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무심코 사용하는 말의 유래를 보면 그 속에 역사가 있습니다. 유럽(Europe)이라는 대륙의 이름은 그리스의 신화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제우스가 페니키아의 공주이며 절세미녀인 유로페(Europe)를 보자마자 한눈에 반해버렸다. 그래서 제우스는 유로페를 자기 것으로 하기 위하여 아름다운 눈을 지닌 황소로 변신하였다. 그리고 들판에서 꽃을 뜯고 있는 유로페 곁으로 접근해 갔다. 유로페는 처음에는 갑자기 나타난 황소에 놀랐지만 얌전한 생김새에 안심하고 머리를 쓰다듬고 등을 만져보며 놀다가 그만 그 소 등위에 올라타 보았다. 그러자마자 이 황소는 기다렸다는 듯이 달아나기 시작하였다.

놀란 유로페가 소의 등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바둥거리는 사이에 황소는 숲과 강을 넘고 또 해안을 지나 바다 한가운데에 떠 있는 크레타섬에 이르렀다. 섬에 도착한 황소는 드디어 본체를 드러내면서 “유로페야, 놀라게 해서 미안하다. 나는 실은 제우스인데 네가 마음에 들어서 그랬노라. 여기서 사이좋게 함께 살자. 그리고 이 섬과 건너편 해안 일대를 그대의 이름으로 유로페라고 부르자”했다.>

이런 신화에서 오늘의 유럽이라는 이름이 유래한 것입니다.

유럽의 섬나라 영국은 잉글랜드(England)와 스코트랜드(Scotland), 북아일랜드(Northern Ireland), 그리고 웨일스(Wales)로 나뉘어집니다. 그 영국은 처음에 유럽에서 건너온 켈트족(Celts)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 후 게르만족의 갈래인 앵글로족(Anglo)과 색슨족(Saxon)이 건너와서 남부의 평야지대를 빼앗으면서 켈트족의 한 갈래인 스코트족은 북쪽의 산악지대로 쫓겨가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남쪽은 앵글로족과 색슨족이 함께 어울려 살게 되면서 앵글로 색슨이라는 통합된 이름이 등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이 살던 남부를 앵글로족의 땅이라는 의미의 잉글랜드가 됩니다. 그런가하면 북부지방은 스코트족의 땅이라는 의미로 스코트랜드라 부르게 됩니다.

다른 유럽과 마찬가지로 영국도 고대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로마제국의 지배는 그곳에 로마의 문화와 함께 기독교를 전하여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그곳에 있던 켈트인들의 독특한 켈트 기독교문화라는 것이 등장하게 되기도 합니다. B.C. 55년 카이사르의 침입으로 영국역사에서는 로마인의 첫 침입을 당합니다. 그러나 그는 갑작스러운 침략 준비와 악조건의 기후 때문에 그 해에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B.C. 54년 카이사르가 다시 잉글랜드를 침공하려고 시도했을 때, 잉글랜드 지역은 여러 소국들이 뭉쳐서 로마군을 공격하자, 결국 카이사르는 더 이상 공격을 계속하지 못하고 공물을 받는 조건으로 침략을 중지했습니다. 이렇듯 소강 상태에 있던 켈트족의 영국과 로마의 관계는 A.D. 43년 클라우디우스(Claudius)황제 때 본격적인 정복 활동에 들어가면서 카이사르 시대와 달리 이번에는 로마의 막대한 힘 앞에 무참히 무너질 수 밖에 없었으며 잉글랜드는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그 때 로마군대가 템스강가에 세운 요새 론디니움(Londinium)이 지금의 영국의 수도인 런던(London)이 된 것입니다.

영국을 점령한 로마군은 로마의 정책상으로 보면 정복당한 켈트인들의 자치 정부가 사회의 중심을 이루는 것이 옳았으나, 로마 정부는 그들에게 로마 문명의 건축이나 생활 양식이 담긴 자치 도시의 성장을 유도했습니다. 그리고 일부 지역은 로마 내에서 은퇴한 병사들이 건너와서 로마식의 도시들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A.D. 4세기 전반기에 들어서면서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제국의 변방을 지키는 주둔군들을 주로 현지의 지방민으로 대체하는 조치를 취했습니다. 이러한 조치가 그의 사후에 외곽 지역들을 약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여 결국 중앙정부의 잉글랜드에 대한 지배력이 약화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테오도시우스(Flavius Theodosius) 황제 이후 잉글랜드에 대한 로마의 통치도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또한 410년에 서로마 황제인 호노리우스(Flavius Augustus Honorius)가 ‘영국은 스스로 방어하라’라는 전문을 보내옴으로써 공식적으로 로마제국의 지배 시대가 영국에서 끝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로마인들이 잉글랜드에 남긴 마지막 유산은 로마식 통치를 전파하여 국가 형성의 기초를 만들어 준 것과 로마의 앞선 문화와 기독교의 전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