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주보 안에서 책갈피 정도의 쪽지를 발견하셨을 것입니다. 앞면에는 여러분의 이름을 적고, 기도 제목이나 심방 요청에 대해 표시할 수 있게 했습니다. 뒷면에는 여러분이 참여하실 수 있는 봉사 영역들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수고스럽지만, 그 쪽지에 필요한 항목을 적으셔서 헌금 시간에 헌금 접시에 넣어 주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매 주일 그렇게 해 보겠습니다.

이렇게 하는 가장 큰 이유는 교우들의 예배 참석 여부를 좀 더 정확히 파악하기 위함입니다. 목회자도 여럿이고, 예배도 여러 번 나누어 드리다 보니, 교우들의 예배 참석 여부를 파악하기가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주일 예배 참석이 신앙의 전부는 아니지만, 교우들의 사정을 살피는 데 있어 매우 유익한 참고 자료입니다. 저는 최근에 몇 가지 사건을 겪으면서 ‘예배에 참석하는 교우들’에게만 목회하고 있다는 자각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배에 꾸준히 참여하는 교우들을 기뻐하시지만, 예배에 참여하지 못하는 교우들에 대해서도 애틋한 마음으로 보고 계시다고 믿습니다. 이번 시도로써 예배에 참석하지 못하는 교우들에 대한 목회가 회복되었으면 합니다.

두 번째 이유는 심방 때문입니다. 한정된 목회자들이 많은 교우들을 섬기다 보니, 교우들이 원하시는 만큼 심방하기가 어렵습니다. 또한 이제까지 심방은 주로 목회자들 편에서 판단하여 행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 일도 지속하겠지만, 교우들께서 적극적으로 심방을 요청하는 통로를 마련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앞으로 심방 요청에 응하는 것을 우선순위에 두겠습니다. 심방의 필요가 있을 때, 주저 마시고 그 뜻을 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담임목사로서 저는 늘 심방에 대해 마음에 큰 짐을 안고 삽니다. 작년 9월부터 수요일 예배를 시작한 이후, 심방할 시간적 여유가 더욱 줄었기 때문입니다. 수요 예배도 그렇고, 주일 예배도 그렇고, 저는 최선의 준비를 하고 단에 서기를 바랍니다. 설교단에 올라섰을 때 저를 바라보는 여러분들의 얼굴을 뵈면, 때로 가슴이 턱 막힙니다. 제 능력의 한계는 어쩔 수 없지만, 제 능력의 한계 안에서 만큼이나마 최선을 다하지 않고는 설교단에 설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최선을 다할 때, 성령의 역사를 가로막지 않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제가 설교를 잘 한다고 생각해서가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했다면, 설교 준비에 이렇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여러분 앞에 서기에 자격 없다는 판정은 받지 않고 싶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수요 강해 준비와 설교 준비에 일주일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저도 압니다. 교우들과의 접촉점이 약해지면, 제가 서재에서 아무리 열심히 설교 준비를 한다 해도 제 설교는 죽는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한 주일에 한 두 가정이라도 꾸준히 만나 사는 이야기를 듣고자 힘써 왔습니다. 제가 닿지 못하는 부분들을 동역자들께서 부지런히 살펴 주시는 것에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리며, 이 점을 십분 이해하시고 협조해 주시는 교우들에게 또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하오니, 저희의 시도를 가상히 여기시고, 적극 도와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