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생선장사로 이민생활의 기반을 닦았던 그 자리에 아들이 목사로 복음을 전하고 있다. 신현국 목사는 애틀랜타에서 이민목회자로 약한 자들을 위로하고 세우는 주빌리교회를 담임하고 있다.
흑인 빈민촌 생선장수 아버지, 그 자리에 복음 전하는 아들
할아버지는 생선을 팔아 이민생활의 기반을 닦았다. 손자는 할아버지의 생선을 샀던 이들의 아들과 딸, 손자와 손녀에게 복음을 전한다. 이민 초기 어렵게 자리잡은 신화 같은 이야기는 많다. 하지만 세대를 거쳐 육의 양식을 줬던 이들에게 영의 양식을 베풀고 있는 이야기는 흔치 않다.

그 할아버지의 아들이자 그 손주의 아버지인 애틀랜타 주빌리교회 신현국 목사를 만났다. 8남매의 장남이었지만 아버지의 미국 행에 동행하지 않았던 신현국 목사는 어렵사리 결심하고 뒤늦게 도미했을 때 아버지의 사업을 잘 이어받아 ‘폼 나게 살고 싶은’ 평범한 이민자였다.

“하나님께서 큰 아들은 도시선교 목회자로 작은 아들은 적십자사 평화봉사단으로 삼아 소외되고 약한 자들을 보듬고 있어요. 가장 약한 자를 위로자로 세우신 하나님께서는 참 공평하시죠”

나는 이민목회자다
1980년대 당시 한국 사람을 만나려면 교회로 가야 했다. 서른을 일년 앞두고 설렁 설렁 교회생활을 하던 그가 인격적으로 예수를 만나 회심하는 삶의 전환점이 왔다. 그때 주를 만난 기쁨과 감격은 지금까지 모든 삶을 지탱해오는 원동력이 됐다.

“아내도 제가 목회자가 될 거라고는 꿈도 꾸지 않았던 평범한 이민자였어요. 인간의 관점에서는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온 부르심이지만 하나님 입장에서는 계획이 있으셨죠. 사실 제 주변 친구들도 제가 주의 종이 될 ‘그런 낌새’를 느꼈다고 하더라고요. 저만 몰랐던 것 같아요(웃음)”

세상의 길을 접고 좁고 협착한 길로 들어선 신현국 목사는 필라델피아의 Biblical Theology Seminary를 졸업하고 목사안수를 받으며 ‘나는 이민목회자’라는 강한 소명감을 가슴에 새겼다. 망설이던 미국에 오게 하셨고, 평범한 신앙인으로 살아갈 줄 알았던 그를 세우셨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사명은 이민목회였다.

한 사람을 세우는 ‘한 사람 목회’
그가 생각하는 이민목회란 무엇일까?

“이민자들은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에요. 다른 문화 속에서 언어와 역사가 부재하죠. 인정받는 사회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고 문화생활을 누리는 것도 아니에요. 문화라고 해 봤자 비디오나 연속극을 보는 정도죠. 죽는 날까지 죽도록 일해야 하는 게 또 이민생활이잖아요. 문제는 그런 불만족이 교회에서 표출된다는 겁니다. 교회 안에는 다언어, 다문화가 공존해요. 1세와 2세, 한어와 영어, 초기 이민자와 올드 타이머 등이 뒤섞여 있는 특수한 공동체예요”

생선장사로 밑바닥부터 시작한 그는 잘 나가던 사업가로, 또 주님이 빠진 신앙생활 까지 고루 터득(?)했기 때문인지 구구절절 사연 많은 이민자들이 교회로 찾아든다. 무엇보다. ‘한 사람 목회’가 이들을 십자가 복음 위에 세워주기 때문이다.

