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 로마제국의 분열과 서로마제국의 멸망에 대하여 언급하였습니다. 그 역사는 곧 교회의 동서 분열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그 서로마제국의 멸망에 영향을 미친 당시의 세계사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훈족(Hun)은 서양사에 등장한 최초의 투르크계 민족입니다. 때로는 중국의 사서에 기록된 흉노와 같은 민족으로 간주되며, 그 기록은 B.C. 120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유럽에 모습을 드러낸 훈족은 아틸라를 리더로 중앙아시아에서 서쪽으로 이동한 기마민족이었습니다. 그들의 대규모 이동으로, 이미 동유럽에 살던 게르만족의 대이동을 일으켰습니다. 훈족은 5세기 중엽에 가장 세력을 떨쳐 아틸라의 지휘 아래 서쪽은 라인강에서 동쪽은 카스피해에 이르는 대제국을 이루었습니다. 453년 아틸라가 죽은 후 왕자들의 분열과 게르만 여러 부족의 반란으로 훈 제국은 무너지게 됩니다.

아틸라(Attila)는 훈족 최후의 왕이며 유럽 훈족 가운데 가장 강력한 왕이었습니다. 아틸라는 434년부터 죽을 때까지 유럽에서 최대의 제국을 지배했으며, 그의 제국은 중부 유럽부터 흑해, 도나우강부터 발트해까지 이어졌습니다. 아틸라는 서로마제국과 동로마제국의 최대의 적이었으며, 발칸반도를 두 번이나 침공하였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침공에서는 동로마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을 포위하기도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서로마의 영토였던 갈리아, 즉 현재의 프랑스까지 진격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틸라의 제국은 그의 죽음과 함께 소멸했습니다. 아틸라는 후에 유럽의 역사에서 전설적인 인물로 생각되어, 일부 역사가들은 아틸라를 위대한 왕으로 묘사하고 있으나 서유럽의 대부분에서 아틸라는 잔혹한 야만인 왕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이 훈족의 유럽침입은 유럽의 지형과 역사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훈족에게 밀린 게르만족이 대 이동을 하게 되면서 로마가 지배하던 영토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고 그곳에 있던 여러 민족들이 연쇄 이동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훈족이 자리를 잡았던 곳을 훈족의 땅이라는 의미의 훈가리아로 불렀는데 그것이 지금의 헝가리가 되었습니다. 훈족에 밀린 서고트족이 본래 거주지인 다뉴브강 일대에서 서진하자, 그곳에 살던 반달족은 그 영향으로 서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반달족(Vandals)은 게르만족의 일파로5세기 초인 406년에 라인강 방어선을 지키던 로마군이 서고트족의 위협에 직면한 로마를 지키기 위해 철수하자, 반달족은 이틈을 타 갈리아로 이주했습니다. 이때 게르만족의 일파인 프랑크족도 본래 거주지에서 서진하여 갈리아로 이동했습니다. 그 갈리아는 지금의 프랑스 땅이며, 프랑크족에 의해 후에 그곳에 프랑크 왕국이 세워지고 거기에서 프랑스라는 이름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반달족은 계속 남진하여 에스파냐를 거쳐 북아프리카로 건너갔고, 히포를 점령한 후 옛 카르타고 땅을 중심으로 북아프리카 왕국을 건설했습니다. 히포와 카르타고는 지금의 튀니지에 있던 고대도시로서, 특히 히포는 교회사에 유명한 어거스틴이 감독으로 있었던 곳입니다. 로마의 주요 식량 공급지였던 북아프리카를 반달족이 차지하게 되어 로마는 심각한 식량난에 봉착하게 되었고, 반달족은 이동하면서 해적질과 각종 약탈 및 파괴 행위를 벌인 것 때문에 파괴행위를 의미하는 반달리즘(Vandalism)이란 말이 생겨났습니다. 스페인에 있는 도시 이름 안달루시아는 반달인의 땅이라는 반달루시아가 변형된 것이며, 미국 앨라바마에도 안달루시아라는 소도시가 있습니다. 그리고 독일의 도시 프랑크푸르트도 프랑크인의 강을 건넌 지점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교회가 로마와 유럽에 많은 영향을 미쳤지만, 또한 로마제국과 유럽의 역사는 교회사와 밀접한 관계에 있으므로 우리는 이처럼 시대의 역사를 알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