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신학대학원에서 예배음악 교수를 맡고 있는 허정갑 교수의 예배탐방 이야기를 싣는다. 미국교회를 중심으로 예배의 모습을 때로는 진솔하게, 때로는 날카롭게 전달하는 필자의 시각을 존중해 되도록 본문 그대로 싣는다. 시기상 맞지 않는 것도 있지만, 탐방한 교회의 역사적인 배경이나 예배 모습 전달에 초점을 맞추고자 편집을 최소한으로 했다. 아래 글에 대한 모든 저작권은 한미목회연구소(www.webkam.org)에 있다. -편집자 주-

미국에 도착한 청교도들이 혹독한 한 해를 보내며 감사의 잔치를 벌인 역사적인 사건의 추수감사주일예배를 오늘은 17세기에 세운 보스턴 시내의 오래된 교회이자 보스턴 마라톤의 종점지역으로 알려진 Old South Christ Church (United Church of Christ) 회중들과 드렸다. 교회본당은 Copley Square에 위치하고 있으나 이번 주일은 감사절을 기념하여 이교회의 모체인 Old South Meeting House 에서 매사추세츠 주지사의 환영인사와 하버드 대학의 교목인 Peter Gomes목사의 설교로 진행되었다.

보스턴에 온 이유는 북미설교학회와 성서학회(SBL)가 이번 주말 보스턴 Convention Center에서 열리는지라 처음으로 참관하게 되었고 특별히 그랜트를 받게 된 Society of Art and Religion 회의에 참석차 오게 되었다. 금년부터 AAR학회가 SBL과 나뉘어져 모이기에 축소되어서 약 5,000여명이 모인다고 하지만 엄청난 숫자의 기독교 학자들과 관계자들이 북적되는 1년 중 최고의 학회 잔치이다. 프린스턴에서 M.Div.를 같이 공부한 친구들을 새롭게 만나고 보니 훌쩍 지나간 20년의 시간이 되돌려진다.

▲ 예배 모습 ⓒ Old South Church
예배가 드려진 Meeting House는 초기 보스턴 정착인들이 세운 교회이자, 시민회관, 시청, 및 법정의 역할을 감당하는 다목적 기능의 장소이다. 영국으로부터 식민지 미국의 독립선언을 유발한 보스턴 Tea Party가 의논되고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이러한 역사적인 장소에서 미국 추수감사절이 시작된 보스턴의 정서를 배경으로 그 시대의 찬송을 부르며 성서학회에 참석한 여러 교단의 신학자들이 함께하는 특별한 예배가 준비되었다.

예배공간은 1729년도에 지어졌으며 1669년도에 Old South 교회 회중이 지은 목조 건물을 허물고 현재의 벽돌건물이 세워진 것이다. 독립이 되면서 미국의 가장 큰 모임장소로 사용되어지며 신앙과 언론의 자유를 선포하는 중심적인 장소가 되었다.

영국교회의 압박을 거부하여 신대륙에 정착한 청교도의 후예들은 복잡한 성공회 예전을 거부하며 개인의 신앙과 하나님의 관계를 조명한 설교와 음악을 중심으로 한 기도, 성경, 그리고 악기를 사용하지 않고 회중이 시편찬송을 할 수 있는 아름답고 심플한 예배공간들을 창출하였다.

17세기와 18세기에 만들어진 찬송들은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악보가 아닌 Shaped Note를 사용하여 노래하였는데 그 때 작곡된 노래들을 성가대가 예배 전에 노래하였고 청교도 신앙을 반영한 예배공간인지라 파이프 오르간이 없기에 브라스 5중주와 팀파니가 찬송반주를 맡고 있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그 시대의 찬양들을 회중이 부를 기회가 없었음이다. 약 8년 전 북미 찬송가 공회 모임으로 이 장소에서 오랜 역사적 노래들을 회중 속에서 부르던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그 때는 악기 반주도 없이 4부 화성으로 노래하며 시간의 초월성을 경험한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 예배 모습 ⓒ Old South Church
약 500여명의 좌석에 가득 찬 직4각형의 예배실은 그 둘레를 사각형의 Cubical 들이 있다. 이곳에 5-8명의 가족이 아이들과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는데 노예제도가 있던 콜로니얼 시대에는 흑인 노예들이 발코니에 앉아 있다가 위에서 내려다보며 30분 간격으로 각 가정이 가지고 온 화로의 석탄을 갈아 주었다고 한다. 가족은 1층 자리에 앉고 노예는 발코니 앉아 드리는 예배를 상상하여 보았고, 또한 수입하여 들여온 차에 부가된 엄청난 세금을 더 이상 낼 수 없음을 선언하기 위하여 모인 수많은 회중들의 상기된 얼굴들을 그려 보았다. 이 좁은 곳에 약 3,000에서 5,000여명이 모여서 독립운동의 연설을 들었다고 하니 그 당시 그 열기가 느껴지기도 하였다.

