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출신인 김현식 조지메이슨대 교환교수(사진)가 이사장을 맡아 50여명의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연구를 진행해 왔다. PLI(소장 이정환)의 연구와 사업이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언어 전문가이면서 남북 언어 이질화 현상의 심각성을 몸으로 체험한 김 교수가 직접 프로젝트를 지휘하면서 보다 실제적이고 효과적인 남북 언어 통일 작업이 가능해졌다는 기대 때문.

김 교수는 “1990년대 초 망명 직전 모스크바에서 캐나다 출신 선교사로부터 한국어 성경을 선물로 받았는데 양쪽의 언어가 너무 달라져서 무슨 말인지 거의 알아볼 수 없었다”고 북한 어휘를 사용한 문서 발간 작업의 동기를 밝혔다. 1950년까지 교회에 나갔던 그가 이해를 못할 정도면 일반 북한 주민들은 어떨까 생각해 보면 문제의 심각성은 더해진다는 김 교수의 설명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남북 통일이나 개방에 앞서 언어 통일 작업을 서두르고 있는 김 교수는 먼저 북녘 지식인이나 대학생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교재 개발에 초점을 뒀다. 글로벌화에 따라 영어를 제1 외국어로 삼고 있지만 마땅한 교재가 없어 고민하는 북한 지식인들에게 쉽게 접근하는 방법이라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서양 문화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기독교 역사를 북한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익히도록 내용은 성경을 택했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색채나 오해를 살 수 있는 내용은 일단 피했다.

북한 어휘를 사용한 사전이나 영어 교재, 성경(요한복음)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한자어 없애기. 성경은 ‘하나님의 약속’, 구약은 ‘예수 이전 편’ 복음은 ‘기쁜 소식’ 십자가는 ‘십자 사형틀’ 창세기는 ‘우주 만물의 창조’ 등의 식이다. 또 ‘구속하다’는 ‘구원하다’로, ‘시험에 들다’는 ‘유혹에 빠지다’로, 유월절은 ‘건너 뜀 명절’, 할례는 ‘출생 례식’, 력대기는 ‘왕조의 역사’ 등으로 바꾸었다.

틴데일(Tyndale)에서 나온 ‘New Living Translation’을 원본으로 사용하고 있는 북한용 교재와 성서는 원래 저작권을 대한성서공회에 신청했으나 현재 한국교회가 사용하고 있는 성경을 변형하거나 수정해서는 안된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대한성서공회는 1990년에 북녘 평양 맞춤법에 맞춘 ’북한어 성경‘이 이미 발행됐으니 그것이면 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김 교수는 “그 성경은 공동 번역 성서를 몇 가지 철자(되었다-되였다/위에-우에/그 여자/그 여자/원수-원쑤/일꾼-일군 등)만 고친 것에 불과하다”며 “북한은 단지 종교의자유가 있음을 보여주고 평양교회를 찾는 외국인들에게 방문 기념품으로 팔아 외화를 벌려고 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요한복음(요한의 예수 이야기)을 사용한 영어 교재는 새 단어와 발음을 설명하면서 단어의 뜻을 북한 말로 밝히고, 문장 토막치기를 한 뒤 전체를 다시 번역하는 순서로 짜여져 있는데 러시아어에 익숙한 북한 지식인들에게 필요한 학습 방법을 염두에 뒀다. 러시아어는 발음기호 없이 그대로 읽는데 영어는 그렇지 않은 데다 구두점이 없고 접속사나 접속어도 자주 생략돼 북한 지식인들이 배우기가 쉽지 않아서다.

김 교수는 “북녘 학교의 영어 교육을 도와주는 일은 영어의 종주국인 미국에 살고 있는 한인들이 응당 담당해야 할 일”이라며 “북미 관계가 개선되면 직접 북한에 들어가 영어를 가르치는 준비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 한국일보 이병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