“교인이 한 명이든 백 명이든 한 사람 한 사람으로 생각해요. 저 같은 사람도 하나님께서 세우셨잖아요. 그 한 사람을 품고 성장시켜서 어떻게 하면 십자가 복음 앞에 세울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사마리아 여인 한 사람에게 집중하셨던 예수님을 좇아가려는 몸부림이죠”

▲오십이 넘어보니 이제야 철 들었다는 신현국 목사는 큰 교회 세우고 폼나고 알아주는 목사보다 깊은 영성 속에서 항상 기뻐할 수 있는 복음의 정수를 전하는 목자가 되고 싶다고 한다.
날고 기던 젊은 목사, 오십 돼보니 철들더라
청운의 꿈을 품어보지 않았던 남자가 어디 있을까마는 신현국 목사도 그랬다. 서글서글한 얼굴에 서려있는 야망과 꿈이 적지 않았을 텐데, 세월의 무게와 불 같은 시련 속에서 지금은 스스로 ‘철 들었다’ 허허 웃는다.

“뜨거운 소명을 받고 목회자가 되고 난 30, 40대에는 날라 다녔는데……목회자 나이 오십이 되고 보니 다시 회개하고 철 들더라고요. 목회를 오래 하면 할수록 결국은 성경의 기본으로 돌아가게 돼요. 선배 목사님들이 비록 공부는 적게 하셨어도 삶에서 복음이 묻어 나오는 것처럼, 점점 겉치레와 가식은 줄고 오직 십자가 복음만 전하는 것이 목회의 진수라고 많이 느낍니다”

뉴저지에서 목회를 하다 청빙을 받아 애틀랜타의 한 교회로 부임한지 7년 만에 교회 내에서 곪았던 문제가 터지면서 교회는 분란에 휩싸였다고 한다. 고목나무들은 자신이 옳다며 버티는데, 갓 신앙을 시작한 새순들이 시험에 들어 떠나는 모습을 보고 홀연히 뉴저지로 떠났다.

“두 손 들고 나왔어요. 교회 문제 생기면 무조건 목사 잘못이에요. 욕심 부리지 말고 떠나야죠”

감출 것 없이 시원스레 가슴 깊은 상처를 드러내 보이며, 안타까움 가운데서도 모든 것을 하나님 손에 맡기고 목양의 본질만 붙들고 가려는 신현국 목사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말 철들은 목사’가 아닐까?

창고와 호텔 전전 끝까지 남은 동역자들
지난 2008년 초반까지 주빌리교회는 광야생활을 해야 했다. 호텔 세미나실에서 4개월, 창고에서 2개월을 지내며 지금은 알곡 같은 동역자들이 남아졌다. 끝내 떨어지지 않은 성도들과 담임목사는 한 가족이 되어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아끼고 섬기고 있다.

신학교에서 성서신학을 전공한 신현국 목사인 만큼 화려한 제목(?)의 각종 성경공부가 넘쳐날 것으로 생각했지만, 정작 담임목사와 성경을 배우는 이는 고작 세 명이다.

“성경공부는 사실 저의 가장 큰 달란트지만, 정말 성경을 배우고 싶은 사람만 오라고 했더니 세 명 오더라고요. 적은 수지만 이들하고 정말 선생과 제자처럼 앉아서 성경을 깊이 연구하고 나누면서 차근차근 가르치고 있어요. 한 달에 한 두 번은 연합 소그룹으로 예배당에 앉아서 신앙생활의 기본원리를 일러줘요. 감사한 것은 청년들의 마음이 열려서 헌신하고 있다는 거예요”

1살 어린아이부터 백발이 서린 100세 할머니 권사님까지 교회의 스펙트럼은 넓지만 ‘범사에 기뻐하라’는 신앙의 종착역을 향해 예수 따라 가는 인생 길에 가장 앞장선 신현국 목사와 주빌리교회는 오늘도 힘차게 달리고 있다.

주빌리장로교회는…
355 Brogdon Rd., Suite 204, Suwanee, GA 30024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일 오전 11시에 예배를 드린다. 이외에도 수요일 오후 8시에 수요예배를, 금요일 오후 9시에는 찬양 및 중보기도회로 모임을 갖고 있으며, 평일 새벽 6시 새벽기도를 통해 하루를 시작한다. 문의 (770) 842-5909, (678) 770-9891 홈페이지 www. Newjubile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