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매주 애틀랜타 각 교회를 탐방하여 주일 설교 본문을 싣는다. 본문은 편집자에 의해 요약, 편집되어 원문과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금주는 사순절 기간 40일 특별 새벽기도와 <예수님의 십자가 최후의 칠언>를 주제로 한 7번의 설교로 사순절의 의미를 되짚어 보고 있는 한빛장로교회(강순흥 목사)를 찾았다. –편집자 주-

사순절 셋째 주, ‘용서’와 ‘구원의 은총’ 말씀에 이어 오늘은 십자가에 가장 가까이 와 있는 어머니와 요한에게 선포하신 말씀을 보고자 합니다. 제목은 <당신의 아들이요...네 어머니라...(요한복음 19장 26-27절)> 입니다.

주님의 최후까지 함께하는 사람이 이 둘입니다. 나머지는 어디 있는 것입니까. 죽는 날 까지 따르겠다던 제자들, 왕처럼 섬기며 옷 자락만이라도 만지려 했던 이들은 어디 있습니까. 몇 일전만해도 호산나를 외치던 자들이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을 조롱하며 원망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얼마나 나약하고 불확실한 존재입니까.

이 가운데 주님의 최후를 끝까지 지키고 있던 어머니 마리아와 제자 요한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9장 26절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27절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우리의 삶 가운데 불현듯 마지막 순간이 다가 왔을 때,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 사랑하는 자녀를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 그 사람이 오늘도 내 곁에 있다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2008년 오하이오 주에서 가장 먼저 태어난 축복받은 아기가 있었습니다. 그 아기는 10주만인 3월 14일 죽었습니다. 그 이유는 Shaken Baby Syndrome이었습니다. 아내와 심하게 싸운 아빠가 분을 이기지 못하고 아기를 흔든 것입니다. 흔들어 대는 그 고통이 자녀들에게 고통으로 전달된 다는 것을 아십니까. 1년에 1400명의 아기가 그렇게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싸움과 분투가 그들에게 고통이 됩니다.

자식이 먼저 죽으면 불효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염없는 고통의 눈물로, 십자가를 지고 가는 자식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시집가지 아니한 자가 잉태하여 그 배를 어루만지며 시작된 십자가의 삶. 가난한 목수의 아내로 가정을 지켜왔고 바리새인과 유대인의 핍박과 서러움을 믿음으로 지켜온 이 어머니. 이 어머니를 맡기는 순간입니다.

오늘 본문이 주는 두 가지 메시지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왜 자신의 어머니를 요한에게 맡기셨는가
예수님은 형제들이 있었지만 그 형제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3장 57절은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가진 자, 기득권 자들은 자신의 것을 빼앗길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젤롯당은 예수님을 붙든다면 나라를 세워주실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십자가를 보며 떠나갔습니다. 제자들마저도 떠났습니다. 베드로도. 의심 많은 도마도 모두가 떠났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혼을 책임져주셨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 입니다. 자신의 것을 채워줄 슈퍼맨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자신이 믿고 바라던 일이 이뤄지지 않으면 주님을 떠납니다. 한국인의 18%가 아직도 사주팔자를 보며 세계에서 가장 많은 무당과 점쟁이가 한국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이런 그들을 향해 내 영혼을 맡길 수 있습니까.

미국의 한 지역을 토네이도가 휩쓸고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부모를 잃은 3살 아이가 남게 되었습니다. 누가 이 아이를 돌볼 것인가. 이 때 무명의 크리스천이 ‘내가 이 아이를 책임지겠다’고 자원을 했습니다. 이것이 이 시대. 하나님의 사랑을 맡길 수 있는 자들의 모습이 되야 합니다.

십자가의 사랑, 이웃을 향한 사랑
십자가의 고통은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의 순간이었습니다. 마지막 최후의 순간에 자신의 영혼을 돌보기 보다 어머니의 영혼을 돌보셨습니다. 이런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거할 수 있는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 때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나라를 이룰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동체, 천국이 삶 속에 이뤄질 것입니다.

이지선씨는 꽃다운 나이에 화상을 입었습니다. 그녀가 고통을 이기지 못해 자살하려는 순간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되었고 삶을 통해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녀를 위로하기 위해 홈페이지를 방문한 사람들이 오히려 위로를 얻고 돌아옵니다. 최후의 순간. 죽는 순간까지도 내가 받은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고 선포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