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표현되던 영국의 여왕 빅토리아(본명:Alexandrina Victoria Hanover)의 장남은 에드워드 7세(본명: Albert Edward Wettin)입니다. 그는 식사 예법에 몹시 엄격한 왕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왕자들이 식사 시간을 언제나 무서워하곤 하였습니다. 어느날 아침 식사를 하던 요크(York) 왕자는 갑자기 말을 더듬거리며 에드워드 7세에게 무엇인가 이야기를 하려 했습니다.

그러자 왕은 버럭 화를 내며 "식사 중에는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했지!" 하며 소리를 쳤습니다. 요크 왕자는 놀라서 그만 입을 다물고 말았습니다. 식사 후 에드워드 7세는 요크 왕자를 조용히 불러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래, 아까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느냐?" "이제는 늦어버렸어요." "늦어? 무슨 일이었는데?" "그때 할아버지 음식에 벌레가 들어갔었어요." 아리스토텔레스가 “누구나 화를 낼 수 있다. 그러나 적절한 상대에게, 적절한 이유로, 적절한 시간에, 적절한 방법과 적절한 정도로 화를 내기 힘들다.”라고 말했듯이 분노를 다스리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상담치료 전문의로서 텍사스에서 상담소를 운영하며 여러 책들을 쓴 레스 카터(Les Carter)와 프랭크 미너스(Frank Minus)는 분노의 개념에 대해 3가지의 의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개인의 가치를 보존하려는 의지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분노는 타인으로부터 거부당하거나 자신이 무가치한 존재로 취급당할 때 폭발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본능적인 욕구를 보존하려는 의지입니다. 본능적인 욕구들이 상대방에게 잘 전달되지 않거나 상대방으로부터 무시당할 때 분노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기본적인 신념을 보존하려는 의지입니다. 자신이 지닌 가장 기본적인 신념이 무시당할 때 분노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조지아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심리학자 리차드 월터스(Richard Walters)는 억제되지 않은 폭력적 분노인 격분과 보복을 겨냥한 분노를 억제한 분개는 사랑에 근거하여 공의를 추구하는 의분과는 전혀 다르다고 말합니다. 격분과 분개는 결국 파괴적일 뿐입니다.

우리가 사는 현대는 모든 것이 빠른 시대입니다. 그리고 더 빠른 것을 추구합니다. 자동차, 전화, 인터넷 등 일상의 모든 것이 그렇습니다. 그것은 음식 문화조차 즉석에 먹을 수 있는 것들을 찾게 만듭니다. 결국 세상의 빠른 변화와 흐름 속에서 우리는 휩쓸려가며 자신도 그렇게 살아갑니다. 특히 우리 한국인들의 급한 습성은 스스로가 인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장점도 많지만 관계에서는 단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급한 습성을 가진 사람은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참아주고 기다려주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이런 문제에 대하여 성경은 몇가지로 교훈을 줍니다. 첫째는 듣기는 속히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주장을 내세우기에 앞서 상대방을 존중하여 그의 말에 경청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둘째는 말하기는 더디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급하게 말하는 것은 결국 실수를 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것은 지혜롭지 못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말하고 나서 후회를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셋째는 성내기도 더디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성냄을 기록한 헬라어 원어가 갖고 있는 의미는 감정의 격분을 이겨 내지 못하고 화를 발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성경은 분노를 억제해야 할 이유를 말하기를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원하시는 의로운 삶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분노는 자신의 마음을 상하게 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마음의 상태와 행동에 이르게 합니다. 말하기를 더디하고 성내기도 더디하는 것은 삶의 지혜이며 성숙한 사람의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