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뉴욕에 있는 자녀들을 방문하고 계신 박윤수 장로님으로부터 메일을 받았습니다. <엄마를 부탁해>를 읽고 나서 보내신 일종의 독후감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박 장로님은 물리학자로서 반도체 분야에 있어 세계적인 권위자입니다. 늘 원리와 논리만을 따지던 분이 이 소설을 읽고 어떻게 느끼셨는지, 한 번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이 메일은 장로님의 허락을 받고 여기에 옮깁니다.)

김영봉 목사님께

여기는 아직도 날씨가 추워 많은 시간을 실내에서 보내고 있습니다. 덕분에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지난 사흘 동안 다 읽었습니다. 읽고는 “자, 이 내용을 가지고 목사님이 어떻게 설교를 해 나갈까?” 궁금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지난 번 "밀양" 때와 같이 목사님의 창의력이 기대됩니다.

신경숙의 문장 솜씨와 이야기 전개 방법이 극적인 드라마 같이 계속 되기 때문에 지루함 없이 단번에 읽을 수 있었습니다. 정말 몇 년 만에, 아마 수십 년 만에, 이런 정서적인 소설을 읽게 된 것 같습니다. 밤낮 딱딱한 과학 서적만 대하던 사람에게 이런 인간적이고 감성적인 소설을 읽을 기회를 주신 것 감사합니다. 벌써 돌아가신지 11년이 지난 어머니를 생각하게 해주신 것 감사합니다. 80된 노인이 이 책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렸답니다. 건조무미한 과학자이지만 아직도 감성과 인정이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뉴욕에 자주 오는 이유가 살아있는 나머지 기간 동안 아이들과 손자들에게 사랑을 베풀어 주고 싶어서인데, 이제는 아이들이 다 자기들 자식 키우는 데 정신이 없는 것을 봅니다. 우리가 부모보다 우리 자식을 더 아꼈던 것 같이 역사가 되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아이들 기르느라고 부모를 소홀이 하고 엄마를 잊었던 것을 이 책이 다시 한 번 뉘우치게 해주었습니다

80이 돼서도 엄마의 사랑을 생각게 해주신 것 감사합니다. 소설 중에 묘사된 부부관계 그리고 내가 느끼지 못했던 아내의 배려, 희생, 사랑에 대해서도 새삼스럽게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부모에 대한 자식의 사랑은 자연히 자기 자식으로 옮겨 가지만,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변함이 없겠지요? 남은 인생을 이제는 주님의 사랑 속에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곧 또 뵈옵겠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의 창의적 설교를 고대합니다. 2009년 4월 13일.



이 메일을 읽으면서 “<엄마를 부탁해> 연속 설교의 목적이 이미 이루어지고 있구나!”라고 느꼈습니다. 이와 같은 마음에 제가 무엇을 더할 수 있겠습니까? 이와 같은 마음이 모든 교우들에게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이 봄에 모든 교우들이 문학의 숲을 산책하는 깊은 맛을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문학은 말씀에 매우 가까이 닿아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