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월요일, 고 정병현 권사님의 장례를 준비하기 위해 가족과 함께 funeral director를 만났습니다. 모든 절차가 마무리 되려는 즈음, 사망 확인서(death certificate)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사망 확인서는 고인 명의로 되어 있는 부동산이나 보험 혹은 은행 계좌를 처리하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문서입니다. 적으면 다섯 통에서 많으면 일곱 통 정도를 요구하는 것이 상례입니다. 그런데 정 권사님의 자녀들은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사망 확인서가 필요할 것 같지 않은 눈치였습니다. 결국 세 통을 준비해 달라고 청했지만, 아무래도 쓸 일이 있을 것 같지 않다는 표정이었습니다.

이 땅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된 것이 하나도 없어서 사망 확인서가 하나도 필요 없는 인생! 세상적인 시각으로 본다면 실패한 인생처럼 보일지 몰라도, 하나님의 시각에서 본다면 가장 성공적으로 산 사람의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살아생전에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사랑하는 일에 남김없이 사용하고 옷가지 몇 벌만을 남기고 떠나는 그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바울 사도가 자신을 두고 “나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고후 6:10)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고 정병현 권사님은 이 땅에 아무 것도 남기지 않고 가심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것을 선물로 받으신 줄로 믿습니다.

“내가 세상을 떠나면 사망 확인서가 몇 통이 필요할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제게 주어진 것을 사랑하는 일에 다 사용하고 떠났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품어 보았습니다. 제가 떠날 때, 제 이름으로 남겨진 것이 별로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즐겨 읽던 책 몇 권과 입던 옷 몇 벌만 남기고 떠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럴만한 시간이 주어지는 것도 특별한 은총이요, 그렇게 살아가는 것도 특별한 일임을 모르지 않습니다. 모두 다 자기 살 궁리를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렇게 산다는 것이 꿈같은 일임을 모르지 않습니다. 현실이 어떤지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소유하지 않고 누리는 법과 쌓아두지 않고 즐기는 법을 배워 살고 싶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사신 삶의 방법입니다. 그분이야말로 사망 확인서가 한 통도 필요 없는 분이었습니다. 그분이 남긴 옷가지마저도 로마 군인들이 가져갔습니다. 자식도 남기지 않았고, 집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당신에게 주어진 것을 사랑하는 일에 다 사용하고 돌아가셨습니다. 몸 속에 있는 피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다 주셨습니다. 그렇게 모든 것을 주셨기에 하나님께 모든 것을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늘나라를 믿고, 영원한 생명을 믿으셨기에 이 땅에서 가난하게 사는 것을 기쁘게 여기셨습니다. 물질에 집착하지 않으니 아무 것에도 구애 받지 않고 사랑하는 일에 전심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성탄 축하 주일. 우리를 사랑하는 일에 당신의 모든 것을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감사하고 축하하면서, 우리의 삶은 어떤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오늘 설교를 맡아 주신 김명종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모처럼 VOPC(영어 성인 회중, 10시), 청소년 교회(12시) 그리고 청년 대학부(2시)에서 설교를 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2008년 12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