의식과 사고, 언어와 행동을 보이게 됐다”며 한국교회가 ‘분단잔재’를 청산해야 할 것을 주문했다.

그는 이러한 분단의 잔재가 ‘상대방을 적과 아군으로 구분하는 이분법적 사고’를 낳았다며 “이것이 교회 안에서는 편협한 교리지상주의, 패쇄적 교파주의, 배타적 집단이기주의로 나타났다. 교리와 신조가 다르거나 정치적 이익 추구에 장애가 된다고 여기는 상대편을 적으로 간주하고 척결하려 한다. 그 결과 교회 구성원 사이에 갈등이 끊이지 않고 지속적인 분쟁과 분열이 일어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이 교수는 한국교회의 이같은 폐해가 “천민 자본주의와 결탁한 기독교 신앙의 결과로, 물량적이고 세속적인 신앙행태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며 “(한국교회가) 자본주의와 맺었던 일방적 밀월관계를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이기적이고 탐욕스런 자본주의가 아닌 건강한 자본주의로서 ‘기독교 자본주의’를 수립하는 것과 함께 폭력적이고 기계적인 공산주의가 아닌 인간적 사회주의로서 ‘기독교 사회주의’를 함께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