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일 고르바초프(Gorbachev·77) 전 소련 대통령이 자신이 기독교인임을 처음으로 시인했다. 고르바초프는 19일(현지시간) 딸 이리나(Irina)와 함께 이탈리아 아시시에 있는 가톨릭 성인 프란체스코(St. Francis)의 묘지를 방문해 30분 가량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렸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그는 “성 프란체스코를 통해 나는 기독교인이 됐다”며 “그는 내 삶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았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그는 자신의 종교와 관련한 질문에 “자연이 나의 신(nature is my God)”이라고만 공개적으로 밝혀 왔다. 신문은 공산주의 지도자였던 그가 겉으로는 무신론자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지만 사실은 기독교인일 것이라는 소문이 이번 방문으로 사실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고르바초프는 러시아 정교회에서 세례를 받았으며, 그의 부모도 기독교인이었다. 특히 그의 장인, 장모는 신앙심이 아주 깊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집에 성상을 뒀다는 이유로 처형됐다.

로널드 레이건(Reagan) 전 미국 대통령은 냉전 시절 측근들에게 아무래도 고르바초프가 ‘몰래 기독교를 믿는 사람(closet believer)’인 것 같다고 말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181년 아시시에서 태어난 성 프란체스코는 음유시인으로 살다가 그리스도의 환상을 본 후 아시시로 돌아가 기독교에 귀의했다. 어린 시절부터 빈자들을 긍휼히 여긴 그는 광야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다가 결국 신부가 됐다.

고르바초프는 “나를 교회로 인도한 분이 성 프란체스코이기 때문에 그의 묘지에 온 것은 아주 중요하다”며 “가톨릭뿐 아니라 모든 인류에게 이토록 소중한 장소에 있다는 게 너무 감동적”이라고 말했다.

한편, 현지 일간 ‘라 스탐파(La Stampa)’는 고르바초프가 성 프란체스코의 묘지를 방문한 것을 ‘정신적 페레스트로이카’로 묘사했다.