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교부: 이그나티우스와 폴리캅
사도들이 이끌던 초대교회에서 사도들의 뒤를 이은 지도자들을 교부라고 부릅니다. 교부라는 말은 ‘교회의 아버지’라는 의미로서 영어로는 Father of the Church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교회를 이끌던 때를 교부시대라고 교회사에서 말합니다. 교부시대의 초기 인물들 중에 이그나티우스(Ignatius)와 폴리갑(Policarp)을 생각하려고 합니다.

이그나티우스는 사도 베드로와 요한의 제자로 70년부터 107년까지 37년 동안 수리아 지방의 안디옥 교회의 감독으로 있었습니다.(여기서 수리아 비장이라는 한글 개역성경의 표현은 일반적으로 시리아로 발음합니다.) 이 지역은 현대의 레바논의 북부와 터키의 동남부지방을 말하는 것입니다. 특히 안디옥교회는 안디옥(Antioch)이라는 도시에 세워진 교회로서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를 위해 파송했던 교회로 유명합니다. 지금은 터키의 안타키야(Antakya)라는 이름의 보잘 것 없는 도시에 불과하지만, 사도 바울 당시에는 로마의 속주 중에 하나인 시리아의 수도로서, 로마 제국 안에서 로마와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다음가는 대도시였습니다. 당시에는 ‘동양의 여왕’이란 별칭을 가질 정도로 아름답고 화려한 도시였다고 합니다.

이런 대도시에 위치한 교회사에 중요한 안디옥교회를 목회하던 이그나티우스는 지난 글에서 언급했던 트라야누스황제 때에 로마로 압송되어 원형극장에서 순교를 당했다고 합니다.

이그나티우스가 안디옥교회를 담당하고 있었다면,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의 하나인 서머나(Smyrna) 교회는 105년경에 사도 요한의 제자였던 폴리갑(Policarp)이 맡고 있었습니다. 그 서머나는 터키의 남부 해안 도시로서 현재의 이름은 이즈미르(Izmir)입니다. 서머나라는 이름은 ‘몰약’이라는 향료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몰약성이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B.C. 800년 경 헬라반도의 북부에서 내려온 도리아인(Dorians)들의 침략을 받아 그리스도로부터 쫓겨난 이오니아인(Ionians)들이 바다 건너 이곳을 점령하고, 터키 중서부에 걸쳐 위대한 문명을 건설하였습니다. 지금의 터키의 영토인 이 지역을 포함해 당시 많은 해안 도시들이 헬라인들에 의해 세워졌으니, 비록 소아시아에 살지만 에베소나 서머나 등의 사람들은 헬라인들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일리아드와 오디세이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헬라의 서사시인 호머(Homer)가 태어나 활약한 곳도 바로 이곳 서머나였습니다. 이 도시는 에게바다(Aegene Sea)를 향해 위치한 유명한 항구도시로서 화재와 지진으로 여러 번 파괴되었고 외적의 침략으로 거의 폐허가 되었었지만 헬라의 알렉산더 대왕이 점령한 후 재건하여 다시 세워진 도시입니다. 서머나는 B.C. 3세기에서 2세기경 헬라가 지배하던 시대에 크게 번성하였으며, 상업 도시로서 유대인들이 많이 살았던 곳입니다.

이런 당시의 대표적인 도시인 서머나에 세워진 교회를 목회하던 이가 폴리갑이었습니다. 필자가 이 도시를 방문하였을 때 폴리갑을 기념하는 교회를 볼 수 있었습니다. 80년부터 165년까지 살았던 폴리갑은 본래 시리아지방의 안디옥 출신이었습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서머나의 어느 여인이 안디옥에서 폴리갑을 노예로 샀는데, 그가 너무 똑똑해서 그녀가 죽게 될 즈음에 폴리갑을 자유인으로 만들어 주었다고 합니다. 폴리갑은은 ㅤㅈㅓㄼ었을 때 사도 요한의 가르침을 직접 받았으며, 성격은 직설적이고 정열적이었다고 합니다. 20대의 청년 나이에 서머나 교회의 감독이 되었고, 86세에 순교했습니다. 폴리갑이 죽음을 앞두었을 때 그에게 예수만 부인하면 살려주겠다는 제의를 듣고 “86년간 나는 그분을 섬겨왔고, 그분은 나를 한번도 모른다고 한 적이 없는데 내가 어떻게 나의 주님을 모른다고 하란 말인가?”하고 거절하였다고 합니다. 이그나티우스가 순교한 후 약 반세기 후에 폴리갑이 순교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