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선교 현장에서 함께 집시선교를 하고 있는 분 가운데 사보 다니엘이라고 불리는 목사님이 계신다. 헝가리 개혁교회 부총회장이셨고 지금은 헝가리 세계선교 연합회 회장으로, 헝가리 개혁교회 장로회 수장으로 여전히 활동을 하고 계시는데 이러한 직함에도 불구하고 “집시들의 아버지”로, 때로는 “동유럽 집시의 성자”라고 불리지만 목사님 자신은 “늘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고 겸손해 하신다.

사보 다니엘 목사님과의 만남은 나의 작은 아버지가 되시는 미국 PCUSA의 최 정진 목사님께서 늘 나에게 기회가 되어지면 사보 다니엘 목사님을 한 번 만나 뵈라고 말씀을 하시던 중에 나는 2003년 여름, 헝가리를 방문하게 되었다. 사보 다니엘 목사님은 헝가리 개혁교회 부총회장의 직을 마친 직후에 샤로스파탁 개혁신학교 선교학 교수로 계시기에 샤로스파탁에서 처음 목사님을 뵙게 되었다. 첫 인상이 참으로 인자하시고 나이가 지긋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에게서는 늘 겸손함이 배어있었는데 카톨릭의 전임 수장이었던 요한 바오로2세와 비슷한 외모를 가지고 계셨다.

다니엘 목사님과 한 주 동안 샤로스파탁에서 머물면서 다니엘 목사님의 소개로 많은 분들과의 만남, 여러 집시 마을들을 방문하는 일, 교회 방문 등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리고는 목사님께서 헝가리에서 동유럽 집시들을 위해서 헌신하는 삶을 살아보지 않겠느냐고 하시기에 나중에 기도하면서 결정을 하겠노라고 하고 헝가리를 떠나게 되었는데 먼저는 하나님께서는 내 마음에 동유럽의 집시 영혼에 대한 부담감으로 주셨고 다니엘 목사님과의 만남이 오늘 집시선교의 현장에 서 있게 된 이유다. 그리고 목사님과 함께 5년이라는 기간 동안 집시선교의 현장에서 함께 동역을 하고 있다.

다니엘 목사님은 1933년 생으로 지난 6월에 만 75세가 되셨다. 그분은 전통적인 청교도 칼빈주의 가정에서 할아버지, 아버지가 모두 목회자이셨다. 다니엘 목사님 역시 짐나지움(고등학교)을 졸업하고 데브레첸 신학교에 들어갔는데 사상문제로 인해서 마지막 시험을 남겨두고 졸업을 하지 못한 채 쫓겨나고 말았다. 그 이후 그분은 미스콜치에 있는 벽돌을 찍어내는 강제 노동수용소에서 일을 하기도 하였고 때로는 영어, 독일어 교사로 그리고 호텔 같은 곳에서 일을 하시면서 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일을 해 오셨는데 1965년부터 루마니아의 차우세스코 정권 아래서 고통을 받고 있던 헝가리 민족을 위해서, 1983년부터는 구소련 연방 이었던 우크라이나를 방문하여 스탈린 강제 노동소와 감옥에서 풀려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헝가리에서는 집시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대하면서 집시선교를 시작하게 되었다.

헝가리에서 주위로부터 소외당하고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집시들을 다니엘 목사님은 어릴 적 부모님으로부터 돕는 것을 보고 자라나셨다고 한다. 당시에 공산주의 치하에서 모두가 배고파하고 어려울 때에 목사님의 어머님은 어린 다니엘 목사님의 손에 작은 먹을거리라도 쥐어서 집시들에게 가져다주라고 하셨다고 한다. 또한 성장을 하면서도 집시 마을 인근에 사시면서 집시들을 도우셨고 때로는 집시들과 함께 거하기도 하셨다고 한다.

