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리더로서 목회자는 과감한 헌신 요청을 잘 시킬 수 있어야 한다. 교회는 교인들에게 헌신을 요청할 일이 많이 생긴다. 이번에도 내가 섬기는 교회는 전국 규모의 영성 컨퍼런스를 개최하면서 재정적으로 압박을 받게 되었다. 이 어려운 경제 여건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그런 모임을 유치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 기도하는 가운데 필요한 모든 재원과 인원을 채워 주시리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러면서 몇 분들이 신실이 헌금도 해주셨다. 또 이번 집회 가운데 오신 선교사님들의 여비를 위해 헌금하자는 헌신 요청이 참석한 모든 교인들에게 마음이 와 닿았는지 놀라운 헌신이 이뤄졌다. 기대 이상의 헌금을 해주셨고 어려운 여건 가운데 오신 선교사님들에게 여비 보조를 해 줄 수도 있었다.

사명과 비전이 뚜렷한 목표를 놓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그러면서 교인들에게 헌신을 요청할 때 늘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채워지는 숱한 간증을 체험하게 되었다. 교회의 사역을 놓고 제직들에게 사역의 헌신을 목회자는 강력히 요청해야 한다. 그 사역의 방향과 목적이 확실하고 하나님의 선한 뜻이 있다면 그 제직들은 즐거움으로 그 사역에 헌신하리라 확신한다. 믿음의 성숙을 위해 신앙적인 훈련을 받자는 그런 요청도 목회자는 하게 된다. 그럴 때 믿음이 적은 사람일지라도 그것이 자신의 인생의 큰 획을 긋는 의미 있는 결단이라고 생각하고 강력한 헌신을 하는 것을 보게 된다.

헌신을 할 때는 기도를 많이 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마음들을 움직여 주도록 열정과 잘 계획된 헌신 목표와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그것을 말씀과 함께 담아 비전을 가지고 전달하면 교인들은 그 꿈과 목표를 위해 헌신을 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그 헌신이 이뤄지든, 이뤄지지 않든 늘 헌신을 제시하고 헌신을 요청하는 담대한 마음이 필요하다. 물론 교인들은 지나친 헌신을 하는 것을 마음에 부담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 헌신이 자신에게 진정한 영적 유익이 있다고 생각할 경우 그 헌신을 믿음으로 감당하고 훗날 그 믿음의 축복을 누리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번에 우리 교회는 특별 새벽 기도회 때 12일 동안 성경 파노라마라는 성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성경 교재를 가지고 성경 통독을 하자고 도전하였다. 사실 짧은 12일 동안 교인들에게는 무리가 되는 헌신이었다. 그러나 많은 교인들이 새벽에 나와 신구약 성경을 큰 주제별로 12일동안 진지하게 공부하는 것을 목격하면서 담임 목사인 나 자신도 은혜를 받게 되었다. 그러고 끝난후 교인들도 성경에 대한 새로운 도전을 많이 받는 것을 보게 되었다. 헌신은 조금 버겁게 할 때 끝난 후 그 감격도 커지는 것을 알게 되었다.

헌신에는 물질적인 헌신도 뒤따른다. 교회가 건축이나 교육관 증축을 위해 헌신하기도 한다. 헌신을 시킬 때 물론 마음에 부담이 뒤따르게 된다. 그러나 그 헌신을 통해 그 교인들이 훗날 누리는 영적인 유익이나 축복을 우리는 잊지 않아야 한다. 믿지 않는 불신자들이 예수를 영접할 때 헌신 시키는 그런 것은 영원을 위한 자신의 결단이다. 그 결단을 통해 그 사람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입성의 기쁨을 누리는데 그러한 헌신을 주저할 수는 없는 것이다.

헌신을 할 때 헌신의 메시지는 간단하고 분명해야 한다. 헌신은 때때로 강단에서, 그리고 세미나실에서 그리고 식사를 나누면서도 이루어진다. 헌신을 제기하는 리더로는 때때로는 긴장도 되고 또 마음에 부담을 느끼게도 된다. 그러나 헌신의 도전을 한 후 그 결과는 늘 후련함으로 찾아온다.

헌신이란 늘 아름다운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향한 그 헌신의 발걸음, 그것이 시간의 헌신이고 사역의 헌신이고 물질의 헌신이고, 그 헌신을 통해 그 사람의 영적 각성과 축복의 열매가 맺어진다면 그것은 복된 헌신이다. 영적 리더들이여, 헌신 시키는 것을 두려워 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