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갑 교수
콜롬비아신학대학원에서 예배음악 교수를 맡고 있는 허정갑 교수의 예배탐방 이야기를 싣는다. 미국교회를 중심으로 예배의 모습을 때로는 진솔하게, 때로는 날카롭게 전달하는 필자의 시각을 존중해 되도록 본문 그대로 싣는다. 시기상 맞지 않는 것도 있지만, 탐방한 교회의 역사적인 배경이나 예배 모습 전달에 초점을 맞추고자 편집을 최소한으로 했다. 아래 글에 대한 모든 저작권은 한미목회연구소(www.webkam.org)에 있다. -편집자 주-

종려/고난 주일은 그 예배가 2파트로 나뉘어 진행되는데 첫째는 종려부분으로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축하하며 호산나를 외치는 예배이고 둘째는 고난부분으로서 고난주일의 한 주일을 시작하는 예배이다. 두 개의 상반된 예전을 따라 이번 주일은 첫째 디케이터 시의 교회연합예배를 찾았고 둘째는 예전을 중요시하는 성공회 회중을 찾았다.

먼저 38개의 지역교회가 함께하는 연합행사는 나귀타고 낮은 곳에 임하시는 예수님처럼 가난한자와 함께하며 서로 용서를 구하고 봉사하며 돕기로 약속하는 아름다운 에큐메니칼 예배였다. 모인장소에서 시작하여 종려가지를 흔들며 시가지를 통과하여 예배장소에 도착하니 시청 앞이다. 그러나 생각보다 적은 인원수(약40여명)의 참석으로 연합행사의 의미가 상실됨을 느끼었다.

▲(좌)시청앞 광장에서 드리는 교회연합예배, (우) Holy Trinity Episcopal at Decatur>ⓒ한미목회연구소
또한 예배순서의 미숙함이 준비가 안 되어있음을 드러내었다. 한국연합행사에 등장하는 유명인사의 설교 및 한국교계의 드러내고 보여주는 순서의 모습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특별히 무명의 신학생이 설교자로 나서서 떨리는 목소리로 나귀를 타고 입성하는 예수님의 심정을 대변하였다. 짧은 순서의 예배는 모두 30분 안에 마치었고 각자의 교회로 흩어지기 바쁘기에 나는 근처에 있는 Holy Trinity 미국성공회 10시 예배를 향하였다.

이곳의 회중도 또한 고난주간을 시작하는 종려행진을 인근 초등학교 주차장에서 시작하였다. 교회연합의 행사와는 대조적으로 회중의 오래된 전통과 역사를 살려가며 십자가와 종려가지를 앞세운 성가대와 회중의 행렬이 백파이프 장단에 맞추어 교회를 향하였다. 길을 건너는 부분에서는 지역경찰이 배치되어 지나가는 차량을 멈추어 기다리게 하는 안전의 배려를 보이기도 하였다. 성공회예전의 길고도 복잡한 순서는 오늘의 예배를 입장, 말씀봉독, 기도, 그리고 성만찬으로 구성하여 종려/고난주일의 특별예배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 주일의 예배는 종려의 행진이 시작하는 주차장에서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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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중의 행렬이 교회본당으로 들어와서는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상의 사건인 마가복음 14:1-15:47의 긴 본문을 각 인물과 내레이터로 나누어 봉독하였다. 군중의 역할은 온 회중이 목소리를 높여 참여한다. 십자가상의 마지막 칠언과 예수님의 죽음 후의 장사지내는 부분까지 오늘은 성경을 읽는다. 오늘예배는 설교가 없다. 전체 예전은 말씀묵상을 중심으로 이어지며 성서봉독 후 바하의 무반주 첼로연주가 성전 안을 가득 채우며 기도의 시간으로 안내한다. 회중의 기도 후 담임 목회자는 특별 기도를 부탁하며 앞으로 나온 이들에게 안수기도를 하나씩 하여준다. 예배의 드라마적인 요소를 이 교회는 잘 지키고 있는데 고난주간 드리는 매일기도회를 비롯하여 특별히 수요일 저녁의 테네브레 예배, 목요일의 세족식과 성만찬예배, 금요일의 십자가상의 7언, 토요일의 부활철야예배, 그리고 다음 주일의 부활절 예배를 안내하고 있다.

성공희의 가장 큰 매력은 성탄절과 부활절의 절기예배가 하나의 행사가 아니라 온 교인이 전력을 다하여 총동원되어 예배하고 기도함에 힘쓰고 있음이다. 음악과 예전적 요소가 그 어느 때보다 더 부각되어 시간시간 마다 예수님의 발걸음을 좇고자하는 삶의 예전이 펼쳐진다. 그 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시간이 바로 고난주간이다. 하나님의 아드님께서 이 땅에 오시고, 십자가상에서 죽으시며, 그리고 부활하신 기독교예배의 가장 핵심적인 역사적 사건을 재현하며, 그 구원을 고백하며 감사함이 예배시간마다 정성껏 드려지고 있다. 그러기에 필요 없는 말은 삼가고 가장 경건한 표현과 음악, 상징, 그리고 향을 비롯한 5감을 사용한 입체적 예배의 절정이 구별된 고난주간의 시간과 장소에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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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적 예배란 단순한 의식이 아닌 살아있는 신앙인의 역동적인 고백으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종말론적인 미래의 구원적 사건이 함께 어우러져 펼쳐지며 그 초청에 우리는 감사함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정성껏 준비되고 엄숙하게 거행되는 식탁에 초대되었다. 구별된 모습으로 로브를 걸치고 가장 튼튼한 금속식기를 사용하며, 가장 좋은 그리고 귀한 손님을 접대하는 몸과 마음가짐으로 성만찬 위원들은 앞으로 나오는 회중들을 안내하며 주의 몸과 피를 나눈다. 받는 사람들 또한 몸과 마음을 추스르며 무릎을 꿇고 두 손을 공손히 모아 빵조각을 받고 잔을 든다.

성전 안에서 오고가는 길에 정면에 걸려있는 십자가에 고개를 숙이며 절을 하는 회중들을 보며 예수중심의 고백을 몸으로 하는 예배자의 모습을 확인한다. 잠시 내가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하는지를 잊고 여기에 모인 낯선 이들과 그리스도의 한 형제자매로서 함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함이 경이로움을 느끼며 바로 이것이 잘 준비되고 행해지는 전통예전의 힘인 것임을 확인한다. 구원의 은총 속에 흘러간 값진 2시간이었다. 침묵으로 퇴장하는 성가대와 예배위원들이 회중 앞에서 흔들며 뿌리는 향의 연기가 앞을 스쳐간다. 예배의 중요한 순간마다 뿌려지는 송진의 타는 향내가 나를 강렬히 자극한다. 그냥 좋은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기억과 함께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땅의 소중한 존재임을 느끼며 감사함이 절로 드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