호텔에서 근무를 할 때에는 어린 집시 아이들이 호텔 밖의 거리에서 추위에 떨고 있을 때에도 어떻게 해서라도 아이에게 요기 거리라도 만들어서 주셨는데 그렇게 청장년 시절을 보내면서 신앙의 자녀로 세운 집시자녀들이 200여 명이 넘는다고 한다. 지금도 미스콜치에 있는 한ㅤㅋㅝㄱ 라슬로라는 형제의 가정을 4대에 걸쳐서 돌보고 있는데 모두가 다니엘 목사님의 신앙의 자녀들이고 개중에는 목사님이 직장을 주선해서 일을 하고 있기도 하다.

사보 다니엘 목사님의 곁에서 지켜본 집시에 대한 사랑과 관심은 이렇다. 어떤 집시일지라도 그들을 대함에 있어 소홀함이 없으시다는 점이다. 나이가 많든 적든 그들을 알고 있든 모르든 누구에게나 집시들을 인격적으로 대하고 그들의 모든 이야기를 들어주신다. 내가 다니엘 목사님 곁에서 힘든 부분도 다니엘 목사님과 함께 어디라도 동행을 하게 되면 예고 없이 목사님 앞에 나타나 저들의 힘든 부분들, 도와달라는 이야기를 할 때에 한 번도 거절하지 않으시고, 아니면 시간이 없으니 나중에 만나자고 해도 될 형편인데 묵묵히 서서 그들의 모든 이야기들을 다 들으신다는 점이다. 또한 많은 집시들이 늘 다니엘 목사님을 찾아와 저들의 어려들을 호소하는데 당신의 형편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하든지 최선을 다해서 도와주시곤 한다. 그리고는 그들을 위해 안타까운 마음으로 늘 기도해 주신다.

다니엘 목사님은 신학교 선교연구소에 거처하시는데 그분의 냉장고는 늘 비어있다. 물론 독신으로 혼자 사시기도 하고 여러 곳으로 부터 초청으로 인해 출타를 많이 하시기도 하지만 혹시라도 냉장고에 약간의 부식이라도 있다손 치면 당신을 방문하는 집시들에게 모든 것을 다 내어주신다. 가끔 목사님을 찾아뵙고 부엌의 냉장고를 열어보면 아무 것도 없어 약간의 부식을 사서 냉장고에 채워 넣으면 곧 바로 냉장고가 비어 있음을 보게 되는데 이는 배고파하는 집시들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시기 때문이다.

사보 다니엘 목사님에게는 당신 명의로 된 통장하나가 없다. 또한 그분과 함께 5년 동안 선교를 함께 해 오면서 당신 자신을 위해서 음료수 하나, 커피 한 잔이라도 사서 드시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목사님을 방문하는 사람들이나 집시들에게는 손수 부엌에 들어가서 샌드위치를 만드시고 차를 준비해서 늘 대접을 하시곤 한다. 그분의 관심을 오직 복음과 집시 사랑이시다. 한때는 어린 집시 부부와 함께 일 년이나 데리고 사신 적이 있으시다.

사보 다니엘 목사님은 나에게 있어 참으로 귀한 스승이시다. 때로는 아버지처럼 그리고 나이가 지긋하심에도 불구하고 형님처럼 자상하게 대해 주시는데 우리 아이 예원이게는 친구처럼 모든 이에게 눈높이에 맞게 큼 대해 주신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귀한 믿음의 선배요 스승을 헝가리 선교 현장에서 예비해 주셨다. 내가 어떤 상황에서 판단을 해야 할 때에 기준은 사보 다니엘 목사님이시다. 사보 다니엘 목사님은 이럴 때에 어떻게 판단하셨을까 하면 답이 쉽게 나온다. 그럴 일도 없었지만 설령 옳지 않은 판단을 했다손 치더라도 나에게는 자유함이 있다.

오늘도 다니엘 목사님은 세계 선교를 위해서, 유럽 복음주의 지도자로, 헝가리 개혁교회 장로회 연합회 회장으로 여러 곳을 다니시면서 활동하고 계시는 와중에도 틈틈이 어려운 집시들을 찾아보시면서 그들의 형편을 살피시고 그들의 필요를 무엇인지를 찾아 도와주시는 집시들의 아버지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