오늘은 감사절, 그 기원을 찾아 이곳에 예배하러 왔기에 이 역사 깊은 교회가 지키는 미국의 추수 감사절 예배와 그 배경을 다루어 보고자 한다.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1676년 6월 20일 매사추세츠 주 모임에서 새로운 땅의 안전한 정착을 하나님께 감사하는 날로 정하여 6월 29일 선포한 것이 그 유래의 가장 처음이었다.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1777에서 1784년 사이에 새로이 조직된 의회를 통하여 감사절을 전국적으로 선포되었고 1789년 조오지 워싱톤을 시작으로 각 대통령들의 감사절 인사선포가 줄을 이었으며 그 중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의 감사절 선포가 그 대표적 연설이었다. 그의 영향력으로 1863년 감사절이 미국의 공식 공휴일로 채택된 것이다. 이 때 링컨 대통령은 남북전쟁이 끝나고 그 후유증으로 나눠진 사람들의 모습을 지적하며 서로 하나 될 것을 강조하는 감사의 메시지를 선포한다. 링컨은 미국 국민들이 더 이상 싸우지 말고 서로 화해하여 떡을 떼고 나눌 것을 전쟁 후 상처와 아픔 속에 허덕이는 국민들에게 호소한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됨을 기억하는 감사 중에 가장 큰 대감사인 성만찬 신학으로 볼 때에 한 해를 돌아보며 창조주 하나님께 감사하며 나누는 식탁의 교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화해케 하시는 시간인 것이다.

오늘 예배를 드린 유서 깊은 교회의 정치적 힘을 발휘하듯 매사추세츠 주지사(그의 딸이 이곳 교인이라고 한다.)의 감사절 선포식을 거행하며 시작된 예배는 어린이들을 위한 설교순서에서도 20살 미만의 자녀를 시작으로 40살 미만, 60살 미만, 100살 미만의 순서로 하나님 자녀들의 감사하는 고백의 선언을 선포하였다. 온 가족이 참석하여 감사절의 의미를 되풀이 하여 기억하는 의미 있는 시간들이었다.

오늘 예배드린 이 교회 멤버 중에는 1706년에 세례를 받은 Benjamin Franklin을 비롯하여 많은 유명인사들이 있다. 오늘 설교를 전한 Gomes 목사도 United Church of Christ 교단의 유명인사로서 현재 하버드 대학의 교목으로 제직하고 있다.

▲ Gomes 목사 ⓒ Old South Church
그는 하박국 3:17-19을 봉독하였다, “무화가 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그는 하나님을 감사하고 찬양함을 설교하며 어려운 이 시대에 감사하기를 기억하도록 그 특유의 억양과 문장으로 안내하고 있다. 그는 흑인으로서 이 지역 Plymouth에서 태어나서 이곳에서 자란 보스턴 특유의 본토인임을 자랑하며 본인이 대학생이었을 때의 어려웠던 이야기를 전하였다. 그리고 이교회가 본 교회에서 나뉘어져 분리되던 과정의 역사를 예로 들며 아무것도 없을 때에 어떻게 감사할 것인가를 설교하였다.

감사절은 분명 교회력은 아니다. 기독교 역사는 2000년이 넘지만 감사절은 이제 겨우 300년이 조금 넘는다. 그것도 미국이라는 나라에 국한된 해석을 갖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전 세계적으로 미국의 영향을 받은 곳마다 11월 3째 주일을 감사절 예배로 드리는 그 모습은 받은 은혜를 감사함에서 우리는 조물주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오늘의 만족을 마음껏 누리게 된다.

보스턴을 2주 만에 다시 와서 학회에 참석한 옛 친구 동료들과 같이 예배드리고 하버드대학에 입학한 아들을 자랑스럽게 소개할 수 있음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시간과 여비가 허락지 않아 휴일에 집에 오지 못하는 아들을 위로할 수는 없었지만 함께 예배하며 한 공동체임을 확인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심에 감사드린다. 예배를 마치고 에모리대학의 은퇴교수 단 샐리어스와 함께 공항으로 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